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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슈카 Dec 31. 2021

이주민 생활 1년이 이렇게 지난다

빌어먹을 코로나

날이 갈수록 점점 능력을 상실해가는 기억력에 힘입어, 지난 365일 동안의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해낸다는 건 말도안되는 일이겠지. 그렇게보면, 참 인간이란 눈 앞에 보이는 일들에 사로잡혀 아등바등 살면서도, 그 시간이 지나고나면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도 못하고 머리를 긁적긁적, 잠시 눈을 들어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앞날에 대해 잠시 상상만 할뿐인 나약하기 짝이없는 존재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이 엄밀하게 맞는 말인것 같은데, 이상하게 난 요 말이 거북스럽다) 1년차를 보내고 난 소회를 요약 정리해둬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요 며칠을 시달렸다. 이렇다할 일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코로나의 끊임없는 존재감은, 1년전 겨울과 올해 겨울의 문을 지난 지금 달라진것 없이 여전히 그 빛을 발하고 있으니까.



최근 몇달전부터의 내 삶의 화두는 Job, 구직인 탓일까, 한해를 마무리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 중 하나는 살면서 가장 많은 (취업)실패의 맛을 최근 너무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약간의 실패감과 좌절감이었다. 강한 멘탈리티와 사랑의 힘으로 잘 살고있기에, 이런 극한의 부정적인 용어를 그냥 아무감정없이 쓸 수는 있지만 어쨌든! 그렇기에 올해 그래도 무언가 성취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크고 작은 성공과 희열이 삶에서 마주하는 실패와 뒤섞여 이렇게 또 살아내고 있구나, 난 그 안에서 무슨 생각들을 하며 살았나 잠시 돌아보는 시간은 역시 한해가 가기전에 해야하는 것이로다.


Achievement.

1월. 결혼했다

5월. 첫 한국친구와의 사귐

5월. 탁구의 세계로 입문 (내년에 더 열심히 치자ㅡ.ㅡ)

6월. 코로나 백신 1차 접종 

7월. 첫 면접의 기회. 이 기회가 너무도 감사하고 귀한 것이라 이 과정을 거쳐보는 것 외에 정말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었다. (근데 취업까지 됐으면 더 좋았었을 것 같긴하다)

8월. 2021년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된, 여름휴가 한번은 다녀옴

8월. 거주허가 비자 받아냄

10월. 오스트리아 면허증을 소지하게 될 신청이 완료됨 (신청에 요구하는 서류도 복잡하고 많았기에 신청서류 검토 후 이상 무, 비용지불까지 완료한 것으로 절반이상의 성공이라 보고싶다)

10월. 오프라인 독일어 학원에서 처음 공부함. 내 독일어가 완전 바닥이진 않구나 깨달음

11월. 두번째 면접

12월. 코로나 백신 3차 부스터 샷 접종

12월. 세번째 면접. 첫 온라인 면접 경험해 봄

+ 베이킹을 점점 잘하게 된 것 같음

++ 화분 두개밖에 죽이지 않고 나머지 화분들의 무한 성장과 번식을 이뤄냄


결혼과 오스트리아 합법체류자가 된 것은 그 목적 달성을 하기까지 겪어낸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생각할 때 더욱 한없이 기쁜 일이다. 거주허가를 받기도 전 시험과 도전삼아 지원한 Uni에 첫 면접의 기회가 왔을 그 당시를 생각해보면 정말 떨리면서도 감사했고, 그때 만들고 연습한 독일어와 영어 모의 면접 Q&A 용지를 책상 서랍에 고이 담아두었다.


Challenges

. 여전히 자신없고 싫은 독일어를 쓰는 비엔나로 이주해, 무직으로 1년을 보내는 동안 락다운만 3번은 이상은 겪고, 끈질긴 코로나와 각종 변이 바이러스의 출몰로 할수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진 시간들을 여전히 보내고 있는 삶 자체가 챌린지 투성이겠지. 내 남편도 그렇고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 심지어 면접관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종종 물음표가 생기고, 때론 끝내 찾지못하는 답에 근접한 그 무언가라도 찾으려 헤매고 있다. 살면 살수록 커.뮤.니.케.이.션 으로 인해 가장 많이 감정의 동요- 이를테면 실망,좌절,속상함,스트레스 같은 것들-를 겪는다. 

. 뭐니뭐니해도 올해 내게 가장 커다란 도전이라면 (독일어 빼고), 친구 사귀기와 여행할 자유 박탈이다.


.친구, 어떻게 사귀는 거였더라?

여전히 답을 알지 못하고, 아직도 깨우쳐나가는 중이다. 

