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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장미 / 리베카 솔닛 / 2021

by Silverback

그녀는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확실하게 그녀는 환경운동가이고, 환경과 인간을 별개로 구분하여 생각하는 여타의 정치적 셀럽들과는 달리, 공간 속에 놓인 존재를 모두 포함하는 범 우주적 접근법을 지향한다. 그리하여 그녀의 작품들을 읽고 있노라면 언제나 수많은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하늘의 구름과 석양과 산과 나무와 늑대와 양과 사람과 노인과 아이와 시냇물과 역사, 그리고 시간의 경험들이 한 줄의 맥락으로 꿰어진다. 이러한 그녀의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항상 너무 포괄적이고 두서없는 소재의 융합에 어리둥절하게 마련이며 눈에 띄는 주제를 찾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이 친절하고 따스한 대모의 의도를 한낱 여인네의 투정이나 할 일 없는 여자의 페미니즘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아주 오랫동안 자기의 길을 걸어온 이 감정의 장인은 자신의 인생 자체로 그 본질을 증명하면서 보란 듯, 손에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려내기 시작한다.


나는 언젠가부터 내가 인문학에 빠져든 방식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지를 고민하다가 마침내 이 작품을 읽고 나서야, 마치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있는 관계망 속에서 서로 의미를 주고받는 인문학적 연결고리의 뉴런을 통하여 수직적 위계나 중앙화에 구속되는 일 없이 무한으로 확장해 나가는 리좀형(rhizomatic) 전개방식이 나의 독서습관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비유라는 확신에 기꺼이 동감하고야 말았다. 그것이 맞다면 두서없이 여러 방향으로 진행되는 독서습관도, 그리고 계획 없이 춤을 추는 관심의 발작도 모두 이 근사한 작가의 작품으로 설명이 된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그녀가 진작에 정리한 명품에세이 '방랑벽(wanderlust)'의 가치관과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을 느꼈다. 리베카 솔닛은 조지오웰의 정원에서 방랑벽 증세를 보인 것이다.


감정의 섬세한 사각지대를 예리한 핀셋으로 들추어내는 이 노련한 작가의 필력은 사방으로 확장해 나가면서 우리의 기억을 어루만진다. 독재와 전체주의에 반대한 혁명전사의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풍성한 장미가 가득한 정원에서 대지에 맨발을 파묻고 삶의 직접적인 체험과 생활의 현실적 아름다움을 노래한다는 것을 리베카 솔닛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동물농장'과 '1984'의 정신적 배경으로 스며든 조지오웰의 전원적 일상에 집중하면서, 형상화하기 어렵고 계량화할 수 없는 삶의 아름다움에 빠져든 그의 장미를 상징화한다.


조지오웰이 왜 장미를 심었을까. 왜 장미에 집착했을까. 나무와 전원과 토양과 자연이 그에게 어떠한 의미였을까. 이러한 의문이 인문학적 여행의 시작인 것이다.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누구나 그렇다. 누군가의 행동과 생각이 어떠한 목적과 이유를 갖는 것. 그리고 그것이 타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 그 의도를 환하게 밝혀주는 것. 눈먼 사람이 지팡이로 길을 더듬어가듯, 하나씩 하나씩 관련이 있는 소재와 시간과 역사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주인공과 그 마을과 환경과 공간을 아름답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이 독특하고 기이한 책의 매력이다.


사는 것이 팍팍하다면 먹을 것이 필요하니 빵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근사한 장미 한 송이가 식탁에 올라와야 한다. 그리하여 이 근사한 책은 한마디로 설명될 수 있다.


빵이 아니면 장미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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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나타내는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인간다운 삶에는 '빵과 장미'라는 구호로 대변되는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아가 장미의 이면에 숨겨진 추악한 현실을 폭로함으로써 심미성과 윤리성의 관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옮긴이 최애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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