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1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시밀란 섬에서 꿈의 바다를 만나다

푸켓에서 설 세기 7

by 정윤희 Feb 14.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시밀란 섬은 오랫동안 꿈꿔온 바다이다. 우연히 인터넷 기사에서 그 아름다운 바다 빛깔을 보고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으면서도 차마 갈 수 없었던 곳. 아니, 일이 바쁘고 육아가 힘들고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스스로 가려고 하지 않았던 곳.


푸켓 섬 최남단에 묵고 있었던 우리로서는 시밀란 섬까지 꽤 먼 여정이었다. 왕복 차로 세 시간 배로 세 시간 거리이다. 그런데 출발하는 아침부터 여정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벤 한 대가 호텔 여러 곳을 들려 예약자들을 순차적으로 태웠는데, 앞 팀이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아 우리는 호텔 로비에서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크린푸켓을 통해서 예약을 했는데, 다행히 바로바로 응대를 해주어서 안심이 됐다. 참고로 이 사이트에서 예약을 한 이유는 가장 큰 배를 운영하고 있었고, 늦은 출발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꿈꾸던 바다라 해도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고 향하는 건 두려웠다. 그리고 이동거리가 길어 나의 체력 고갈을 염려하던 신랑이 배는 무조건 큰걸 타자고 했다. 


결과적으로 긴 이동이 나에게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신랑이 뱃멀미를 끔찍하게 하고 말았다. 작은 배를 탔다면 신랑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피어 부두로 향하는 길, 관광지를 벗어나 길게 뻗은 고속도로와 사람들이 일군 밭이 보인다. 풍경이 너무나 익숙해서 국내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들었다. 그 생경한 기분 탓에 한 시간 반 이동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

한 시간 넘게 달려 차는 푸켓 섬을 빠져나갔다. 섬과 육지는 거의 붙어있어서 우리로 치면 하천 다리 하나 건너면 된다. 


처음 여행 계획을 했을 때 시밀란 섬이 라와이에서 엄청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었다. 구글 지도에서 검색하려면 여러 번 지도 축소하고 화면을 넘겨야 했다. 손가락을 잘못 움직였다가 지도가 크게 축소되어 주변의 말레이시아와 라오스까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넓은 범위 안에서 내가 갈 곳은 대체 어디인지 순간 좌표를 잃어버리고 현기증을 느끼기도 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피어 부두에 도착하니 커다란 고기잡이배 한 척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생업에 쓰이는 배라고 하기에 자태가 유려하다. 높이에 놀랐고 아름다운 곡선에 놀랐다. 배들은 다채롭게 채색되어 있어 먼발치에서 고깃배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면 알록달록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무리를 따라 집합 장소로 갔다. 대부분이 중국인이었고, 러시아 커플, 프랑스 커플, 국적은 모르겠으나 영어를 쓰는 여자 둘이 있었고, 우리 말고 한국인 가족이 한 팀 더 있었다. 스치는 한국말이 반가웠지만 굳이 인사를 건네진 않았다. 국적이 다른 이들은 대부분 서로 말을 섞지 않았지만 유독 영어를 쓰는 여성 둘 중 한 분이 나중에 가판대 위에서 활달하게 중국인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우리 신랑도 궁금한 게 생기면 중국인들에게 더듬더듬 영어로 무언가를 물어보기도 했다.


조식으로는 죽, 빵, 비스킷, 커피 등이 나왔다. 전날 갔던 라차 섬보다 구성이 풍성하다. 전날 먹었던 것과 똑같은 멀미약이 비치되어 있어서 챙겨 먹었다. 신랑은 멀미약을 먹고도 멀미를 했고 나는 멀미약을 먹어서 인지 원래 멀미를 안 해서인지 전혀 멀미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멀미약의 효능을 추측하기가 어렵다.


