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보기조차 어려운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바라는 일이 무엇일까. 모르겠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만 같다. 그렇게 살며 살아가는 나날들.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하고 싶은 일, 해 보고 싶은 일들을 떠올려 보면 많기도 많은데, 정작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고르라면 망설이게 된다. 지금 양손에 쥐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가 없는, 그런 날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채로 하루하루 해야 하는 일들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 떨궈 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왼팔을 주무르고 있었다. 무심코 팔을 주무르게 될 정도로 아파져 있는 팔. 언제부터 아팠는지도 모를 어깨. 아니, 언제부터 아팠는지는 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아파진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통증은 지금도 매일매일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이 팔에 흐르는 피는 지금 얼마나 끈적일까.
지치고 힘들 때,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 내가 흘린 피는 그렇게도 끈적였다. 피도 물처럼 같은 액체일 텐데, 고통의 날들 중에 내게서 흘렀던 피들은 그렇게도 끈적여서 나로부터 멀리 흘러가지도 못하고 내 곁에, 가까이 고여 있었다. 아마 지금 내 몸에 흐르는 피도 충분히 끈적일 것만 같다.
무엇이 즐거운지도 모르겠는 나날. 오늘 하루 중에 즐거웠던 순간이 있었는가 떠올려 보다가. 너무 어려운 주제다 싶어 오늘 있을 하루의 남은 시간 중에 내가 기대되는 순간이 있을까 생각해 봤다. 하루를 너무 힘들게 살아서일까. 오늘 하루의 남은 시간들 중에 기다려지는 것이 밥 먹는 것이랑 잠자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맞이한 식사.
밥 한 끼가 겨우 그렇게 소중한데, 밥 한 끼 겨우 기다리면서 하루를 버티었구나 싶었다. 뭐가 뭔지도 모르겠을 메뉴를 골라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식당을 나서는 내 머릿속에는 이미 이다음에 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매일 매일 죽을 듯이 일을 하는데도, 어제 그렇게 일을 했는데도. 일을 마치고 도착한 집에서 양말을 벗고 일어설 힘이 없어서 그대로 방바닥에 쓰러져서 숨만 몰아쉬게 일을 했는데. 오늘도 오늘의 일이 가득하다.
뭐부터 할까. 뭐부터 해야 할까. 남은 일이 어느 정도였지. 얼마나 해야 끝날까. 오늘은 일찍 마치려나. 일, 일, 일. 매일 반복되는 일들을 오늘도 머릿속에 가득 채운 채로 식당을 나서던 그때, 문득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리고 알았다. 그동안 나는 참 자주도 고개를 숙인 채로 걸었구나. 발 밑에 그렇게 찾을 것이 많았을까. 그렇게 볼 것이 많았을까. 고개 하나 들 힘이 그렇게 없었을까.
고개를 들어 본 하늘엔 저녁 노을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 동안의 나는 하늘 한 번 볼 쉼 없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문득.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이 서로 바빠 잊고 있던 오랜 친구 같아서 뭉클해졌다.
잘 지냈구나. 잘 지내고 있었구나.
나도 잘 지냈어. 나, 잘 있어. 괜찮아.
바로 일을 둘러보러 돌아가려던 발길을 꺾어 도로 옆 연석에 걸터앉았다. 장마철 내리던 비로 연석은 젖어 있었지만 젖은 그 위에 앉는 것을 개의치는 않았다. 어차피. 일을 다시 시작하면 이 잠시 젖는 것보다 더 많은 땀에 젖게 될 테니까.
저도 잘 곳이 있어 그 저물 곳을 향해 사그라드는 해를 바라보며. 그리고 그 노을을 보고. 그러다 핸드폰을 꺼내 한 컷 사진도 찍어보고. 그러며 앉아서 멍하니 있는 나를 직장 동료들이 지나쳐가며 쳐다본다. 얼마 전의 나처럼 하늘 한번 바라 볼 짬 없는 삶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
우리의 삶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엄청난 부와 굉장한 휴가와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 매일을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하늘 한번 바라볼 작은 짬. 그것일른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우리를 보며 응원의 적색 하늘을 그리고 있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오늘 하루 그렇게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루 만난 노을 한 장을 기억에 담고 또다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