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19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책을 읽는 대통령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한 권밖에 읽지 않은 대통령은 또 얼마나 위험한지를 우리는 알게 되었지요. 우리 역사에서 다독서로 유명했던 대통령들은 모두 민주정권이었는데요, 그들은 자신들의 독서를 정책으로 연결하여 국민들 삶의 질을 변화시킨 많은 사례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 읽는 대통령은 끊임없이 겸손하고, 자기 생각을 의심케 하여 독단하지 않게 하고, 타인의 시시비비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갖게 되니, 우리 삶에 곧바로 연결되는 수많은 정치, 사회, 문화복지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요즘 조기대선으로 후보자들의 면면이 전 국민에게 알려지는데요, 저는 가장 우위로 두는 요소가 ’ 책 읽는 대통령, 시 읽는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나라 문인 유종원은 ’ 서중자유천종속(書中自有千鍾粟)-글 속에 큰 재물이 있다-는 말을 했는데, 이에 더하여 송나라 황제 진종은 권학문에 ‘서중자유황금옥(書中自有黃金屋)’-글 속에 황금으로 된 집이 있다-을 남겼다네요.
시가 있는 아침편지 4년 차 첫날을 맞이하면서 편지의 제목을 <그리운 봄날 아침편지>라고 명명하며, 좀 더 인문학과 밀도 깊은 시 편지가 되도록 해볼까 합니다. 추상적이고 끝도 없는 공부의 즐거움을 실체적으로 체감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서요. 그러려면 가장 먼저, ‘부지런함’과 ‘끈기’를 체득해야 되는데, 오늘도 미적거리면서 일어났네요. 분명 어제와는 단 한 터럭 지라도 다른 호흡을 해야겠다 맹세했건만... ^^ 다행히 온택트로 근대시인(백석)을 만나는 회원들께서 경종을 울려주는 바람에 재 장전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군산에서 세월호 추모행사가 있어요. 어느새 벚나무에 몽그락 거리며 올라운 새순들이 여름 한 자락을 선보였을지라도, 여전히 지금은 봄날의 천국... 가까운 은파로 꽃길 산책하시면서 추모행사에도 가보시고요. 겨드랑이에 시집 한 권 넣고 학창 시절의 테이프를 되돌려보며 시 한수 낭독해 보시면 어제가 오늘이 아니고, 내일보다 더 내 것인 오늘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은 현역시인들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로 꼽힌 백석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들려드립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뿐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 마이라 릴케’가 그러하듯이
사진, 지인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