Flo의 친구들말곤 내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매일 가는 사무실도 없으니 정기적으로 만나는 동료도 없고, 코로나 때문에 독일어 학원에 다닐 기회도, 뭔가 다른 활동을 할 기회가 없으니 사람을 만날일이 없고, 또 코로나 때문에 백신 접종을 하고 난 뒤에야 한인교회에 나가게 되었으니 아는 한국사람도 없이 지내게 되었다. 추운 겨울과 결혼 및 비자 때문에 해당 관련과의 씨름 후 안식을 맞이하고 정신을 조금 차려보니 뭔가 심심했다. 가끔 한국말로, 아님 한국말이 아니어도 남편 외 수다를 떨 사람이 필요했다.

지금 내 상황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가야만 앞으로 시간이 지났을 때 그들 중 그래도 계속 알고지내는 관계가 만들어질테니, 어쩔수없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보고, 대화하고 겪어가며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거치는 수밖에. 적어도 나는 그러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누가될지 모르는 그 상대방에게 그런 시간을 함께 보낼 의지가 있음을 어필할 수 있고, 럭키하다면 나와 비슷한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을 한명이상은 만날 수 있을테니까.

일년간 스치고, 만나본 "한국"사람들을 기준으로 보자면, 역시 같은 언어를 쓰고 문화적 장벽이 높지 않은, 1차적인 소통이 가장 쉬운 사람들이 가장 사귀기 어려운 사람들이지 않나 싶다. 나이의 차, 직업이나 가족형태, 여러 여건으로 인해 드는 거리감 또는 거북함, 새로운 사귐에 대한 피로감 등의 여러 이유와, 어쩌면 별 이유없이 그냥 대화가, 만남이 재미없어서 더이상 연락하고, 계속 알고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에 내가 놓이기도,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정리하기도 해왔다. 그리고 아직 한국말로 100% 마음 편히 말을 놓고, 만나자는 연락을 쉽게쉽게 하고 지내는 사람은 없다. 여전히 몇번의 생각 끝에 말을 걸고는 또 많은 생각에 빠지게 되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감정을 갖고 종종 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과 내년부터는 서로 말도 더 편히하고, 그 사람들을 통해 또 새로운 사람들을 좀더 알아나가고, 또 그렇게 한두사람이라도 만나고싶고 만나면 즐거운 관계를 지치지않고 만들어나가기로 마음 먹어본다. 이전의 내 모습과는 사뭇 달라 많은 망설임과 익숙치않은 불편함도 있지만, 계속 관계의 손과 발을 움츠리지말고 조금 더 뻗쳐내보는 것. 그런 노력도 이민 생활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못했던 것을 깨달았다.


.혼자도 좋고 둘이서도 좋으니 여행 떠나고 싶다

우린 아직 신혼여행도 못갔으니 내년엔 가능하다면 꼭 신혼여행을, 조금은 멀리 또는 새로운 곳으로 가고싶다. 

추운 겨울엔 따뜻한 곳으로 도망쳐야하는데, 도망가는데 요구되는 조건이 너무 많고 자주 바뀌니 그냥 포기 중이다. 

가끔 Flo랑 말다툼을 하고 나면, 어디로 훌쩍 바람쐬러 떠나고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이 기회에 오랜만에 혼자 여행을 좀 해야겠다 싶으면, 어쩜 우린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진 때만 요렇게 다투고 그러냐.

한국에서 우리를 보러 온 방문객도 올해는 하나 없었으니, 이런 갑갑함은 비단 나 혼자만의 어려움은 아니겠지. 내년엔 한국에서 날아오는 반가운 손님도 맞이하고, 나도 여행다운 여행을 가야만 한다. 여행을 상상하고 계획하는 건 가장 흥분되고 즐거운 것중 하나이니, 잠시 내년 여행지 후보를 꼽아보자면, 그리스(세일링), 시칠리, 암스테르담(요게 제일 쉽겠군!), 조금 멀리는 말레이지아 또는 라오스 또는 치앙마이. 유후!~


코로나와의 전투도 그렇고 나도, 우리 모두도 가야할 길이 멀다. 삶은 계속되겠지만 답답하고 지치고, 또 기운빠지게 하는 일들로 가득하다 느끼게 할 날들이 여전히 많이 찾아올 것이다. 지구는 점점 더 아파갈테고 그걸 보는 마음도 아프고 실망스러울 것이다. 그런 마음들이 나를 너무 무너뜨리지않게 영혼과 몸과 마음을 평소에 잘 단련시켜 쉬이 빠져나오고 회복할 수 있는 탄성력을 기르고, 늘 더 멀리 깊이 볼 수 있는 지혜를 겸비하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쉽게 분을 내지 않는 온유함을 갖기를 기도한다.

숫자 2는 나와 좋은 합을 이루고 좋은 일들을 가져오는 숫자이니, 2022년! 조금 기대와 희망으로 미끄러져가야겠다.

Guten Rut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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