가득 습한 수요일
수요일의 산책
가득 습한,
잠자리떼를 보고 엑소시스트 메뚜기떼를 생각하는
나의 10대 영화취향
(심지어 엑소시스트 떠올리며 오멘이라 말하는거 뭐니)
파괴적이고 끔찍하던 걸 보지 않고는 못견딜 거 같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말이지.
기억해 봐도 분노가 그득그득 차있었고,
그건 즉, 두려움이 그득그득 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숲에를 임신하고서 지켜낼 생명이 있으니
이전의 두려움이 사라진건 아닌데 분노가 어딘가로 빠져나가고
확실히 전과 다른 두려움을 갖게 된 거 같다
신기하게 생명을 낳고 키운 과정에서 생기기 시작한두려움들은
분노로 변하지 않게 된다
왜일까?
더이상 상실의 주체가 나로만 가득차게되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러니까
'버림받고 싶지않아! 나에게 왜이래?' 하던 것들이
이제는
'버림받는다 느끼지 않도록 지켜줄게.'가 되어서 인 거 같다
그런데 살아보니 아는거지
나또한 상실감을 주는 부모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도 자녀를 상실하고 싶지 않아서
결국엔 씨커먼 재를 뒤집어 쓰고서도 분노할 순 없는거야
거기까진 원망이 갈 수 없고, 결국엔 사랑하기 위해 살아내게 되는게
부모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