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재 레이더

재활용·바이오 기반으로 성능과 책임을 동시에.

by JJ

디자인의 역사는 곧 소재의 역사다. 석기 시대의 도구, 청동기와 철기 시대의 무기, 산업혁명기의 철강과 플라스틱은 모두 인류의 문명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플라스틱 오염, 희소 금속 채굴, 탄소 집약적 소재 사용이 낳은 심각한 환경 문제 앞에 서 있다. 따라서 디자인의 미래는 더 이상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일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지속가능한 소재를 어떻게 발견하고 활용할 것인가라는 과제와 직결된다. 이 지점에서 AI는 혁신의 촉매가 된다.


재활용 소재는 오랫동안 환경 문제 해결의 핵심 전략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재활용은 단순히 폐기물을 다시 사용하는 수준에서 멈출 수 없다. 소재는 물리적 성질이 변하고, 품질이 저하되며, 공정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을 반복적으로 재활용하면 내구성과 투명성이 떨어져 결국 소각이나 매립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AI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재활용 소재의 분자 구조와 물리적 특성을 분석하여, 어떤 조합이 성능 저하를 최소화하는지, 어떤 첨가제를 사용하면 재활용 플라스틱이 원재료에 가깝게 복원되는지를 예측한다. 프랑스의 카르비오스(Carbios)는 PET를 효소로 분해해 원료 단량체로 되돌리는 ‘효소 재활용’을 파일럿 규모로 상용 검증하고 있으며, 색상·혼합 상태와 무관하게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루프를 제시한다. 한편 효소 설계 영역에서는 AI를 활용해 PET 분해 효소의 활성·안정성을 높이는 연구가 이어지며, 낮은 온도에서도 빠르게 PET를 분해하는 변이 효소가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다운사이클링” 대신 동등 품질의 재생(Closed Loop) 가능성을 넓힌다.


바이오 기반 소재의 탐색은 더욱 흥미롭다.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PLA, 미생물이 생산하는 PHA, 해조류 섬유, 균사체 가죽, 곤충 키틴에서 얻는 바이오 폴리머 등은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소재는 내구성, 비용, 대량생산 가능성에서 여전히 한계를 안고 있다. AI는 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분자 시뮬레이션과 데이터 기반 최적화를 통해 수십만 가지 분자 조합을 가상으로 실험할 수 있으며, 그중 지속가능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만족하는 후보를 빠르게 추출한다. 마이코웍스(MycoWorks)는 ‘파인 마이셀리움(Fine Mycelium™)’ 공정을 통해 균사체 기반 가죽(Reishi™)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업 공장에서 생산·출하하기 시작했다. 균사체 성장 조건을 공정 데이터로 정밀 제어함으로써 강도·내구성·질감을 표준화하고, 동물가죽 대비 낮은 환경영향의 대체재를 제시한다. 이는 바이오 소재가 실험실을 넘어 산업적 일관성을 확보하는 분기점을 보여준다.


MycoWorks,-Fine-Mycelium_green.jpg MycoWorks, Fine Mycelium™ Plant


특히 주목할 점은 AI가 단순히 소재의 성능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재가 환경에 미칠 전 생애 영향을 함께 가늠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바이오 플라스틱 후보가 자연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 분해 후 미세 플라스틱이 남는지 여부, 토양과 수질에 미치는 영향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결정 구조·열역학적 안정성 같은 근본 물성의 탐색 자체도 AI가 가속한다. 구글 딥마인드의 GNoME는 220만 개의 새로운 결정 구조를 제시하고 이 중 약 38만 개의 안정적 소재 후보를 도출했으며, 머티리얼즈 프로젝트와의 연계를 통해 배터리 전해질·촉매·열전 소재 등 청정에너지 분야의 후보 공간을 비약적으로 확장했다. 이러한 ‘가상 탐색→합성·검증’ 파이프라인은 소재 선택의 초기 단계부터 환경성·안정성·성능을 동시 최적화하는 길을 연다.


재활용과 바이오 기반 소재의 탐색은 디자인 미학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균사체 가죽의 유기적 무늬, 해조류 섬유의 투명한 질감, 재활용 금속의 불규칙한 패턴은 기존 소재가 제공하지 못했던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AI는 이러한 특성을 분석하고, 사용자 선호와 연결해 새로운 생태미학(Eco-Aesthetics)을 창출한다. 이는 단순히 “환경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쓰는 소재”가 아니라, “새로운 아름다움의 원천”으로 인식되도록 만든다.


그러나 여기에도 도전은 존재한다. 재활용과 바이오 소재의 상용화에는 여전히 비용과 인프라 문제, 그리고 소비자 인식의 장벽이 따른다. AI는 최적화와 예측을 통해 이 장벽을 낮출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신소재 탐색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시장, 문화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과제다.


AI는 신소재 혁신의 가속기다. 재활용 소재의 품질 저하를 극복하고, 바이오 기반 소재의 잠재력을 현실로 끌어내며, 환경적 영향을 정밀하게 검증한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은 단순히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새로운 물질 세계를 설계하는 행위가 된다. AI와 신소재 탐색이 결합될 때, 우리는 더 지속가능하면서도 더 아름다운 미래를 구상할 수 있다. 디자인은 다시금 인류 문명의 재료를 재정의하는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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