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은 없다?

by 식별
8670278659_486263_92800e91a7dfe06d30a4b1532dc73209.jpg




1. '중세'라는 용어는 으레, 기원후 500년 경부터 1500년 경까지의 일천년을 일컫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이 장구한 시기 동안, 유럽이라는 광대하고도 모호한 개념의 권역 안에서는 정말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8670278659_486263_121dd2a2b738007ea8adf22d14539a2e.jpg





서로마 제국이 완전히 멸망했고,




8670278659_486263_bc831dff32bf54b0cf99ecf421e5e697.jpg





이슬람이 부상했으며,




8670278659_486263_5a6cf3a736e500e84f3e3df6e117ddb6.jpg




카롤링거 가문이 군림했고,





8670278659_486263_99b983892094b5c6d2fc3736e15da7d1.jpg




기독교가 퍼져나갔다.




8670278659_486263_b6d3354dd1edf7a7a93a49c85fa9cffd.jpg




정치 권력이 파편화되어 (개념으로서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후세 학자들이 봉건제라고 일컫는 독특한 정치적 분권화 현상이 벌어졌고,



8670278659_486263_db01cd1172002e8de446b7053fa4bc28.jpg




10~13세기에는 온난한 기후가 지속되어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8670278659_486263_4a0c7ce7bd84308b67c244780b62a3ec.jpg





14세기에는 억천만의 사람들을 희생시킨 무시무시한 흑사병이 돌았다.





2. '중세'라는 용어는 경멸적인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로마인들은 스스로를 현대인(moderni)으로 여겼고, 그들의 조상들을 고대인(antiqui)이라 불렀다.



8670278659_486263_0365ad5f459a1c186dc23c2680b5ff4e.jpg



이러한 이분법은 14~15세기의 인문주의자들에게도 옮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진정한 조상이자 고대인들을 로마 제국의 위대한 선조들로 국한시켰는데,



8670278659_486263_ea8a185b5ab4a7525c22f6fcf5f12fa3.jpg




그 사이의 별다른 언급할 가치가 없는 중간자들이 살았던 시대는 중세(medium aevum)로 여겼다. 이런 전통은 19세기에 이르자 절정을 맞았다.



19세기 말 이후, 성실한 몇몇 역사학자들에 의해 중세에 대한 전방위적인 재평가가 시도되었다.



8670278659_486263_defa973646d129d3427aac408001f51a.jpg


우리가 쓰는 영어 소문자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카롤링거 르네상스나 중세 성기의 르네상스와 같이 주목할만한 학문적 성과들에 집중하여, 르네상스 딱지를 이곳 저곳에 붙이는 무모한 시도들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중세의 긍정적인 부분들, 그리고 이전 시기나 이후 시기와의 연속성에 주목하는 시도들은 결국 우리가 '중세'라고 지금까지 일컫는 어떠한 시대 단위가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3. "'중세'란,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개념일까?"


8670278659_486263_bb5093f09e6a49390655db125c56b903.jpg





일단 중세라는 개념이 있다고 친다면, 중세 유럽이 사실상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다분히 분절적이었다는 사실부터 주목해야한다.



흔히들 중세의 시작점으로 보는 서로마의 멸망은 사실, 동쪽 지역, 그러니까 동로마가 온존해있던 곳에서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8670278659_486263_e8e407f685449fe4401d1879de6415da.jpg




마찬가지로 중세의 종착점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동로마의 멸망은 서쪽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8670278659_486263_6a383c1c212781dcd9dcd204dac9825b.jpg




제국이 멸망한 뒤로도 수백년간, 옛 제국의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유럽의 북부 지역에는 오랫동안 원시적인 육로만이 군데 군데 지역과 지역들을 갈라놓는 숲들 사이로 뻗어있을 뿐이었다. 강줄기가 뻗어있지 않은 곳에서 교통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요컨대, 중세는 하나로 뭉뚱그리기 어렵게 조각 나 있었고, 조각 나 있다는 점이 곧 중세의 정체성이었다.





(2. '봉건제는 없다?'에서 계속)



원래쓴곳 (퍼가실 때엔 출처를 표기해주세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300년 안에 인류의 99퍼센트가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