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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엘리펀트에서도 몇 접시를 순삭 해버린 우리 가족

푸켓에서 설 세기 9

by 정윤희 Feb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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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가족 푸켓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시어머니는 여행 내내 태국 음식이 입에 잘 맞는다며 좋아하셨지만 아직 고급 식당에서 바닷가재를 못 드신 상태였고, 시누는 모닝 글로리를 맛보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시누는 더위와 여독으로 좀 지쳐 보였다. 이날만큼은 최대한 땀 흘리지 않기로 했다.


라와이 숙소 측에서 가능하면 레이트 체크아웃을 해준다고 했었는데, 결과적으로 할 수 없었다. 우리가 먼저 이야기를 해 놓았어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예약이 들어왔는지 받아버린 거다. 밤 11시 비행기라 떠나기 전에 조금은 누워서 쉬고 씻기도 하고 애들도 한 번 더 물놀이를 시키려고 했었는데 하는 수 없었다. 


대신 웬만하면 택시로 이동했다. 푸켓에서 그랩으로 10인승 승합차가 금방 잡혀서 편했다. 하지만 한 기사분이 난폭운전을 하는 바람에 시어머니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 있었다. 그래서 기사님께 먼저 팁을 전해드리고 천천히 운전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며 출발하곤 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코스 요리점을 거의 방문한 적이 없었다. 사실 난 먹는 데 그다지 관심이 없기도 하고 그래서 먹는 데 돈을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식당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푸켓에서 레스토랑 지도를 펼쳤더니 어마 무지 많은 곳들이 조회되었다. 이곳저곳 들어가 보고 홈페이지에서 메뉴판도 미리 보았지만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조금씩, 예쁘게 나올 뿐 내 눈엔 그 음식이 다 그 음식 같았다.


그래서 남들 많이 가고 우리 숙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을 선택했다. 그곳이 바로 블루엘리펀트였다. 태국의 황실 사람들이 이용하던 식당이었다고 한다. 사진으로 보니 실내에는 태국 황실 사람들의 사진과 이곳을 방문했던 셀럽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식기와 소품들이 아기자기해서 먹는 재미와 더불어 이것저것 볼 게 많아 보였다. 아주 무거운 분위기는 아닐 것 같았지만 이날만큼은 깔끔하게 차려입고 최대한 어색한 티를 내지 않기로 했다. 다른 가족들에게도 민소매나 슬리퍼 차림은 하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민소매, 슬리퍼만 아니면 반바지나 캐주얼 복장은 어색하지 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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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들어서니 2025년 미슐랭 선정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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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액자와 거울로 실내가 빽빽하게 장식되어 있고, 코끼리가 그려진 테이블보와 코끼리가 작게 새겨진 유리잔들이 세팅되어 있다. 파란색 벨벳 의자도 예뻤고 금색 식기들은 예뻤지만 생각보다 가벼웠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나니 시어머니는 드디어 올 곳에 왔다며 좋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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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착석하자 이렇게 웰컴 푸드가 나왔다. 새우가 들은 튀김만두가 새콤한 수프와 곁들여져 나왔다. 딸내미는 이곳에서 먹은 음식 중에 이게 가장 맛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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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땀 흘리며 주문하는 나를 남편이 몰래 찍었다. 입고 있는 원피스는  첫날 파통 정실론에서 만 원에 득템 한 거다. 시어머니가 사주셨다. 웰컴 푸드가 나오고 있었지만 주문에 집중하느라 먹을 새가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바닷가재가 안 보여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가재는 없다고 한다. 대신 타이거 새우 요리를 추천해 주었다. 시누가 원하던 모닝글로리도 없었다. 그게 뭐라고 며칠 간의 여정에서 그때까지 모닝글로리 메뉴를 만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푸켓 공항에서 방문했던 마지막 식당에서 한 접시 시킬 수 있었다.



메인 메뉴로 타이거 새우 요리 두 접시와 양고기 한 접시를 시켰고 몇 가지 전채요리도 시켰다. 디저트는 본식을 먹어보고 주문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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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접시가 세팅되었다. 푸른 물감 흘린 자국도 인상적이었고 식기가 엄청 두껍고 무서운 것도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뜨끈하게 데워져서 세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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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딸기 스무디를 시켰고 어른들은 콜라나 사이다를 주문했다. 딸기주스가 딸기 쭈쭈바처럼 확 달고 반짝이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태국 딸기는 한국 딸기처럼 달지 않아 주스가 좀 셨다. 주스의 위치를 잡아주다가 딸기주스가 저 하얀 식탁 매트에 몇 방울 떨어져서 딸내미한테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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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채 요리가 서빙되기 시작했다. 꽃 모양 딤섬이다. 사전 조사 때 블로그를 살펴보니 모양이 이뻐 다들 시키기에 나도 시켜보았다. 난 맛도 맛이지만 예쁨도 중요하다. 그런데 딸내미가 먹어보더니 역시 만두는 한국 만두가 제일 맛있다고 한다. 건너편에 앉아 계셨던 시어머니가 그 말에 맞장구를 치셨다. 피가 달달하고 쫀쫀해서 떡과 만두의 중간 느낌이 났다. 내 입에는 괜찮았는데 평소 떡을 좋아하지 않는 딸내미의 입에는 잘 안 맞았던 거다. 


