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나는 참 나쁜 시민이다

2016. 11.26 집회 후기

by 김현희

나는 참 나쁜 시민이다. 집회가 즐겁지 않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제법 큰 규모의 집회가 열리지만, 촌스럽게 멀미약을 먹어가며 주말에 광화문에 간다. 걷고 또 걸어서 광장에 도착하면 여기저기 흩날리는 깃발들이 보인다. 가슴이 울컥하는 것도 잠시, 작은 깔개 위에 한참을 앉아 있노라면 허리가 아프고 다리도 저려온다. 사람들과 의지를 나누며 김밥을 먹고 있으면 동지애로 가슴이 불타올라 추위도 못 느껴야 하는 법인데, 나는 추워 죽을 것만 같았다. 우리가 차가운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김밥을 먹는 동안, 그들은 따뜻한 곳에 편히 앉아 송로버섯이라도 자시고 있으려나. 화가 나고 억울했다. 나는 참 속도 좁다.


오늘 외신을 비롯한 언론들은 일제히, 어제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평화로운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고 보도했다. 시위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한국인들이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고도 했다. ‘착한’ 시민들은 ‘칭찬’ 받았다. 나는 얼마나 배배 꼬였는지 칭찬을 받아도 화가 난다. 그들이 말하는 ‘축제’의 장 한가운데서 나는 즐겁지 않았다. 춥고, 화가 났고, 힘들었다. 나는 저 높은 곳에 앉아있는 자들에게 더 큰 위협이 되기 위해 나왔지, 평화와 축제의 장을 구현하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이 방송국 놈들아. 동물원 우리 밖에서 관찰하듯 취재하지 마. 우리를 당신들 프레임에 끼워 맞추지 마. 라고 생각하는 나는 참 나쁜 시민이다.


나는 얼마나 미성숙한지 솔직히 차벽을 넘어뜨리고 싶었다. 이왕지사 스티커로 대체해야 한다면 아주 덕지덕지, 구멍 하나 없이 붙여버리고 싶었다. 물론 의경과 말단 경찰들은 죄가 없다. 하지만 경찰과 의경들이 스티커를 떼고 떼다 지쳐, 박씨와 그 일당들에게 ‘너네가 해라! 못해먹겠다!’고 외치며 나자빠지는 건 어떤가. 꽃 스티커를 굳이 손수 떼어내는 성숙한 시민들 앞에서, 박씨 일당들이 평생 맨손으로 차벽 스티커를 떼는 노역이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는 참 미성숙하다.


어떤 유명인은 집회에 참가할 때마다 시민으로서 구겨진 자존감이 다림질된다고 한다. 나는 얼마나 배배 꼬였는지 걷고, 또 걸어도 심란하기만 했다.


행진 속에서 문득, 전교조가 법을 안 지켰으니 법외노조가 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하던 사람이 떠올랐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보상금이 얼마나 큰지를 운운하던 사람들도 아른거렸다. 박씨 일당의 국정농단에 대해 근엄하게 꾸짖던 뉴스는 말 떨어진 지 2초도 지나지 않아 철도 노조 파업으로 인한 시멘트 업계의 타격에 대해 훈계했다. 그 근엄한 뉴스는 철도노조가 ‘왜’ 파업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단 2초도 할애하지 않았다. 가끔 사람들이 원망스럽고 두렵다. 지금 함께 거리를 걷고 있는 이 사람들과 얼마나 오랫동안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생각하니 행진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그러는 나는? 안타까워하고 화만 냈을 뿐 그간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전광판에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얼굴이 보이면 즐거운 축제의 장답지 않게 눈물이 났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나와, 내가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사실 종이 한 장의 간극도 없다. 시위에 나갈 때마다 나는 자존감이 다림질되기는커녕, 생각만 많아진다. 한걸음 한걸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평화로운 축제와 같은 집회를 반대하지 않는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사람들이 있고, 초등학생들도 나서서 발언하는 시위의 현장에서 화염병을 던지자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평화와 비폭력을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이들은 소위 말하는 ‘불법 과격 시위’를 벌이다 구속된 노동자, 크레인에 올라간 노동자, 거리 한복판에서 제 몸에 불을 붙인 청년과 농민, 아이를 잃은 슬픔에 대한 위로는커녕 후안무치한 비난 속에 소란스런 농성을 벌인 사람들이다. 그 무게를 떠안지 않고, 말간 얼굴로 평화로운 시위 문화를 자축하는 것은, 너무도 가벼워 죄스럽다.


연행된 사람이 없고, 길거리가 깨끗하고, 시위 중 폭력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 ‘우리 머릿속에서 나온’ 성숙한 민주주의의 척도인지 나는 모르겠다. 시민의식과 민주주의가 그리도 간단히 얻어지는 것이라면 박근혜와 그 일당들을 몰아내는 순간, 성숙함이 무르익은 우리 사회는 곧 정의가 강처럼 흐르는 평화로운 시민사회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말 그렇게 쉽고, 단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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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고, 복잡하고, 거칠고, 투박하고, 배배 꼬인 것도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를 독점하려 하지 말라. 민주주의는 순수하고, 얌전하고, 착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 이 글은 딴지일보에 실렸습니다. (2016년 11월 28일)

* 사진 출처- 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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