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1.
여기저기 나라를 옮겨가며 살게 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 관련 학교 발런티어 일은
저절로 골고루 하게 된 것 같다.
그간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여러 일들을 잠깐씩 거쳤어도
딱히 내 커리어로 내세울 만한 경험은 없어 보였다.
모 단체 보조 스태프로 있던 2019년,
밀피타스의 한 한국 회사에서
직원 구인 의뢰가 왔는데,
꽤 괜찮은 초봉 급여 조건에
장기 근무 가능한 사람을 찾고 있었으며
이전 여타 경험이 없어도
충분히 교육가능하다는 코멘트에,
왠지 내가 해볼 수 있겠다는 근자감으로
영문 레쥬메를 얼떨결에 준비하게 되었다.
20여 년 전의 학력 사항 이외에
여러 나라 학교마다
학부모 모임을 이끈 경험과
온라인 자원봉사의 경험 등을 약술하고
커버레터를 고민하고 준비하며
정직원으로 출퇴근하는 꿈을 꾸어봤으나.
결국 그 회사가 거래하는 부동산 지인이 추천한,
유경험자 다른 스탭에게로
최종 낙점이 되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 차라리 내가 내 이름으로 회사를 만들고 말지
이 나이에 엔트리 직원으로 가는 건
서로의 부담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2.
내가 사는 실리콘밸리 지역은
혁신과 열정이 넘쳐나는 지역이다.
큰 회사들은 그 나름대로 스케일 있게,
스타트업들은 자유로운 이합집산을 통해,
벤처 투자가들은 정보와 네트워킹을 통해,
서로 돈맥을 짚어나가며 연합하는,
난다 긴다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있는
아주 특이한 동네이다.
이 지역에서 여러 종류의 자극을 받게 되면서
내 마음속에서 어떤 불길이 일고 있었다.
자유로운 시간 관리와
자유로운 나만의 글쓰기가 가능한
여러 방법들을 모색 중이었는데
2021년 봄 어느 날 우연히 관련 블로그를 만나게 되고
나만의 최종적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 나만의 회사를 만들자.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내가 쓰고 싶었던 글과
미국 현지의 좋은 글들을 모아 모아
고국에도 전달할 수 있도록
내가 새로운 판을 만들고 깔아 보자.
3.
2020년 한 해는 모두가 그랬듯
코비드로 암울하게 보내 버리고
2021년 아이의 대학 졸업식이 있은 이후
세 식구는 한국으로 날아갔고
해외 입국자 격리 2주를 거쳐야 했다.
강서구 작은 오피스텔에 갇혀 지내며
세끼 배달음식으로 연명하던
그 지루하고 기나긴 시간이 가고.
우리가 격리를 마치고 네거티브 결과를 받아 든 날
정부는 해외 입국자 격리 조치 중단을 발표했다.
드디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면서
그간 준비해 온 한국 내의 신분 업데이트를 마쳤고
관련 구비서류를 준비하여
거주지 구청과 세무서로 갔다.
1인 출판사는 서류가 복잡하지 않고
관계기관 담당자들도 친절히 안내해 주므로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으나.
한 번 정해진 출판사명은 정정/변경 안되고
기존 출판사명과는 중복되어선 안된다고 하기에
구청으로 걷는 길 위에서 내내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네이버 아이디 ‘고요한 밤’에서 따와
‘고요밤‘으로 최종 결정하고
모든 신고 절차를 잘 마쳤다.
무슨 막걸리 이름이냐는 남편의 대꾸에도
허허 웃으며 돌아서던 그때에
내 심장의 맥박이 고동치고 있었다.
나만의 새로운 도전이
일차적으로 첫발을 떼던 기념의 시간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