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기준이 뭘까
얼마 전, 나와 여자친구가 운영하는 ‘무수 책방’에서 재즈 공연을 했다.
작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연한 기회로 핸드팬 공연을 한 것을 착안해서 매년 여름밤에 공연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이어진 기획이었다.
이름 하야, ‘무수 한 여름밤 음악회’, 누군가에게 한 여름밤의 무수한 별이 반짝이듯 마음에 연주를 해주고 싶달까.
하지만 음악에 대해서 둘 다 문외한이라 지인 찬스를 이용했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옆 집에 사는 ‘김오키’ 형에게 슬쩍 말했더니 흔쾌히 공연을 수락했다.
전석 매진도 모자라 예매를 못한 사람들이 찾아와 부탁할 지경이었다.
물론 그것은 ‘김오키’라는 재즈 음악가에 대한 영향력이었으므로 나의 공은 아니었으나, 책방 가득히 찾아서 음악을 음미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얼마나 뿌듯하고 부자 된 기분이었던지.
스스로 부자가 된 기분을 이토록 강하게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평소에도 돈을 모아서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을뿐더러(그러니 책방을 하고 있다.)
부자인지 아닌지 결정되는 것은 늘 마음의 태도라고 느껴왔던 터였기 때문이다.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나(무무)와 여자친구(수수)는 각각 배우와 아로마테라피스트라는 주업을 갖고 있고, 실제로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들은 많지만,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엔, 무려 강남에 널찍한(?) 책방을 운영 중이고, 화려한 직업을 각각 갖고 있으니 돈이 많은 줄 안다.
그런 눈빛을 볼 때가 있다. ‘원래 돈이 많겠지…’ 하는.
그것은 사실 내가 가졌던 눈빛이기도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타인에게서 그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누군가 정말 멋진 것을 가졌을 때, 나는 그들의 노력이나 과정을 들여다볼 생각 조차 하지 않고 그런 눈빛으로 때우고 만 것이다.
왜냐면, 노력과 과정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도 그들처럼 노력해야 함을 알기 때문이랄까. 보통은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충분히 힘드니까 지금도.
‘나는 나중에 시골에서 카페를 차릴 거야.’, 혹은 ‘ 작은 와인바를 운영하는 게 내 꿈이야.’ 비슷한 말을 종종 듣는데,
나와 여자친구는 ‘나중’이 없는 편이다.
하고 싶은 것은 당장 해야 하는 편이고, 그 스케일이 여자친구는 훨씬 크다.
보통 나의 염원이라는 것은 내 한 몸이 움직이는 범위 안에서 일어난다. 내가 어디에 가거나, 내가 어떤 행위를 하거나, 내가 누구를 만나는 것.
하지만 여자친구의 염원은 기본 단위가 부동산이다.
할 말은 많지만 차치하고, 그래서 생겨난 것이 ‘무수책방’이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나중’의 꿈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린 그들보다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 단지 미래를 계산하지 않았을 뿐인데도 그들은 우리를 ‘부자’로 본다.
변명하기 미묘한 오해를 그냥 둠으로써, 우리는 부자가 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부자가 되거나,
가득 찬 책방을 보고서 스스로 부자 됨을 느낀다.
둘 다 실제로 내 통장 잔고나 경제적 여유에서 오는 결과는 아니다.
어쩌면 삶이라는 것은, 그리고 꿈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증명하는 삶보다는, 맛보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깊이 맛보는 순간 부자가 될 거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오늘 하루도 부자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