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루가 주는 삶의 깨달음

치루 생존기 - 고통을 아는 것과 경험해본 것은 엄연히 다르다

글을 쓰는데 필요한 소재를 흔히 ‘글감’이라 한다.

글감은 다양한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게으른 내게 ‘죽을 듯한 고통’이란 글감이 찾아왔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주제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치루’다.


나는 앞으로 몇편의 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텍스트를 통해 내가 겪은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겪고 있는 이 고통과 두려움에서 얻은 생각을 글로 남기고자 한다.

이를 통해 비슷한 위기에 처할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나는 이 후기를 영상이 아닌 텍스트로 남길 것이다. 그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담백하게 담아내기 위함이고, 언제나 쉽게 꺼내보고 상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너무 거창해보이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고통을 아는 것과 경험해본 것은 엄연히 다르다. 고통의 크기가 커지면 어느 순간엔가 두려움으로 변하게 되는데, 지금까지의 삶에서 마주한 몇 안되는 고통의 크기이기에, 이렇게 기록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치루’


이 두 음절이 내 인생에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예능 무한OO의 노OO을 보며 히히덕 거리던 과거가 통렬한 반성의 시간으로 다가왔다.


휴우…


그럼 이제 시간을 거슬러 치루가 나타난 순간으로 이동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느 때와 똑같은 일요일이었다.

늦은 장마로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지는 여느 때와 똑같은 일요일이었다. 평소처럼 밥을 먹고, 드라이브 스루 커피를 마시며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평소처럼 화장실 신호가 와서(나는 일 1회 이상은 반드시 화장실에 간다) 변기에 앉았다. 그런데 평소와 다른 한가지가 매우 슬프게도 바로 화장실에서 생겼다. 배변을 볼때 통증이 점차 가중되는 것이다. 종종 대변을 보다 보면 피가 나는 경우도 있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실제 변이 컸으므로 납득이 되는 상황이었고, 얼마 뒤면 피가 나지도 않았고 크게 불편함도 없었기에 건강을 과신하며 살았다. 그런데 오늘의 통증은 이전과 달랐다. 출혈도 생각보다 있었고, 무엇보다 배변 이후에 불쾌함과 찝찝함이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이후 의자에 앉으면 항문 주위가 불편해서 계속 몸을 뒤척이게 되었고, 평소와 달라진 이 한가지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기분탓이겠거니 혈액순환을 돕자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저녁 달리기를 나섰는데, 불쾌한 찝찝함은 가시질 않았고 나는 더욱 더 근심을 앉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밤이 되었고, 일상 같은 일요일은 더 이상 평소 같지 않았다. 차마 아내에겐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뒤척이며 잠을 청했다. 제발 내일 아침에 통증이 없어졌기를 바라며.


그렇게 아침이 밝았다. 내 기대와는 항문 주변의 통증과 형용하기 어려운 불편함은 가시질 않았다. 그때부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종종 났던 출혈이 떠오르며 문제가 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당장 출근을 해야하는데… 멘붕이 오는 바람에 결국 나는 아침에 늘 가던 화장실도 못가고 회사로 출근했다.


점심이 되고 여전히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나는 ‘샐러드’를 오늘 먹어야겠다고 팀원들에게 알렸다. 평소 돈까스에 환장하는 나였기에 다들 ‘이게 뭔 일이야?’하는 눈빛이었지만 감사히도(?) 샐러드를 먹는 이유를 추궁하진 않았다.


우리의 몸은 매우 정직해서 input이 있으면 당연히 output이 있다(이번을 계기로 절실하게 체감하게 된 말이다). 오늘 아침에 두려움에 화장실을 건너뛴데다가 점심을 딱히 굶지 않고 샐러드를 먹었더니 자연스레 화장실 신호가 왔다.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 결국 오후에 화장실을 다녀왔고 불행히도 걱정했던 대로 피가 나면서 뜨거운 열감이 항문 주위로 느껴졌다. 아ㅏㅏㅏㅏㅏ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구나. 무조건 병원을 가야겠다.

그래서 아내에게 처음으로


여보.. 나 항문이 아파….


라고 해버렸다. 아직 아이가 없는 신혼의 우리 부부는 방귀도 트지 않은.. 그런 사이였는데, 그 과정을 건너 뛰고 항문을 이야기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나의 고통과 불안함이 훨씬 컸기에 그런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나의 초특급 진도에 당황도 잠시, 이상을 직감한 아내는 당당한 표정으로, 잘 이야기 했다고 얼른 병원을 가보라며 용기를 주었다. 첫마디가 어려웠는데 막상 말을 하고 나니 너무 후련했다. 이제와서 느끼는 거지만 ‘대변, 배변, 항문’ 등의 이야기는 부부사이에서 숨기고 싶었지만 숨기면 안되는 그런 주제였다.


여하튼 화장실에서 고통을 견디며 지도앱으로 급히 찾아본 항문 전문 외과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나는 곧장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항문 전문이라니… 내가 이 곳에 와있다니!!

신세한탄이나 후회를 하기엔 이미 늦었다…


다행인지 혹은 병원을 잘못왔는지 몰라도 접수처에 대기 인원이 아무도 없었고 도착해서 바로 접수를 하고 선생님을 만나러 갈 수 있었다. 문이 열리자 선생님이 쾌활하게 인사하신다.


“아이쿠… 이런…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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