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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동물 없는 인간만의 공간인가

by 소걸음



1.


8월 31일, <한국생명생태사상 다시 읽기> 공부모임에서는 자연과 사회 존재론의 이론화해 온 브루스 브라운(Bruce Braun, 1964∼)의 사상을 “도시는 동물 없는 인간만의 공간인가?”라는 물음을 경유하여 공부하였습니다. 이와 관련된 브라운의 문제의식은 “도시는 단순히 인간의 사회적 공간이 아니라 인간·동물·기술·물질이 얽힌 ‘인간 이상의(more-than-human)’ 사회-생태적 네트워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근대 이후 “도시=비자연, 시골=자연”이라는 “이분법”을 비판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도시가 ‘도시화’할수록 가축·도축장은 외곽 또는 ‘시골’로 추방되고, 상하수도·인프라가 지하로 매립되면서 도시의 생물학적·기술적 기반이 인간의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인간 의식에 왜곡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브라운은 도시민(인)들을 위협(!)하는 인수공통전염병(사스, 메르스 등)의 경우를 통해 인간 신체·도시가 자연(시골)로부터 단절된 것이 아니라, 동물·바이러스·기술·교통망·법·의료 장치 등과 얽혀 형성된 아상블라주(assemblage, 집합체)임을 보여줍니다. 결국 인간 신체와 도시 모두 무경계적(unbounded)이고 네트워크적인 존재라는 겁니다.


브라운은 도시가 지역적(local) 공간이 아니라 지구적(global) 장소이며, 기후위기와 탄소 문제의 주체이자 동시에 변혁의 주체·통치 대상이라고 간파(看破)합니다. 또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재해석하여, 기후위기 대응과 도시 회복력의 기술·장치(예: 자동차 연료 소비 계기판 - 인간이 자동차 연료 계기판을 보고 행동 경로를 결정하는 것)가 어떻게 새로운 ‘임시적 아상블라주’를 만들어내는지를 탐구합니다.


브라운의 문제의식은 도시를 ‘당연하게’ 인간만의 공간으로 보던 시각을 넘어, 살아 있는 네트워크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후위기, 전염병, 환경 파괴 같은 문제는 인간-비인간 요소가 얽힌 네트워크로서 도시를 이해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이러한 생각의 정치적 함의는 분명합니다. 즉 도시 계획과 관리가 단순한 효율·질서 문제가 아니라, 생명정치(biopolitics)와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술적 장치와 도시적 삶이 결합하면서 에너지 절약이나 탄소 관리 같은 새로운 규율·관리 방식이 형성되는 것을 포착합니다.


이러한 브루스 브라운의 사고는 도시가 지구적 시스템과 긴밀히 연결되면서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장소가 된 현실을 반영한다. 따라서 인류세를 사는 인간에게 있어 ‘도시 회복력(resilience)’은 인간-비인간 공동체의 생존 조건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브라운의 신체·도시 네트워크 이해는 브뤼노 라투르 (Bruno Latour)의 행위자-연결망 이론(ANT,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가 대칭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성)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의 아상블라주 개념은 신체·도시·사회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적 배치 속에서 형성된다는 브라운의 도시·신체 존재론의 철학적 기반이 됩니다. 미셸 푸코의 통치성(governmentality)은 권력이 제도를 넘어 일상적 장치와 삶의 관리로 작동한다는 것으로, 브라운은 이를 기후변화 대응, 도시 회복력 분석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또 브라운은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호모 사케르, 즉 주권과 생명의 관계를 탐구하는 생명정치 사상을 연구하면서 인류세와 생물 안보 문제의 연관성을 탐구하였습니다.


브루스 브라운의 사상은 도시를 “인간만의 공간”에서 “인간 이상의 아상블라주”로 전환해 이해하게 만들고, 기후위기와 전염병 시대에 필수적인 생태-정치적 도시 존재론을 제시합니다.


2.


위에서 살펴본 대로 브라운이 들뢰즈&가타리로부터 수용한 아상블라주 개념은 도시가 인인간만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동물·바이러스·기술·정치가 얽힌 복합체임을 말해줍니다. 이는 인간의 삶이 사람끼리만의 관계가 아니라 하늘(敬天)과 사물(敬物)과의 긴밀한 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지고, 사물과 사물, 일과 사건들(物物天, 事事天)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 근본적으로 연결된다는 만물동포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두 사유 모두 이분법(자연/사회, 인간/비인간)을 거부하고, 관계적·연결적 존재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간취(看取)할 수 있습니다.


또한 브라운이 도시와 신체는 경계 지어진 실체가 아니며 전염병, 기후위기 속에서 드러나듯, 신체와 도시는 다양한 행위자(비인간 포함)와의 네트워크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밝힌 개념은 인간이 그 이상의 존재(도시)로 전환하는 결과로 이어지는바, 이는 동학의 ‘내재적 초월’ 개념과의 유사성을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도시는 단순히 철근·콘크리트 공간이 아니라, 동물, 미생물, 쓰레기, 법률, 기술 장치가 얽힌 사회-생태적 네트워크라는 브라운의 생각은 인간과 만물은 모두 천의 기운(氣) 속에서 서로 감응하는 관계적 존재라는 동학의 사고와 연결된다. 결론적으로 브라운의 네트워크적 도시론은 동학의 ‘사사천적 네트워크 존재론’과 평행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실천적 차원에서 보면, 브라운의 도시의 회복력(resilience)과 기후변화 대응은 통치성(governmentality) 문제와 직결되는바, 이는 동학의 만물동포론은 단순히 관념적 사유가 아니라, 보국안민(輔國安民)과 광제창생(廣濟蒼生)을 위한 역사적 실천으로 끊임없이 추구되어 온 것과 대비됩니다. 동학의 관점에서 볼 때, 브라운이 꿈꾸는 생태적·사회적 전환은 도덕적 자각과 공동체적 실천 속에서 구현될 수 있습니다.


브루스 브라운은 도시라는 현대적 맥락에서 인간-비인간 네트워크의 존재론을 드러냈지만, 동학은 19세기 이미 전 지구적·우주적 맥락에서 모든 존재를 주체적·동포적 관계로 본 철학을 세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유를 연결하여 이해하면, “도시는 인간 이상의 아상블라주”라는 명제는 동학적 언어로는 “도시 또한 사사천 실천의 장(場)”이라는 의미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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