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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닿지 못한 두 마음

35년 전의 설렘을 마주하다

by 고요한밤

1.

며칠 전 어느 가을날 아침이었다.

수십 년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거실 가구 한켠에 처박아둔 예전 앨범들이 생각났다.

“이번 이사가 끝나고 나면 천천히

사진들 정리나 제대로 해보리라“

매번 이삿짐 꾸릴 때에 다짐만 했더랬다.

그간 각종 이사를 거듭하며 거처를 옮기면서도

맹세코 단 한 번도 앨범 꾸러미를 건들지 않았으니

특히 나의 흑역사인 못난이 어린 시절이 담긴

오래되고 두툼한 앨범은 더욱 손대고 싶지 않았다.

당시 각각의 비닐 공간에 사진 한 장씩 끼우며

간단한 메모도 같이 공들여 적었었다.

핸드폰 속 사진들과는 또 다른 아날로그의 유물들이리라.


2.

결혼하고 친정서 내 짐들을 챙겨 나올 적에

친정어머니는 내 서랍과 앨범을 한번 훑으시고

예전 대학시절 남자 친구 포함

남학우들과 어울려 찍은 사진들, 편지들을

선별하여 삭제 처리하신 후 사후통보를 하셨었다.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남자들이 넘쳐나는 대학 학과를 다니며

숱하게 찍힌 사진들과 일기, 편지 뭉치들은

어쨌든 나의 기록이고 소유이건만

처리는 해도 내가 할 터인데

왜 엄마 맘대로 없애버렸냐고 신경질만 내곤

그 이후 그렇게 망각 속에 묻었다.

그리곤 이삿짐의 일부로 날 따라다닌

예전 어릴 때 앨범을 이렇게 갑자기 들추게 될지 몰랐다.


3.

8-90년대만 해도 손편지가 주된 연결 수단이었다.

전화 통화로도 담을 수 없던 수많은 말들을

밤마다 편지지 위에 쏟아내며 적어내려 갔다.

규격봉투에 상대방의 주소를 정성껏 쓰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집어넣는 순간부터

답장을 직접 내 손안에 받고 싶어

목이 빠지게 집배원 아저씨를 기다렸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은 올까나

창문 밖으로 따르릉 자전거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대문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게 일상이었다.

마침내 반가운 이름과 내 이름이 적힌 봉투를 받아 들면

그 나이에 느꼈던 기쁨과 뿌듯함이란.

편지에 사진이나 엽서가 동봉되어 올 땐 더더욱 반가웠다.


4.

수십 년 만에 어릴 적 앨범을 열어보니

친정어머니가 다행히 중고등 시절은 보존을 해주신 덕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그 사람의 독사진 몇 장과

그 사람이 답장에 동봉해 준 사진 한 장을 마주했다.

남산식물원에서 찍었다며 보내준 한 송이 빨간 동백.

참 많이 생각하고 좋아했던 그 사람이 보내준,

겉봉 개봉 후 펼쳐진 그 사진 한 장만으로도

어린 사춘기 소녀의 마음은 한없이 콩닥거렸다.

대학 진학 후 생일 축하 꽃 한 다발을 챙겨

용감하게 그 사람을 불쑥 찾아갔으나

서로 만나지 못하고 터덜터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엇갈리고 나서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

빛바랜 동백꽃 사진 한 장을 통해

그때와 그 사람과 나의 푸르른 시절을 다시 만났다.

Love may go and memory yet remain,

memory may go and relief even then may not come

사진 뒤에 적힌 내 필적의 글귀를 마주하니

가슴 한켠이 찌르르 떨려옴을 느낀 순간이었다.


나이 들며 이런 되새김할 수 있는
귀한 추억과 인연들이 남아 있음에 감사.
오십 고개를 넘으니
산다는 것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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