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성별이 딸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땐 반갑기도 했지만 덜컥 겁도 났다. 사실 난 엄마와 사이가 좋은 딸이 아니었기에 딸을 키우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컸다. 그러나 한편으론 사이좋은 엄마와 딸에대한 로망도 있었다. 평생 엄마와 내가 해보지 못한 것을 딸과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도 있었다.
만약 딸을 낳는다면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에 공주님으로 키우고 싶었다. 늘 엄마의 한숨소리에 맘조리고, 돈 걱정, 집 걱정에 불안하지 않은 날을 손에 꼽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기에 아이에게는 그런 마음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24주쯤이었나? 정밀 초음파 결과를 보던 의사 선생님께서 소견서를 써줄 테니 대학병원에 가 볼 것을 권유했다. 아이의 신장 모양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좋지 않다는 것은 어떤 의미냐고 물었더니 '기형'일 가능성이.. 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정확한 건 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다고.
이런 건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다. 정말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다.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의사의 소견은 같았다. 병원에서 나와 차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첫째를 하원하러 갔다.
그래도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기 중에 유일하게 두개인 것이 신장이니 말이다. 내 것 하나 떼어주면 된다 생각했다. 뱃속에서 아이가 클수록 '소견'은 '확진'이 되어갔고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치태반이란다.
첫째를 자연분만 했기에 둘째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전신마취를 하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출혈이 심해 위험했다고 했다.
수술 후 일주일이 지나고 산후조리원으로 가야 하는데 나만 퇴원을 하고 아이는 퇴원을 못했다. 아이도 없이 산후조리원에 혼자 왔다.
"산모님, 아이는요?"
대답대신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삼 개월마다, 육 개월마다 그리고 일 년마다 추적관찰을 했고 올봄에 마지막으로 갔을 때 앞으로는 자주 올 필요 없다고, 나중에 아이가 사춘기 되면 그때나 한 번 와보라고 했다. 거의 완치판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귀하고 예쁜 딸을 공주처럼 키우질 못했다. 둘째는 거저 큰 다더니, 첫째만큼 신경을 못써주는데도 알아서 잘 커줬다. 일욕심 많은 워킹맘의 둘째는 자연스럽게 방목육아의 길로 접어들었다.
첫째가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애교가 많아서 주변 사람들은 딸이 필요 없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막상 딸을 낳아보니 아들의 그것과는 너무 달랐다. 아들의 애교는 바위틈에 핀 꽃이다. '어머, 여기 이런 게 있었네?' 반가움과 놀라움에 웃음 짓게 하는 애교라면 딸의 애교는 꽃 그 자체였다.
아들은 성격이 날 닮고 딸은 얼굴이 날 닮고 ㅎ
아들은 내 성격을 닮았다. 고집도 세고 잘 삐친다. 그리고 물건도 잘 잃어버린다. 한 번은 자기 물건도 제대로 못 챙기냐며 혼을 냈다.
"물건을 쓰고 제자리에 두면 이런 일이 없잖아!"
큰소리에 놀랐던지 잔뜩 주눅이 들어 방에 들어가 나오질 않았다.
"엄마, 난 왜 이모양이지? 혼나도 맨날 똑같이 잃어버리고.. 나는 신경 쓴다고 하는데 왜 잘 안되지?" 의기소침한 아들을 보고 놀라고 걱정스러운 맘에
"아냐.. 엄마도 어릴 적에 그랬어. 그런데 시간 지나고 신경 쓰려고 노력하면 좋아져~ 우리 아들도 많이 노력하고 있는데 엄마가 못 알아줘서 미안해~"
오히려 내가 사과를 하고 아들을 위로했다.
어느 날은 똑같이 딸을 혼냈다.
"왜 자꾸 오빠 물건 건드려서 망가뜨리고 잃어버려? 허락받고 만지랬잖아!"
그랬더니 금세 바짝 붙어 앉아서 "엄마, 하지 말라는데도 내가 자꾸 해서 미안해. 그것 때문에 엄마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화 풀어~ 담부턴 안 그럴게!"
하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 나에게 딸은 위로이자 희망이었다.
첫째 아이를 낳고 애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불평 많던 나에게 딸은 건강하게 태어나준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알게 했다.
학창 시절에 난 엄마와 서로 모진 말을 해가며 상처를 주고받았다. 엄마는 일찍 세상을 뜨고 결국 내게 죄책감마저 심어주었다. '모녀'라는 단어가 내게는 언제나 슬프고 가슴 아픈 말이었다. 그러나 딸을 낳고 내게 '모녀'는 다른 의미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지난 주말, 고맙고 소중한 딸의 생일을 맞아 딸이 내게 주는 의미를 생각하며 글을 썼다. 나랑 똑 닮은 내 미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