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롭고 당당한 덕후를 위한 서비스에서 한국 대표 애니 스트리밍 서비스로
오미크론 때문에 집안에 갇힌 요즘, 스트리밍 서비스에 의존하며 하루에 필요한 자극을 충족하고 있다. 요즘은 예전부터 알던 애니메이션 OTT 서비스, 라프텔을 이용하는데, 첫 달 무료에 90년대생 추억의 애니메이션부터 요즘 핫한 신작까지 모두 스트리밍 중이라 꽤 만족스럽다. 이제는 라프텔을 대체 불가한 '대한민국 1위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로 불러도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라프텔은 어떻게 이런 위치에 있게 되었을까? 이번 글에서는 라프텔이 시장에서 예전에는 어떤 위치에 놓여있었으며 현재는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논하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PZBxXNVvFI
라프텔은 쉽게 말하자면 애니계의 왓챠, 애니계의 넷플릭스다. 합법적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표방하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감상 서비스를 지원한다. 웹툰과 라이트노벨, 만화(종이책) 감상 서비스는 아직까지는 지원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을 스트리밍 하는 서비스는 꽤 많지만, 라프텔은 여러 방송사의 애니메이션을 한 곳에 모아놔서 국내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며, 태그별 검색이 가능하며 테마별로 추천도 해주고 있다. 서론에서 언급된 애니 추천 서비스 역시 지원했으나, 서비스 중지되었다. 2019년에는 리디 주식회사에 합병되었으며, 한동안 애니메이션 자체 더빙이나 웹툰의 애니메이션 제작 등으로 세를 확장했다. 2021년 12월, 리디북스로부터 분할되었다.
라프텔의 이야기를 할 때는, 프로덕트 포지셔닝을 빼놓을 수 없다. (프로덕트 포지셔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퍼블리 아티클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프로덕트 포지셔닝은 '유저에게 어필되는 프로덕트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한 프로덕트가 여러 특성을 가질 수도 있고, 해당 특성을 여러 프로덕트가 공유할 수도 있지만, 유저가 확실하게 그 특성을 인지해야 그 프로덕트가 시장에서 특정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프텔은 스스로 어떤 부분이 시장에서 잘 먹히는지를 알고 있는 서비스 중 하나인데, 특히 라프텔의 구호에서 이게 드러난다. 지금도 많이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라프텔의 구호는 "정의롭고 당당한 덕후들을 위한 서비스"다. 그냥 덕후도 아니고, '정의'롭고, '당당'하기까지 한 덕후를 위한 서비스다. 즉, 유저가 라프텔을 '덕질'을 위한 서비스로 바라보며, 라프텔을 통해 '정의감과 당당함'을 느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실제로 라프텔은 불법 애니메이션 스트리밍이 판치던 기존의 애니메이션 시장에 문제를 제기하고 시작한 서비스다. 반복해서 해당 구호를 앞세웠으며 그 당시에는 불법이 아닌 애니메이션 전문 스트리밍 서비스가 라프텔 밖에 없었기에 실제로 시장에서도 해당 포지션으로 보였다.
라프텔은 기존의 애니메이션 감상 서비스와는 '합법성'을 통해 차별점을 두었고, 왓챠나 넷플릭스와 같은 서비스와는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이라는 특수성으로 스스로를 분리했다. 먼저 '서브컬처', 애니메이션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하겠다. 라프텔은 어쨌거나 '애니메이션'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대중적'에 가까운 넷플릭스와 왓챠 모두 애니메이션을 제공하긴 하지만, 주 서비스는 영화와 드라마이고 애니메이션은 하나의 장르로서 제공된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 자체가 달라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지는 기능이 바로 태그와 태그를 통해 제공되는 검색이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와 왓챠, 라프텔 모두 서비스하는 '아픈 건 싫으니까 방어력에 올인하려고 합니다'라는 애니메이션을 살펴보자. 아래 넷플릭스에서는 해당 애니메이션을 '미래 세계 SF'로 분류하고, '소드 아트 온라인', '공각기동대' 등의 애니메이션과 함께 추천하고 있다.
