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15
꽃밭의 경계 - 안도현
꽃밭을 일구려고 괭이로 땅의 이마를 때리다가
날 끝에 불꽃이 울던 저녁도 있었어라
꽃밭과 꽃밭 아닌 것의 경계로 삼으려고 돌을 주우러 다닐 때
계곡이 나타나면 차를 세우고 공사장을 지나갈때면
목 빼고 기웃거리고 쓰러지는 남의 집 됫박만 한 주춧돌에도 눈독을 들였어라
물 댄 논에 로터리 치는 트랙터 지나갈 때
그 뒤를 겅중겅중 좇는 백로의 눈처럼 눈알을 희번덕거렸어라
꽃밭에 심을 것들을 궁리하는 일보다 꽃밭의 경계를 먼저 생각하고
돌의 크기와 모양새부터 가늠하는 내 심사가 한심하였어라
하지만 좋았어라
돌을 주워들 때의 행색이야 손바닥 붉은 장갑이지만
이 또한 꽃을 옮기는 일과도 같아서 나는 한동안 아득하기도 하였어라
그렇다면 한낱 돌덩이가 꽃이라면 돌덩이로 가득한 이 세상은 꽃밭인 것인데
거기에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아무 욕심이 없어졌어라
나와 나 아닌 것들의 경계를 짓고 여기와 여기 아닌 것들의 경계를 가르는 일을 돌로 누를 줄 모르고 살아왔어라
꽃밭과 꽃밭 아닌 것의 경계는 다 소용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경계를 그은 다음에 꽃밭 치장에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어라.
오랜만에 출간한 안도현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거둘 수 있게 되었다>를 폈다.
텃밭 가는 길에 만개한 능소화를 보면서 어사화를 머리에 이고 장원급제를 알렸을 그 누군가를 생각한다.
재주만 있다면 능소화 덩굴을 그려다가 나도 창가에 걸어두고 싶다.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 다른 세상인가.
어떻게 이런 표현으로 나의 마음에 괭이를 내려치는지.
‘꽃밭을 일구려고 괭이로 땅의 이마를 때리다가 날 끝에 불꽃이 울던 저녁도 있었어라’
아, 내일 텃밭 가는 길에는 내가 내려친 호미, 괭이 끝에 놀라 울었을 아침에게 고백해야지.
“날아 날아, 새 날아 내 마음의 경계를 거두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