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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ekick Apr 21. 2016

나의 반장 선거 이야기

pick me pick me pick me up

주변 지인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난 어렸을 적엔 무척이나 키가 작았다.


국민학교 4학년 때의 신체검사를 또렷이 기억하는데, 그때에 키가 124cm였다. (참고로 2004년 초등학생 4학년 평균 신장은 137cm) -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어머니께선 그때 내가 너무나도 작아서 걱정이 참 많으셨단다.


그래서 별명은 항상 '땅콩', '땅꼬마' 그런 거였고, 자리도 항상 1 분단 맨 앞 줄의 담임 선생님 교탁 앞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나로선 딱히 큰 불만도 없었고, 걱정도 없었다. (아버지께서도 중 1 때까지 제일로 작았다가 키가 갑자기 부쩍 크셨다고 하셨기에, 지금은 당신 연배의 어른들 중에서도 큰 키에 속하시기에, 나 또한 그렇게 될 거라 굳게 믿었었다)


오히려 난 나의 작은 키를 '이용'해서 꽤나 많은 '덕'을 봤는데, 사연인즉...


국민학교 때부터 반장 선거에 나가면 내 연설에는 항상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습니다!"라는 말이 빠지질 않았다.

그리고 그 구절이 잘 먹혀 들어간 건지 -아님 쪼그마한 녀석이라 만만해 보인 건지- 선거 다음날이면 내 이름표 밑에는 '반장'이라고 크게 적힌 노오란 뱃지가 달려있었다. 


6학년이 되어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 때도, 단상 위에 올라가 운동장에 집합한 모든 학생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데, 연설대가 나에 비해 너무 커서 정작 연설하는 내 모습이 운동장에선 하나도 안보였다고 했다.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에 대한 추억을 말하자면, 후보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선거 공약을,

- 급식소를 세우겠다 (어린이 회장에게 그런 실질 발언권이 있으나마나)

- 축구골대에 그물을 만들겠다 (그땐 골포스트만 크로스바만 달랑 있어서, 이 그물이란 게 우리에겐 엄청난 거였다)

- 그 외, 컴퓨터 룸 만들기, 모든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개비. 등을 내세웠던 것 같다.


그때 난 그냥 소박하게, 가족 같은 분위기의 학교를 만들겠다. 며 연설을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내 캠페인의 마스코트는 -화목한 가정의 상징인 줄로만 알았던- 심슨이었다) 물론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 또한 잊지 않았다.


결과는 작지만 매운 고추의 승리.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살짝 '작전'을 바꿨는데, 똑같이 '작지만 매운 고추'를 얘기하고는 연설 맨 마지막에 아버지께서 알려준 센스가 담긴 한마디를 덧붙였다.


여러분, 제가 비록 키는 작지만

클 건 큽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결과는 키는 작지만 클 건 큰 매운 고추의 승리.


교실 뒤에서 팔짱을 끼고 보시던 여자 담임 선생님도 -다행히도- 웃어넘기셨다.


그렇게 중학교 3년을 내리 반장을 하며 보내고, 얼굴에 여드름들도 나기 시작하더니 중 3이 되어서는 한 해동안 무려 10센치 이상이 컸던 것 같다 (중 3의 2학기에는 난생처음으로 두 번째  줄에 앉게 되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학할 때 난 더 이상 '꼬맹이'라는 첫인상을 주게 되지 않았고 자리도 -가나다 순이긴 했지만- 중간줄쯤에 배치되어 앉았다.


그리고 입학 후 얼마 뒤에 한 고딩 1학년의 반장 선거.


싫지만은 않았던 '작은 고추'라는 트레이드 마크가 더 이상 없어진 난 머리칼 잘린 삼손 마냥 맥없이 그저 그런 연설을 했고 (기억도 안 난다),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채 낙선했다.


낙선의 이유를 '키'라고 하기엔 우습지만 중 3 때까지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승승장구하며 탄탄대로를 달려왔던지라 만약 내가 그 회심의 구절들을 외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았더랬다.


이런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으레 남자는 180cm는 돼야 한다고들 하지만, 나로서는 -3cm가 모자라는- 지금의 키만으로도 감사하고 만족스러울 뿐 따름이다. (소오오오올직히 말하면 딱 3cm만 더 컸으면 좋긴 하겠다. 뭐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거니까)


epilogue

이 곳 미국 (지금은 영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이 사회에 매우 작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마이노리티, 소수 계층에 속하기에 더욱 그렇다.


때문에 쉽게 무시당하고, 차별받기도 하고 -나만의 하찮은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느낌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거기에서 서러움과 분노도 간간이 느낀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 이 시기가 내 인생에 있어 두 번째로 찾아온 '땅꼬마'의 시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또한 나에겐 기회의 순간 일터이고, 예전에도 그랬듯 당당하게 '매운맛'을 증명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난 클 건 큰 녀석이니까.


2008.10.26

작고 매운 고추의 대표 형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뒤고 하고. @루브르 박물관, Dec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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