하지만, 라프텔에서는 '아픈 건 싫으니까...'와 '공각기동대'의 시청자를 아예 다른 사람으로 바라본다. 장르까지는 '액션'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전자는 '판타지/액션' 장르로, 후자는 '액션/SF' 장르로 분류된다. 하지만 라프텔의 '태그' 기능만 보면 두 작품은 극명하게 나뉜다. 두 작품 모두 가상의 공간에서의 액션을 그려내고 있지만, #발랄가볍 태그를 가진 작품과 #무거움, #철학 태그를 가진 작품은 아예 다른 주제의식을 가지고 스토리를 전개할 수밖에 없다. 즉, 두 작품은 함께 묶어서 추천하기에 어려운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왓챠의 추천은 어떨까? '아픈 건 싫으니까 방어력에 올인하려고 합니다' 작품을 바탕으로, 해당 작품을 본 유저에게 두 서비스가 각각 어떤 작품을 소개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먼저 왓챠는 '포켓몬스터 썬 & 문', '앨리스와 조로쿠',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등 비슷한 그림체의 밝은 작품을 추천했다. 넷플릭스보다는 나은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라프텔의 디테일이 빛난다. '아픈 건 싫으니까...'는 라이트 노벨을 원작으로 가상의 게임을 소재로 하는데 요즘 일본의 라노벨은 유달리 제목이 긴 특징을 가진다. 라프텔에서 추천한 작품은 '프린세스 커넥트! Re:Dive', '이 용사가 ZZANG센 주제에 너무 신중하다' 등인데, 제목이 긴 작품이 두 개나 있는 걸 볼 수 있다. 실제로 함께 추천한 작품 5개 중 4개가 #발랄가볍 태그를, 세 작품이 #소설 원작 태그를 가지고 있었다. ('아픈 건...' 작품에 리뷰를 작성한 유저가 다른 작품에도 리뷰를 작성했는지 살펴보면 라프텔 추천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이번 글은 포지셔닝 관련이라 생략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WaWlpmU4bw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무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은 돈을 주고 보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지금도 웹툰 무료 스트리밍 사이트는 크나큰 문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도 인터넷 강국인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시청자가 불법 사이트를 이용했고,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의 제작이나 수입을 멈추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뽀로로와 같은 대박 유아용 애니메이션의 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아동 이상의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 시장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돈을 쓰지 않으니 콘텐츠를 만들 수 없고, 콘텐츠가 없으니 돈을 쓸 수 없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라프텔은 이 시장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서 시작한다. 라프텔의 창업자는 불법 서비스가 판치는 '덕후 시장'에 의문을 가졌고, 합법적인 만화책 서비스를 구상하였다. 이후 카카오페이지를 출시된 뒤는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로 피봇 했으며, 많은 드라마, 영화 불법 사이트가 왓챠플레이 이후 사라진 것처럼, 라프텔을 통해 애니메이션은 무료라는 인식을 바꾸고 애니메이션 시장을 활성화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월 9,900원이라는, 다른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보다 싼 가격을 도입했으며 첫 달 무료체험을 통해 기존에 무료로 애니메이션을 보던 시청자도 부담 없이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도록 접근하고 있다.
위에서 프로덕트의 포지션은 '유저에게 어필되는 프로덕트의 특성'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렇기에 유저가 더 이상 해당 특성을 그 프로덕트만의 특징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면, 기존의 포지셔닝은 영향력을 잃는다. 그러니 포지션은 시장의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라프텔 역시 시장의 변화에 따라 기존과는 다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라프텔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에 익숙해진 시청자는 이제 애니메이션을 '유료로' 보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런 만큼 라프텔은 기존에 가졌던 '합법성'은 유의미하지만 이전처럼 강력한 요인이 되지는 못한다. 그래서 라프텔은 요즘 '빠른 수급'으로 시장에서 포지셔닝되고 있다.
많은 작품 수는 모든 OTT 서비스에서 중요하지만, 라프텔은 특히 수급을 중요시 여긴다. 현재 라프텔에서 볼 수 있는 작품 개수는 2,150여 개며, 이 중 1,724개의 작품이 스트리밍 된다. (2021년 9월 기준) 특히 라프텔은 분기별 신작을 매우 빠르게 가져온다. 분기별 신작은 라프텔의 홈 피드와 검색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홈 피드에서 라프텔은 '최근 본 작품' 바로 아래에 '요일별 신작'을 보여주며, 작품은 분기별로 구분해 '분기별' 검색이 가능하도록 했다.
분기별 신작 애니메이션 스트리밍은 신작 애니메이션이 나왔는지 확인할 정도의 열혈 시청자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분기별로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처럼 매주 정해진 요일에 애니메이션을 방영한다. 그러므로 진성 덕후는 분기별 신작 발표와 매주 방영 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렇기에 라프텔이 분기별 신작 애니메이션을 누구보다 빨리 수급하고 요일별로 저렇게 보여주는 건, 한국의 덕후가 일본 사이트에 들어갈 필요 없이 바로 라프텔에서 신작을 확인하고 요일별 작품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매분기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청자는 분기별로 라프텔에 들어오게 되고, 락인(lock-in) 효과가 강화된다.
라프텔의 새로운 위치는 '우리는 빠른 수급으로 유명한 서비스가 되자!'라는 포지셔닝의 결과가 아닌, 유저가 만족하고 서비스를 계속해서 사용하게 만들, 전략의 결과다. 사내 구성원이 서브컬처를 잘 아는 만큼, 덕후에게 편리하고 만족을 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라프텔은 '합법성'을 넘어 덕후의 마음을 이해하는 서비스로 변해가고 있고, 유저 역시도 라프텔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려고 한 것이 포지셔닝을 이끌어낸 것이다. 라프텔을 조사하며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유저가 라프텔에게 바라는 기능을 라프텔이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본어 제목이 익숙한 덕후를 위해 일본어 제목도 검색이 되도록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앞으로도 시장의 변화에 따라서 라프텔의 위치는 계속 변하겠지만, 라프텔의 유저 만족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1. 포지셔닝 관련 아티클: https://publy.co/content/4421?fr=set-bottom-list
2. 라프텔 이용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PZBxXNVvFI
3. 라프텔 대표님 인터뷰: https://platum.kr/archives/110741
4. 라프텔 대표님 인터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5WaWlpmU4b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