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 일이 더는 즐겁지 않을 때.

서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_27

by Shysbook

더 이상 발전도 어떤 기대도 하기 힘든 것만 같다는 생각이 가슴과 울대까지 자꾸만 밀려왔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3개월 간격으로 찾아온다는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첫 입사 3개월 동안은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 슬럼프가 올 기미가 없었다. 업무와 관계에 얼추 익숙해진 6개월. 그때에도 그럭저럭 넘어갔다.


문제는 지금이다.

출근길이 즐겁지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출근이 두려워졌다.
고객 응대가 형식적이고 때론 귀찮게(!) 여길 정도로 짜증이 늘었다.


뭘 하더라도 보람, 열정 따위 느끼지 못한다.
일을 하더라도 발전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 꽉 막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함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늘 그래 왔듯 문제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론은, 마음을 보살필 여유가 없어서였다.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연휴 행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매장 안을 가득 메운 손님들을 응대하고, 새 부서에 배치돼서 적응해나갈 무렵, 갑작스레 일이 몰렸다. 다 처리하고 나니 진열 체계가 새롭게 변했다. 또 새로운 무언가에 적응하다 보니 머릿속에 신경 쓸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머리와 마음속에는 온통 ‘일’ 생각으로 가득했을 정도로 나의 마음은 여유라곤 ‘1’ 도 없었다.

심신에 과부하가 걸려 툭하면 지쳐버린 탓에 나의 감정은 극도로 부정적으로 변했다.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쉽게 짜증이 쉽게 일었다. 사람들을 응대하면서 그저 형식대로 사람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조언대로 무엇이든 천천히 해보고, 스스로 여유를 회복해보려 애는 써보지만, 지난 20년 동안 급하게 살아온 사람이 단 몇 분 만에 결심했던 것이 바뀐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일로 가득 찬 마음에 이상하게 기본적인 사항들이 밀려나는(?) 경험 앞에 기본적인 사항을 쉽게 간과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실수가 늘어나더니 이젠 손님으로부터 컴플레인을 받기 시작했다. 지시받은 전달 사항을 하나씩 꼭 빼먹어 일을 다시 하거나 아니면 동료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문제점이 하나 둘 보이더니 일에 대해 스스로 실망하는 날이 늘어났다. 평소 출근길에 이상하리만큼 어깨와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알 수 없는 마음에 압박감까지 느껴졌다. 마음은 갈수록 의기소침해져만 갔다. 실수가 늘수록 자책 또한 늘어났다. 나에겐 온통 ‘힘내. 잘할 거야.’라는 맺음말(.) 보다는 왜(?)라는 의문문이 남기 시작했다.


‘왜 못하지? 왜 이런 걸 까먹지? 멍청하게 왜 그러지?’

자책의 언어가 내 전두엽을 지배했다.
사고는 갈수록 어둡고 협소해져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보였다. 생각을 고쳐먹고 나아지려 해도 또 다른 실수가 벌어진다.
실수-반성-노력-실수의 무한 반복으로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던 동료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저지른 실수로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나.’ 걱정이 밀려들어왔다.

이렇듯 최악의 상황까지 겹치니 쉬는 날에도 영향을 미쳤다. 평소 즐겨 읽던 책도 대충 읽게 되었다. 글 쓰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워졌다.
쉬는 날에도 나는 도대체 뭘 하면서 쉬어야 하나라는 머리로는 걱정하나 귀찮음이 내 머리와 마음을 지배하니 하릴없이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인스타그램 피드만 염탐하는데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휴일이 지나 밤이 되면 늘 후회로 하루를 지새웠다.

밀려오는 고민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누군가에게 토로했다. ‘내가 슬럼프가 찾아왔는데 차라리 새로운 무언가를 더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다음 날 그는 ‘그대가 진짜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보라. ’는 요지의 답장을 남겼다.

그러니까, 진짜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긴데, 문제는 그 답장 앞에서 나는 위로보다는 의문만이 더해졌다.

도대체 내가 뭘 좋아하는 걸까?’

그저 책이 좋고 글 쓰는 것이 좋아서 서점에 입사한, ‘성덕(성공한 덕후)’이라 자칭했지만, 시간이 지나 독서와 글쓰기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더러는 취미가 협소해서일 수도 있지만 본디 좋아서 시작한 일이자 동기이기에 앗아갈 수 없다는 믿음이 입사 전까지만 해도 마음속에 강력히 내재되어 있었다.

즐거운 일이 의무로 넘어가면서부터 서서히 흥미를 잃어갔다. 후에는 내가 즐기던 영역이 완전히 무너져내려 회생하기 힘든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걸 슬럼프를 겪으면서 경험한다.

취미가 직업이 된 사람들에게 있어선 또 다른 경험을 통해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복이 더딜 뿐이었다.

취미를 찾고 또 찾다 평소 취미로 돌아왔다. 풍경 사진 찍기에 관심이 많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인스타 피드에 관리를 하다 보니 어느샌가 64기가 아이폰에 저장공간이 가득 찼다는 알림이 떴다.

사진 앱을 켜고 불필요한 사진과 영상을 지운다. 쓰지도 않는 앱까지 지우자 비로소 여유 공간이 생긴다.
불필요한 감정은 걷고, 중요한 건 남길 줄 아는 게 여유인 건가.



조금 여유를...

시간이 남으면 가끔은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며 실천으로 옮겨가 보려 한다.
더 이상 내 몸과 마음에도 ‘저장 공간이 가득 찼다.’라는 신호에 위태로이 흔들리지 않길 바라본다.
그렇게 조금씩, 스무스하게. 슬럼프를 넘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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