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송의 도리.
5천만 명 중 2천만 명. 한국 인구 중 2/5는 자영업으로 직간접 해 살아간다고 한다. 40%가 넘는 사람들이 카페며 식당을 차리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꽤 되었지만 백종원 대표님이 국정감사에 출석해 한 말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한국 자영업의 문제점이요? 있죠. 너무 많습니다!"
세계 곳곳에 있는 맥도널드의 숫자보다 한국에 있는 치킨집의 숫자가 더 많다는 충격적인 통계는 이제 익숙해져 버린 이야기이다. 이 좁은 한국 땅에는 치킨집의 숫자보다 많은 요식업 종사자들이 있고 수많은 음식과 브랜드들이 존재한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란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요즘은 1년이 무색하게 세상이 달라진다. 소비자의 기호도, 트렌드도 모든 것이 변한다. 때문에 그에 맞춰 이미 나온 제품이나 브랜드를 리뉴얼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조금 더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맞춰 갈 수 있도록 변모를 꾀하는 것이다.
오늘 하게 될 진백송삼계탕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진백송삼계탕 대표님은 이미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구미에서 성공적으로 진백송삼계탕을 론칭하신 경험이 있으셨다. 계절성을 짙게 띄는 삼계탕이란 음식을 연구를 통하여 평소에도 먹을 수 있을 만큼 개발하셨고 그에 맞는 인테리어와 메뉴도 잘 갖춰진 상태였다. 각 지점의 운영은 제삼자에게 넘기고 대표님은 다시금 도전의 길에 오르셨다.
그렇게 다시 구미 공단 근처에 새로 개장한 진백송 삼계탕은 놀랍게도(?) 장사가 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대표님은 우리에게 리브랜딩 작업을 의뢰하였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왜 장사가 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신 탓이다. 메뉴를 늘려도 보고 행사도 해보고는 하셨지만 도통 오리무중이었다. BI 작업을 할 때에는 크게 세 가지를 파악하고 들어간다. 1. 제품의 의도를 파악할 것, 2. 구매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할 것, 3. 브랜드가 지닌 이야기를 파악할 것. 이 세 가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려고 한다.
삼계탕이라는 음식은 계절성을 크게 띈다. 복날 보신문화를 중요시하는 한국에서는 삼계탕은 한 철 장사라고 해도 될 만큼 여름에 소비가 큰 음식이다.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으나 사장님은 이미 이를 극복하신 상태였다. 삼척 태백에서 구한 귀한 약재들을 사용하셨고 다년간의 연구로 맛 또한 보장되어 있었다.
사장님께 구미 공단에 삼계탕집을 차린 이유를 여쭈었다. 삼척에서 장사를 할 땐 주위에 큰 화력발전소가 있었고 주기적으로 원양어선들이 왕래했다고 한다. 고된 하루를 마친 노동자들과 오랜 항해에 지친 선원들이 삼계탕을 맛있게 먹어주었던 기억에 구미 공단에도 가게를 차리셨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파악한 구미 공단의 성격은 조금 달랐다. 노동자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대부분 타향에 내려와 일을 하는 젊은 2~30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굳이 약속이 없다면 밖에서 음식을 잘 사 먹지 않는 젊은 층의 취향을 고려해야 했다.
대표님과의 유선 인터뷰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대표님은 2001년 경 호텔에 근무하실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당시 총책임자로 호텔의 많은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특히 주방과의 마찰이 잦았는데, 대부분 메뉴의 개수나 재료의 원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때는 주방장의 완고한 태도에 지독하다고만 생각했지만, 음식을 배우고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지셨다. 마땅한 장인정신이었으며 사람 입에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예민한 문제였다고.
삼척에서의 일화도 무척이나 재밌었다. 당시 마을에 유명한 주정뱅이가 있었는데, 하루 세끼를 소주로 때우고 늘 고주망태로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진백송삼계탕의 국물을 맛보더니 정신을 차리고 그 뒤로 몇 날 며칠을 삼계탕만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일화가 화자 되어 마을에 '아, 사람 되는 음식이다'라는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또 향수가 강한 외국인 선원들이 삼계탕을 먹고 행복해해 줄 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으셨다고. 나아가 삼계탕의 세계화도 가능하겠구나 생각하셨단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아 사무실에서 며칠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작업 속도가 더뎌 대표인 O의 특단의 조치가 있었는데, 하루를 도서관에서 '정성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대상에 대한 깊은 탐구를 통해 다양한 시각을 깨우치는 방법이었는데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일단 외근할 수 있어서 좋았고, 원체 책을 좋아하는 나라서 마냥 신나서 그러겠다고 말했다. 확실히 사무실에만 남아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전국을 방랑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졌고, 왜 이름이 백송인지에도 의문이 생겼다. 음식 관련 서적들을 들춰 보다가 다 비슷한 이야기들 뿐이라며 한숨 쉬기도 했다.
백송이라는 이름은 대표님의 법명 '일송'에서 따왔다. 우리는 BI 작업을 통해 진백송삼계탕이 전할 수 있는 음식의 가치를 생각하고자 했다. 요리를 하며 전국을 떠도는 모습이, 대동여지도를 완서 하기 위해 유랑하던 김정호의 모습이 겹쳐 보였고, 음식으로 현대인의 허한 곳을 채우고자 하는 모습이, 마치 민생을 구제하기 위해 동의보감을 세상에 내보인 허준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우리는 진백송삼계탕을 위해 '채움'과 '사명감'이라는 키워드를 정했고 이를 본질로 삼아 문자언어 작업에 들어갔다. 각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마치 실록처럼 기록해 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한번 물꼬를 튼 아이디어는 쉴 새 없이 흘러나왔고, 되려 그중에 걸러내는 작업이 더 힘들었다.
구미 공단의 특성을 고려하여 배달앱을 활용하자는 의견도 적극 수용되었다. 다만 '진백송삼계탕'이라는 이름 만으론 삼계탕을 파는 이미지가 강하니, 상호명을 바꾸어 올리는 게 어떻냐는 의견이었다. 또한 삼계탕만이 아닌 여러 닭 요리를 파는 이미지를 채우고자 했다.
닭도리탕의 '도리'는 수년 동안 새를 뜻하는 일본어 '토리(とり[鳥])'라며 비판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도리가 한글의 옛말이었던 점이 밝혀지고, 일본에서도 닭도리탕(タクトリタン)을 그대로 음독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점, 해동죽지(海東竹枝)’에 도리탕(桃李湯)이 존재하는 점 등. 많은 이유들이 닭도리탕이 일본어의 잔재가 아니라 순우리말이라는 의견을 뒷받침 하고있다.
속세에 나와 현대인을 음식으로 치료하고자 하는 사명감을 가진 백송. 그런 백송의 도리(道理)는 무엇일까? 옛스러움을 살리고 동시에 위트를 표현할 수 있는, 그리고 젊은 층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름은 어떤 것일까? 여러 고민 끝에 우리는 배달 앱을 통해 고객에게 다가갈 진백송삼계탕의 새로운 이름을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