중국인들은 단체 관광을 왔는지 요란스러운 분장을 한 현지인 진행자가 마이크를 들고 유창한 중국어로 간단한 퀴즈와 여행안내를 한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손뼉 치며 호응을 잘해주어서 분위기가 좋았다. 이벤트가 끝나고 나서도 별다른 영어 안내가 없어 부스로 가서 영어로 안전교육과 가이드를 하는지 다시 한번 체크했다. 물론 있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크리스마스 포인트라 불리는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스노클링을 했다. 이곳에서는 스노클링 장비에 마우스피스를 새것으로 나눠주어서 위생적으로 안심이 됐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마음을 차분히 먹고 장비를 다시 한번 제대로 착용하기로 한다. 마우스피스도 입에 잘 맞았고 입으로 숨도 잘 쉬어졌다. 이젠 장비가 좀 익숙해졌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비를 착용하고 신랑을 따라 배에서 내렸다.


배 말미에서 진행요원이 나더러 수영을 하냐고 물었다. 못한다 했더니 커다란 널빤지 부표에 엎드려 누우라고 한다. 그래서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은 김밥 쌀 때 밥 위에 놓이는 재료들처럼 차곡차곡 엎드려 누웠다.


와, 이 시스템 참 마음에 들었다. 전날 라차 섬 스노클링 때에는 물 위에서 곧추떠있지 못하고 맥주병처럼 옆으로 기울기만 했다. 아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지만 깊은 바다 위에서 허우적댔다가는 함께 있던 애들도 놀라고 나도 더 위험해지겠다 싶어 포기하고 그냥 옆으로 누워버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대로 떠 있어야 한다는 압박 없이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부표가 너무 흔들렸었다. 옆에 있던 중국인 아주머니가 견디지 못하고 내려서 나도 그만 접고 따라 내릴까 했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가 내리자마자 안정이 찾아왔다. 파도가 세서 흔들렸던 게 아니라 이 아주머니가 허우적대면서 흔들렸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제야 고요하게 스노클링을 제대로 즐기기 시작했다.


와.... 바닷속은 정말 아름다웠다. 정말 큰 감동을 받았었는데 그래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 글을 쓰며 그때 본 장면을 떠올리고 있는데, 속상하게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스노클링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너무나 내겐 큰일이라 핸드폰을 방수팩에 씌워 바닷속을 찍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다. 이럴 땐 글을 쓰는 직업이 조금 도움이 된다. 예쁜 풍경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속으로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 무언가를 정의해 놓으면 기억은 흐릿해져도 말 자체는 내 안에서 꽤 오랫동안 살아남곤 한다.


산호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개마고원을 항공사진으로 보면 이런 느낌이 들까. 수없는 산맥들이 구불구불하게 끝도 없이 이어져 있듯 산호도 그렇게 펼쳐져 있었다. 살아오면서 맛있는 해산물을 그렇게 많이 먹어놓고 이처럼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을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바닷속은 여유로웠다. 바다가 매우 깊었고 물고기도 저 멀리 보였다. 해수면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거기까지는 닿지 않는 듯했다. 물고기들은 평화로워 보였다. 드넓은 바닷속에서 안전하게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듯했다. 물고기 떼들도 여러 종류를 볼 수 있었다. 수십 마리씩 다니는 녀석들도 있었고 수백 마리씩 다니는 더 작은 녀석들도 있었다. 라차 섬에서 보았던 해삼과 성게는 바다가 깊어 보이지 않았지만 간혹 갑오징어는 볼 수 있었다.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사람을 보고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지나가지 않고 우리 곁을 맴돌아 이곳 애완 거북이인가 싶을 정도였다. 신랑은 헤엄치다가 거북이와 눈이 마주쳤었다고 한다. 하도 따라와서 이젠 좀 가라고 등껍질을 툭 쳤다고 한다.


