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조교로 일하기 #1
'미국에서 조교로 일하기' 시리즈는 미국으로 대학원에 가시게 된 분들, 특히나 영어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걱정과 부담을 느끼는 분들을 위해 시작한 연재물입니다. 제 지난 7년의 조교 경험과 노하우를 담아 전해드리니, 아무쪼록 대학원 입학을 앞두신 분들은 물론, 영어로 수업 혹은 발표를 해야 하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Congratulations! I am pleased to inform you that you have been admitted as a graduate student for Fall 2016 to the M.A. program in Mathematics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2016년 4월 14일,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이하 UCSD) 수학과로부터 석사 과정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전전긍긍하며 보내온 '대학원 준비생'의 생활을 마침내 청산한다는 해방감.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뻤던 점은, 춥디 추운 미네소타 생활을 마무리하고 미국에서 날씨 좋기로 유명한 샌디에이고로 가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죠. 제가 미네소타만큼이나 추운 시카고에 박사를 하러 오게 될 것이라고는.)
기뻤던 마음도 잠시, 이내 수학과 대학원생들은 모두 조교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조교로 일해 좋은 점은 많습니다. 생활비를 벌 수 있었고, 그 비싼 등록금도 조교로 일하면 절반이나 감면되는 혜택도 있었죠. 또한 교수를 꿈꾸는 수학과 대학원에게 교육 경력을 쌓기엔 이보다 안성맞춤인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걱정이 앞섰던 것은 '영어로 수업하기'였습니다. 영어로 소통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영어로 남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수학을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니. 잘할 수 있을까. 학생들을 잘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들에게 좋은 강의를 제공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들로 새 학기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이제 올해로 대학원 생활 7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UCSD에서 2년간 석사 과정을 지냈고, UIC(일리노이 대학교 시카고 캠퍼스)에서 박사 과정에 시작한 지도 벌써 5년 차가 되었습니다. 지난 7년의 대학원 생활동안 저는 조교로 일해왔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조교가 아닌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수학과는 다른 이공계 학과와 달리 실험실이랄 것이 없기 때문에 RA(Research Assistant)를 고용하지 않거든요. 더욱이 수학과는 조교 의존도가 높은 학과입니다. 대부분의 이공계 대학생들이 수학 수업을 듣는데, 수학과 교수진만으로 이 수요를 감당하기란 불가능하죠.
덕분에 지난 7년간 정말 다양한 환경에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지금껏 여름학기를 포함해 총 21개의 수업을 맡았습니다. 고작 10명 안팎의 작은 수업부터, 총원 1000명에 육박하는 대형 강의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듣는 미적분부터, 수학과 전공생들만 듣는 과목까지. 그렇게 매 학기 최소 40명에서 최대 100명의 학생들을 가르쳐왔습니다. 같이 일한 교수님들도 굉장히 다양했지요. 박사 후 과정 1년 차의 젊은 교수부터, 필즈상을 수상한 노년의 교수까지. 게다가 대부분의 다른 조교분들은 겪을 일 없는 사건들도 여럿 겪어왔지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온라인으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고, 2번의 대학원생 총파업, 1번의 교수 총파업도 겪었습니다. 7년이란 시간이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저는 조교로 일하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전부 겪어봤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2024년 5월에 졸업할 예정입니다. 그 후에는 아마 박사 후 과정을 밟으며, 더 이상 조교가 아니라 교수로서 일하게 되겠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사를 졸업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사용될 일이 있을까, 이 이야기들은 내 안에서 시나브로 이지러지겠구나. 그래서 이 경험과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글로 남겨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브런치 작가로 등단했으니, 제 경험이 필요한 분들에게 더 많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 말입니다.
이 글은 누구를 위해 쓰여야 할까. 저는 7년 전의 제 자신, 아직 조교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했던 제 자신을 위해 타자를 두드리려 합니다. 그러니 미국에 대학원을 다니시게 될 분들. 특히나 조교로 일할 예정이시거나, 혹은 일하고 계신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대학원을 준비하고 계신 대학생 분들 혹은 직장인 분들에게도 유익한 정보가 여럿 포함되어 있을 예정입니다.
허나, '대학원생'만을 위한 폐쇄적인 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어로 발표를 잘할 수 있을까, 어떤 표현들은 삼가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해야 청중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제가 조교 경험을 통해 발견한 다양한 꿀팁들도 풀어낼 예정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와 같은 원론적인 이야기부터, 강의실이라는 현장에서 사용하기 좋은 표현들까지 폭넓게 다루겠습니다.
이 연재물에 댓글창은 열려있으며 꾸준히 확인할 계획이니, '이런 표현은 영어로 어떻게 할까?' 혹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실례가 되진 않을까?' 하는 질문들은 언제든 편하게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아무쪼록 제 경험이 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미국에서 조교로 일하기' 시리즈를 시작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