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 새끼>를 시청하는 중이었다. 이번 금쪽이는 부모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아이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 스스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매번 엄마를 찾는다. 엄마는 아이가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가장 못마땅해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아이와 전혀 다른 성향을 가져 이해하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엄마 역시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파마해도 되냐고 허락을 받았을 정도로 의존적이라고 했다. 본인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아이의 행동이 못 견디게 싫었던 것이다.
나는 어릴 적에 학교를 가기 위해 대문을 나서면 최소한 두 번은 다시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숙제를 두고 가서, 도시락 가방을 두고 가서, 열쇠를 두고 와서, 우산을 두고 와서...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 등 뒤에다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 말을 못 들을 척하며 학교로 향할 때마다 자괴감이 들곤 했다. 대학 때는 자취를 했는데 아침에 친구들이 우리 집에 들러서 학교에 같이 갔다. 그때마다 “너 핸드폰 챙겼어? 과제 챙겼어?” 라며 나를 잘 챙겨줬다. “으휴. 너 우리 없으면 어떻게 할래?” 하는 말도 덧붙였다.
직장생활을 하고부터는 일에 지장이 생길까 봐 두 번 세 번 챙기고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해야 할 일을 잊지 않도록 핸드폰에도 적고, 다이어리에도 적고, 달력에도 표시하고 두 번 세 번 확인한다. 그래서 지금은 꼼꼼하다는 소리도 가끔 듣지만 집에서는 여전히 핸드폰을 어디다 뒀는지 찾고 다닌다.
첫째 아이는 나를 닮았다. 숙제를 해 놓고도 맨날 집에 두고 가고, 우산, 핸드폰 심지어는 입고 간 옷까지 학교에 두고 오기도 한다. 저녁에 뭘 가지고 오라고 할 때마다 어디다 뒀는지 기억을 못 해 한참을 찾는 모습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결국 “자기 물건도 하나 못 챙겨?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라며 매섭게 쏘아붙인다. 그토록 듣기 싫어했던 우리 엄마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내 모습에 더 화가 난다.
함께 운동하는 친구에게 요즘 아이 때문에 속상하다며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거 우리 아들도 그래~ 애들이 다 그렇지. 너무 그러지 마~ 너도 예전에 그랬다며~ 네가 그랬기 때문에 아이의 모습이 더 크게 보이는 거 아닐까? 너무 스트레스 주지 마~”
그러고 보니 아이는 언젠가부터 내가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하면 바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내 눈치를 살피고 자책하는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보인다. 어느 날 자려고 누웠는데 아이가 작게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너 울어? 왜 그래?” 이불을 들추고 놀라서 물었다. “엄마, 나는 왜 맨날 혼나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지?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데도 잘 안 돼서 너무 답답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뜨거운 것을 삼킨 것처럼 가슴이 막혀왔다. 그게 어떤 마음인지 너무 잘 아니까. 스스로 자책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잘 아니까.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들을 위로해 줄 말을 찾았다. “사실은 엄마도 어릴 때 그랬다.” 엄마도 그랬다는 말에 아이는 놀라며 물었다. “정말? 그런데 지금은 안 그래?” “음.. 완전히 고쳐지진 않았는데 그래도 자꾸 신경 쓰다 보면 좋아지긴 해. 우리 아들도 좀만 신경 써보자. 엄마가 도와줄게.” 아들의 얼굴이 모처럼 편해 보였다.
사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 모습에 화가 날 때가 있다. 닮았으면 하는 부분보다 안 닮았으면 하는 부분을 더 닮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아이가 겪을 어려움과 곤란을 잘 알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에 더 참기가 어려운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그랬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을 더 잘 헤아려줄 수 있을 텐데, 아이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도와줄 방법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 점을 놓치고 있었다.
날 닮지 않아 물건을 잘 챙기고 꼼꼼하면 좋았겠지만 날 닮아 약속도 잘 지키고, 명랑하고 밝은 멋진 아이인데 어느 한 부분에 집착하여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다그친 것이 무척 아쉽고 후회가 되었다. 오늘은 아이랑 학교 가기 전에 챙길 것을 함께 적어 냉장고 문 앞에 붙여놓았다. 그걸 보더니 벌써부터 자신만만해한다. 다. "엄마 이제 걱정 마~ 이제 이거 보고 챙기면 문제없어!!" 참 단순한 것도 날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