주변을 보니 아까 그 한국인 가족 중 아이 엄마가 둘째를 안고 수영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어리다고 여행과 액티비티를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나 자신과 이미 컸지만 멀다는 이유로 데리고 오지 않은 딸을 떠올렸다. 아이가 스스로 섬 투어 대신 마사지 코스를 선택한 거였지만, 그 선택에는 분명 나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배를 타고 다음 스폿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도 스노클링을 할 수 있었지만 난 가판대에 올라가서 물빛과 햇빛을 조금 즐겼다. 사진을 보면 바닥이 보여 마치 무릎 높이의 바다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고개를 숙였더니 스노클링 할 때 내 속에 들어왔던 바닷물이 콧구멍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많은 물이 대체 어디에 들어있었던 건지... 그래서 삼삼오오 모여있는 무리를 피해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상황이 안정되자 이렇게 한 컷 더 찍었다.


신랑은 뱃멀미하는 것보다 스노클링 하는 게 낫다며 한 번 더 뛰어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뱃멀미가 심해 다시 배로 올라와 구토를 했었다고 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7



배에서 내렸다. 라차 섬에 설치되었던 임시 다리 같은 건 여기에는 없었다. 배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안전 요원의 부축을 받으며 가슴 높이의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리자마자 곧바로 바위산 꼭대기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울창한 고무나무가 있었다. 나도 이사 오기 전에는 커다란 고무나무를 키웠다. 좁은 화분 안에서, 내 맘대로 가지를 치며 키웠던 그 고무나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8


몸이 좋지 않았던 신랑은 갑작스러운 산행에 약간은 불만을 품고 저렇게 멀리 떨어져 걸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9


10분 정도의 짧은 코스였지만 아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산행이 오랜만이라 조금 무서웠다.



브런치 글 이미지 10



이렇게 남들이 다 가보는 뷰포인트에 가서 나도 몇 컷 찍었다. 정말 잘 갔다. 높은 곳에서 찍은 사진은 물빛이 많이 달랐다. 지금 이 글을 쓰며 사진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 사진이 가장 잘 나왔다.


브런치 글 이미지 11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신랑의 표정도 좀 풀린 듯하다. 다시 내려와서 그늘에 수건을 깔고 앉아 하얀 모래와 풍경을 즐겼다.


브런치 글 이미지 12


이것은 모래인가 밀가루인가.



브런치 글 이미지 13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섬에는 다른 배를 타고 온 다른 국적의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브런치 글 이미지 14



무엇보다 이 물빛.... 사진으로는 절대 담기진 않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찍으면 찍는 대로 다른 빛 깔이 담겼다.


브런치 글 이미지 15



다시 배를 타고 다음 섬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한차례 휴식을 하고 다시 배를 탔다. 돌아오는 길에는 파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신랑은 이동 시간이 길지만 않으면 참 좋은 곳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이번 여행에서 시밀란 섬 투어가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자긴 바다 수영이 이렇게 재밌는 건지 몰랐다고 한다. 스노클링을 하며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랐다. 


바보같이 진작 오면 좋았을 걸, 왜 이리 좋은 걸 신혼여행에서도 지난 두 번의 동남아 여행에서도 우린 하지 않았던 걸까. 난 수영을 전혀 못해서 해양 체험은 나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고, 해양 스포츠를 강력히 거부하는 나와 어린 아기 때문에 신랑도 덩달아 체험을 포기해 왔다. 여기 와서 따뜻한 기후, 예쁜 자연환경과 바다수영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그가 조금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여유로운 환경과 삶에 잘 어울리는 그리고 평소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 다음에 여기 또 오자."

"그래."

"여기 노후를 보내러 유럽 사람들 많이 왔더라. 태국 여자 데리고 사는 사람도 있고."

"당신도 나중에 그렇게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살아. 재인이 커서 독립하고 나면."


신랑의 눈이 동그래졌다.


진심이야. 이혼이 하고 싶다는 게 아니고... 당신이 진정 꿈을 꾸고 있다면 나는 차마 그것을 가로막을 수는 없을 거란 얘기야.




작가의 이전글 우리 가족이 푸켓으로 떠난 이유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