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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박종석 May 05. 2020

나는 부모와 화해할 수 있을까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항상 마음이 무겁다.
'이번에는 부모님을 뵈러 부산에 한번 다녀와야 하나?' 불편하고 두렵다, 가슴이 요동친다.
나는 현재 부모와 정서적, 물리적 거리를 두고 있다. 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어머니 얼굴을 본 것은 2018년 가을 할머니의 장례를 치를때였다. 3일장을 치르면서 어머니와 대화하면서 느낀 것은
‘이 사람은 본인이 준 상처를 전혀, 하나도 기억하고 있지 않고 있구나’ 라는 것이었다.

“이번에 반에서 1등을 못하면 넌 내 아들이 아니야”
“또 걔한테 지면 차라리 죽어버려”
학창시절엔 항상 이런 말을 듣고 살았다.

하나뿐인 아들한테 왜 그렇게 모진 말을 하셨어요, 라고 물어볼 때 마다 어머니는 말했다.
‘난 그렇게 말한 적이 없어, 네 기억이 잘못된 거야’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 엄마덕에 의사가 된 거야’

내가 부모에게 평생 원했던 것은 돈도 사랑도 아니었다. 그저 미안하다는 딱 한마디였다.

어머니는 단 한번도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라고 했을뿐 자신의 말이나 소유욕, 집착이 자식에게 상처를 준건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엄마는 최선을 다했어’ 라며 항상 변명을 하셨고, 엄마를 이해하라고만 했다. 때로는 아버지 탓, 때로는 가난을 탓했다, 어쩔 땐 유방암을 이유로 나를 압박했다. 92년 엄마는 초기 유방암을 진단받았는데, 그뒤로 20년 넘게 “엄마는 암에 걸렸어 몇 년이나 살겠니, 그러니까 시키는대로 해” 를 반복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 사귀었던 여자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우리 아들 성적이 떨어지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소리지르고 욕을 했다. 물론 본인은 기억하지 못한다.

왜 이렇게 서로의 기억이 다른 것일까. 인간의 기억은 원래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을 경험해도 서로 다르게 선택적으로 기억을 저장한다. 기억이라는 것은 인지 기능인 동시에 감정적 상태, 정서에 무척 큰 영향을 받는다. 또한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인 해마체가 불안과 두려움을 조절하는 편도체 옆에 위치한다는 점도 영향을 미치는데, 즉 본인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자신의 수치심, 죄책감을 회피하기 위해서.

내게 상처를 준 무수한 폭언들을 다 잊어버린 것일까. ‘나는 나쁜 엄마가 아니야 ‘라는 생각이 그 기억을 왜곡하고 묻어버린걸까. 아니면 엄마로서의 죄책감이 무의식중에 작동하여 기억과 사건을 변형시킨 것일까.

마지막으로 엄마와 통화를 한 건 작년 가을쯤이었다. 새 아파트를 사느라 노후자금까지 다 써버렸으니 생활비를 더 보내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께 이미 지금까지 10년동안 2억원 정도를 보냈으며, 이제는 내 인생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또한 어머니가 가진 새 아파트와 땅을 팔고 적당한 곳으로 이사가면 충분히 노후자금이 생기지 않느냐고 의논 드렸다.

“뼈빠지게 고생해서 의사 만들어 놨더니 네가 엄마를 버리는 구나, 사람들이 욕한다, 부끄럽지도 않니? 엄마가 죽어야 후회할래?”
항상 그랬다. 의대에 안 간다고 했을 때 , 엄마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을 거부했을 때, 더 이상 생활비를 주지 않겠다고 할 때. 항상 엄마는 자기 말에 따르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했다.

“너가 아직 어려서 몰라,”
“다 너를 위한거야, 사랑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엄마는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다. 자신이 최고의 엄마라고, 정말 자식을 사랑해서 그런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착각의 간극이 아프고 슬프다.
어쩌면 이 거리는 영원히 줄어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부모가 자식한테 그 정도 말도 못하니? 너네 할아버지, 할머니는 더 심했어’
내가 받은 상처는 보상받지 못하고 사과 받지 못할수도 있다. 더 슬픈 사실은 내 어머니 역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란 사실이다. 잘못한 사람은 없다. 그저 아픈 사람들만이 남았을뿐. 그 사실이 더 슬프고 무겁다.

나는 상처에 대한 사과와 보상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트라우마와 과거속에 살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이해가 안되면 안되는 대로
용서가 안되면 안되는 대로

나는 살기로 했다.
억지로 화해하지 않아도 돼. 떨어져 지내도 괜찮아.
네가 나쁜 게 아니라고, 부모를 버린게 아니라고.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내 감정까지 온전히 인정하고 존중해보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이 화해의 시작이자 상처를 보듬는 첫걸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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