이번 여행에서는 유독 남들 좋아하는 걸 생각 없이 따라 했다가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마사지나 음식은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자신 없는 분야라 돈이라도 많이 써서 럭셔리를 추구해 봤는데,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반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족감을 얻기도 했다. 


여행자에게 은총을 베푸는 분이 계시기에, 사실 난 걱정 하는 편이 아니다. 블루 엘리펀트는 내 예상과 맞는 부분도 많았고 음식도 대체로 맛있었지만 이틀 전 우연히 발견한 식당에서 먹었던 한 끼만큼 인상적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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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곳 음식은 정말 훌륭했고 모든 메뉴에 정성이 많이 들었다. 


 사진은 게살 크로켓이다. 게살을 먹기 좋게 발라서 저렇게 게딱지 모양으로 빚어서 튀겨낸다. 파인애플로 산 모양을 쌓아서 곁들여 먹도록 했다. 그리고 두 가지를 같이 먹었을 때 가장 맛있었다. 이곳에서는 게가 가장 맛있었고 그다음으로는 새우가 맛있었다. 랍스터는 이틀 전 갔었던 라와이 해산물 시장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메뉴로는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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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가리비 관자 꼬치이다. 음식이 식지 말라고 그릇 안에 달군 콩을 채워 놓았다. 너무나 부드러웠고, 초록색 소스랑 곁들여 먹으니 맛이 좋았다. 초록색 소스는 콩 소스인 듯했고, 고추냉이 맛도 살짝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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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팟퐁 커리이다. 이틀 전 먹은 푸팟퐁 커리처럼 맛이 좋았다. 다들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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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팟퐁 커리에는 빵과 밥이 나왔다. 직원이 흰밥과 흑미밥을 따로 리필해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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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 요리이다. 각종 허브가 곁들여져 있어서 풍미가 좋았고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포도처럼 생긴 작은 알갱이는 후추이다. 시어머니는 양고기는 비위가 맞지 않아 싫다고 하셨지만 토핑 된 허브들은 소스에 찍어 맛있게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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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재 대신 타이거 새우를 먹었다. 실제로는 크기가 상당했는데 사진에서는 좀 섭섭하게 나왔다. 소스를 곁들여먹으면 느끼하지 않고 시원한 맛이 났던 것 같다. 


착석에서 결제까지 1시간 밖에 안 걸렸다. 나도 음식을 꽤나 빨리 먹는 편이고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곳에서 여유 있게 두어 시간 보내면 좋을 텐데... 시누가 우리 가족 좀 창피하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6인 가족에 총 40만 원 정도가 나왔다. 그중에 13만 원 정도는 예약하면서 선결제해놓았었고 현장에서는 차액만 결제했다. 크린푸켓같은 앱을 통해 미리 주문해 놓을 수 있었지만 6인 가족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코스 요리 찾기가 쉽지 않았고 미리 예약한다고 가격적인 메리트가 딱히 있는 것 같지 않아 현장에서 모두의 의견을 물어가며 주문하기로 하고 홈페이지에 직접 예약을 해두었었다.


결제를 마치고 나서니 내일이 차이니즈 뉴 이어, 즉 설날이라며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예쁜 코끼리 인형과 도자기를 작은 쇼핑백에 담아 주었다. 색다른 곳에서 별스러운 여정을 보내다 보니 내일이 설인 것도 모두 잊어버렸던 가족들이다. 모두에게 이번만큼은 잠시 잊어도 좋은 설 명절이었는가 보다.


원래는 부산스럽게 가족들을 방문할 일정을 짜고, 누군가는 연휴 2주 전부터 분주하게 요리를 준비해야 하며, 누군가는 꾸역꾸역 먹은 음식을 소화시킬 새 없이 설거지를 해야 하는 명절이다. 올해에는 우리 가족 모두 설 명절을 특별하게 보냈다. 그래도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또 다른 반쪽의 가족들을 찾아 각자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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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나와 운치 있는 정원을 즐겼다. 레스토랑 안이 좀 더워서 시누가 고생을 했던 것 같다. 빨리 택시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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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파란 코끼리 분수도 구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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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도 구경했다. 셀카로 가족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시어머니가 찍어주신다고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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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어주시는 시어머니에게서 안도의 미소가 느껴졌다. 사실 푸켓 여행 전 엄청난 감정적 침체로 시댁 가족들은 물론이고 남편과도 데면데면했던 나였다.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과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은 채로 2025년을 맞이했다.


사실 결혼 후 세 번째 동남아 여행도 그전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즐거웠다. 설 명절을 시부모님의 아파트 안에서만 보내오다 이렇게 처음으로 나와보니 함께 있는 시간도 좋았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오면 바로 그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여느 가족들의 패턴이 우리에게도 살아나고 있는 듯하다.


시어머니는 이번이 마지막 해외여행이라고 하신다. 여정을 짜고 가족을 인솔한 나를 생각해서 즐거웠다 하시지만 남모르게 힘든 부분도 있으셨을 거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즐거워하셨던 것 같고 음식도 맛있게 드셨다. 나의 친정 엄마나 그 연세의 다른 어르신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시어머니는 에너지가 있으신 편이다.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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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을 빵 터뜨리게 했던 블루엘리펀트의 선물들이다. 그러고 보니 모두 블루 엘리펀트들이네. 그중 헝겊으로 된 것은 딸내미가 꼭 간직해 두어서 실물을 2주 만에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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