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런 모습은 싫다고요. 예수님!
20250206.목 / 눅7:18-23
> 묵상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듣게 된 요한은 오실 그이가 당신이 맞냐고 물어보라 한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라고 하면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23)’하신다.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보지만 매번 예수님을 보면서 실족하는게 바로 나다.
보고 들은 것을 전해들을수록 실족하게 된다.
왜냐하면 요한이 기대하는 예수님이 실제의 예수님하고 달랐듯이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도 실제의 예수님하고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의 회복과 치유의 역사가 남편에게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해 들은 얘기는 정말 남의 얘기일 뿐이다.
그러면 나는 예수님으로 인해 실족하는 자가 되는 거다.(23)
어제 점심부터 원인도 모르겠는데 아팠다.
저녁에 약을 먹고 일찍 잤고 내일은 오랫만에 여자목장을 가는 날인데 걱정이 되었다.
남편은 아픈 나를 당연히 돌보지 않는다. 아프냐고 묻지도 않는다.
그런데 새벽에 인력사무소에 가보더니 1시간 정도 있다가 일이 없다면서 들어와서 발인예배를 갔다.
그건 괜찮은데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니 아픈 몸을 이끌고 여자목장 가기전에 해야 할 일들을 혼자 하려니 열이 받아 죽을 거 같다.
왜 돈은 안벌면서 그런건 꼬박꼬박 가는 지 그것도 화가 난다.
대체 집안에서는 누가 아프건, 상처를 받건 관심도 없고 정죄만 된다는 이가
본적 없는 집의 발인예배는 가는 게 기가막혔다.
왜 갔냐고 물으니 그 집사님 남편분 구원을 위해 갔다고 했다.
웃겼다. 그 남편 집사님은 신앙생활 잘하겠다고 교인들 앞에서 선포하셨고,
목자님과 연결되어 있는데 무슨 그 집사님 구원을 위해 자기가 가겠다는 건가?
진짜 실소가 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오빠가 가면 그 집사님이 구원이 되는거야?’라고 물어봤다.
이럴 때 난
'예수님 이게 당신이 우리집에 온거예요? 맞아요? 이게 맞냐고요!
우리 가족한테는 관심이 1도 없는 사람이 남을 위해서는 아침 추위를 뚫고서라도 간다는게...
이건 예수님이 아닌 거 같네요. 다른 이를 기다려야겠습니다.(19)' 하게 된다.
아픈 아내도 살뜰히 살피고 다정하게 질문도 건네고 아이들에게 다가가 말도 건네는 남편을 바라면서
그래야만 우리집에 예수님이 온걸거야!! 라고 자기확신을 하다 현실은 아니니 현실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여자목장에 도착해서 차안에 운구 때 쓰는 흰장갑을 봤다.
생각해보니 그 집사님도 동생도 자녀가 없어 보였고 남자는 남동생 1명 뿐이었던 거 같다.
갑자기 스스로가 부끄러워 졌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운구를 했냐고 사람이 없었냐고 물으니 그랬다고 했다.
눈물이 흐르면서 오빠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게 사과했지만 돌아와 집에오니 남편은 애들 밥도 안먹이고 과자로 대충 때우고 드러누워 있는 걸 보니
다시 ‘내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하면서 실족하게 된다.
여전히 하나님의 100%옳으심이 인정되지 않는 날 마주하게 된다. ㅠ _ ㅠ
남편이 부목자가 되자마자 예목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단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 같다.
‘네 남편은 네 남편이기 전에 내 것이다. 내가 쓰겠다.’
그러면 할 말이 없어야는데 ‘예목을 받고도 저 인간이 저런 식이면 어떻게 하지?’하면서
계속 다른 예수님만 찾고 있다… ㅠ _ ㅠ
> 삶
남편 예목 받는 거 기도로 돕겠습니다. (그리고 예목을 날 위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내일 직장, 집 문제로 부부목장에서 나누기
> 기도
주님, 저는 요한처럼 예수님이 도저히 받아들여 지지 않고 내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냐고 묻고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집안에 일하시는 걸 볼 때마다 실족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두고도 다른 예수님을 찾고 있으니 저는 절대감사가 안되고 조건감사만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주님, 짜증의 요소는 감사의 요소라 하는데 제가 짜증이 아닌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길 제 고난과 곤고의 웅덩이를 성령과 말씀으로 채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