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푸레나무와 느릅나무의 시대

by 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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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태양은 자신의 집이 어딘지 모르고, 달은 자신의 힘이 어느정도인지 짐작하지 못하며, 별은 자신들의 위치가 어딘지 모르는 시대였다. 혼란한 천체들에 질서를 부여한 것은 신들이었다. 오딘과 그의 형제들은 해안가 모래에 발자국을 찍으며 자신들이 거인의 시체로 빚은 폭력의 세계를 감상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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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해변가로 떠내려온 두 덩이의 유목(流木)을 목격했다. 하나는 물푸레나무였고, 하나는 느릅나무였다. 신들은 유목의 나뭇결을 주무르고 깎더니, 이내 사람의 형상을 빚어내기에 이르렀다. 어느덧 두 유목은 벌거벗은 두 사람이 되었다. 물푸레나무(Ask)는 남자가, 느릅나무(Embla)는 여자가 되었다. 이 한 쌍의 남녀, 아스크엠블라는 모든 인류의 조상이 되었고, 거인과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 저 편으로부터 격리된 채 이미르 시체의 속눈썹 안, 즉 미드가르드에 터를 잡고 대대손손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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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크와 엠블라의 후예들은 척박한 땅을 보리와 귀리 경작지로 바꾸었고, 양이나 염소와 같은 여러 가축을 길렀다. 그들은 기다란 롱하우스에 살며 화톳불 주위에서 가축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동시에 오랫동안 해안을 누비며 생선을 잡고 물건을 거래하면서도 먹고 살았다. 그들은 단단한 금속을 구부려 도구를 만들었고, 머나먼 남쪽의 제국으로부터 불어오는 신비로운 소문과 상품들, 그리고 아스 신들만큼이나 오래된 기원을 지닌 새로운 신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결국, 제국은 둘로 쪼개지고, 그 중 서쪽에 있는 절반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제국이 주도하던 국제 무역은 일순간에 쇠퇴했고, 동쪽에선 유목민족의 말발굽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세상이 어두워졌고, 동시에 추워졌다. 태양이 빛과 열을 잃고 검게 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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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기엔 서리가 내렸다. 그에 뒤이어 거대한 무리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난민들, 약탈자들, 그리고 온갖 종류의 외지인들이 미드가르드 이곳 저곳을 향해 밀려들어왔다. 제국의 살아남은 동쪽 지역에서 그들의 황제 이름을 딴 역병이 밀려드는 사람들 틈에 섞여들어왔다. 바야흐로 기아, 군벌, 전쟁, 그리고 끊임없는 혼란과 대이주의 시대였다. 수많은 정착지들이 버려졌고, 옛 경작지들은 숲이 되었다.


이 시기에, 스칸디나비아의 인간들 절반이 사라졌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최후의 대전쟁 이전에 오는 영원한 겨울, 핌불베르트(Fimbulwinter)를 노래했고, 예언자들은 그러한 겨울이 세 차례에 걸쳐 온다고 덧붙였다. 오늘날의 고고학자들은 이 시기를 후기 고대 소빙하기(Late Antique Little Ice Age)라고 해석한다. 세 차례의 대규모 화산 폭발에 의해 지구 온도기 일시적으로 2°C 급감했고, 그로인한 흉작과 기근이, 이 당시 고대 세계를 뒤흔든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을 불러일으켰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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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아스크와 엠블라의 후예들은 불타는 태양을 숭배해왔다. 그러나 태양이 빛을 잃고 검게 변한 이 시기에, 그런 믿음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이제 세상은 영원한 밤의 시대, 검의 시대, 바람의 시대, 도끼의 시대, 그리고 늑대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검과 바람과 늑대의 시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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