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경계를 바꾸면 해법의 좌표가 바뀐다.
디자인씽킹의 두 번째 단계는 문제를 정의(define)하는 일이다. 그러나 정의란 단순히 주어진 문제를 명확하게 다시 쓰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문제로 간주할 것인가, 어떤 목표를 추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근본적 선택이다. 정의는 곧 방향이다. 같은 문제라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해결책은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간다. 따라서 오늘날의 정의 단계는 더 이상 단순한 문제 진술에 머물지 않고, 지속가능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과거의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문제 정의는 주로 사용자의 불편과 요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더 가벼운 가방이 필요하다”, “더 빠른 교통수단이 필요하다” 같은 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소비자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집중한 나머지, 종종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문제 정의가 지구적 차원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 해결책이 단기적 편리함을 넘어, 환경과 사회에 긍정적 가치를 만들 수 있는가?” 정의 단계에서 지속가능성을 포함하는 순간, 문제는 단순한 기능 개선에서 윤리적이고 장기적인 목표로 바뀐다.
AI는 이 과정에서 강력한 도구가 된다. 머신러닝과 데이터 분석은 방대한 정보 속에서 문제의 핵심 요인을 드러내 준다. 예컨대, 한 도시의 교통 체증 문제를 정의한다고 할 때, 단순히 ‘차량이 많다’라는 결론에 머무르지 않는다. 데이터는 날씨, 직장 분포, 이벤트 일정, 대중교통 이용 패턴, 심지어는 시민들의 건강 데이터까지 연결해 보여준다. 이로써 문제 정의는 “도로 확충이 필요하다”가 아니라 “대중교통 접근성의 불균형이 교통 체증을 유발한다”와 같은 수준으로 재구성된다. 정의가 달라지면, 해결책 역시 더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설계된다.
지속가능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은 정의 단계의 핵심이다. 단순히 “더 빠르게”, “더 싸게”가 아니라, “탄소 배출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 “재활용률을 얼마나 높일 것인가?”, “사용자의 삶과 환경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인가?” 같은 목표가 필요하다. 이는 디자이너가 처음부터 프로젝트의 윤리적 방향을 설정하는 행위다. 그리고 이 목표는 측정 가능해야 한다. 모호한 슬로건이 아니라, 라이프사이클 분석(LCA), 탄소 발자국 계산, 사회적 영향 평가와 같은 지표를 통해 구체적으로 관리될 수 있어야 한다. AI는 이러한 지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시뮬레이션하며, 목표 달성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정의 단계의 또 다른 중요한 전환은 다층적 이해관계자의 통합이다. 과거에는 주로 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관계에서 문제가 정의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지속가능 디자인에서는 생산자, 지역사회, 정부, 미래 세대, 심지어 비인간 존재인 생태계까지 이해관계자로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친환경 포장재를 개발할 때 문제 정의는 단순히 “사용자가 쉽게 버릴 수 있어야 한다”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지역 재활용 인프라가 수용할 수 있는가?”, “생분해되는 과정에서 토양과 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 소재가 대량 생산될 경우 생태계에 어떤 부담을 줄 것인가?”로 확장된다. 문제를 정의하는 순간부터 이미 해결책의 윤리적 범위가 결정된다.
여기서 디자인은 단순한 문제 해결의 기술이 아니라, 문제를 새롭게 구성하는 철학적 행위임이 드러난다. 정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그 미래를 향해 어떤 질문을 던질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더 많은 생산”을 문제 해결로 볼 것인가, 아니면 “더 적은 자원으로 더 오래 쓰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인가? 정의 단계에서 내려지는 이러한 선택이 곧 디자인의 철학을 규정한다.
문제 정의는 이제 단순히 효율과 편리를 위한 진술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데이터와 환경 감수성을 결합한 재구성의 과정이어야 한다. AI는 복잡한 원인을 분석하고, 지속가능 목표를 구체화하며, 다층적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는 데 강력한 도구가 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문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의 철학적 선택에 달려 있다. 정의 단계는 단지 출발점이 아니라, 프로젝트 전체의 윤리적 방향을 결정짓는 기초다. 지속가능성을 내포한 정의만이 미래 세대를 위한 진정한 디자인을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