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아침 식사를 하던 둘째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밥 먹기를 싫어해 툭하면 "배 아파 그만 먹을래"를 달고 살기에 그날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하원을 하러 갔을 때도 배가 아프다고 말하길래 신경이 쓰였다. "진짜 배 아파? 어떻게 아파?" 그런데 아이는 딴소리로 대답을 했다.
"엄마, 나 오늘 오줌 누는데 하얀 연기가 나왔어~"
아이 말을 듣자마자 바로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누였고, 소변 색이 우유가 섞인 것처럼 탁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신장 질환이 의심된다고 하여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하고 아이를 출산해서 신촌 세브란스로 정기검진을 다녔다. 그러기를 몇 년. 그리고 올해 봄에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을 때 이젠 안 와도 되겠다고 사춘기쯤 한 번 오라는 얘길 들었다. 그 소리를 듣고 어찌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장 관련 질환이 의심되면 덜컥 겁이 난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불안한 마음에 동네 소아과에 가서 소변검사를 해달라고 했는데 역시나 요로감염이 의심된다고 하였다. 급성 신우신염으로 소견서를 써주셨으나 금요일 저녁 대학병원에 가기는 늦었고, 응급실에 전화했더니 소아과 선생님이 안 계시다고 월요일에 외래 진료를 받으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게 동네 소아과에서 처방해 준 항생제를 받아 주말을 지냈다. 거짓말처럼 주말 내내 아프단 소리도 없이 너무 잘 놀길래 이렇게 지나갈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어젯밤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부터 소견서를 들고 대학병원을 찾았다. 일찍 온다고 왔는데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주차할 곳을 찾아 30분이나 빙빙 돌았다. 겨우 주차를 하고 접수를 했으나 오늘 담당 선생님께서 휴진이라며 내일 다시 오라는 얘길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동네 소아과에 가서 항생제를 하루치 더 받아와 집에 함께 있었다. 다행히 컨디션은 좋아 함께 닌텐도를 하고 책도 읽고 놀다가 같이 장까지 봐왔다.
첫째 아이를 키울 땐 아이가 심하게 울어 한 밤중에 응급실로 뛰어간 것만 두 번이다. 아이가 열이 나고 아프면 어떻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 발을 동동 굴렀는데 육아 10년 차가 되니 '하루이틀 사이에 무슨 큰일이 나겠냐'며 짐짓 태연한 척도 해본다.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나 아기가 처지지 않고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것만으로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 둘째는 내가 방학을 하면 엄마가 방학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독감, 구내염, 수두 등 각종 법정 전염병을 앓거나 크게 아프곤 했다. 주변에선 방학인데 쉬지도 못해 어쩌냐고 나를 걱정하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난 오히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말처럼 여태 참았다가 내가 함께 있을 때 아픈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측은하기까지 하다.
친정도 시댁도 없이 연고 없는 지역에 자리를 잡고 산지 올해도 10년째다. 중간에 주말부부도 지낸 시간도 있다.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면 "엄마가 대단하네. 슈퍼엄마가 맞네~"라며 나를 치켜세워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이게 가능했던 건 아이들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한다. 어린이집 적응기간도 없이 아침마다 생이별을 하듯 울면서 들여보냈지만 원에서 밥도 잘 먹고 잘 논다는 한마디에 마음의 짐을 덜기도 했다. 크게 아픈 순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걱정뿐이었지만 스스로 병을 이겨낸 것은 아이였다. 엄마가 처음이라 뭐든 서툰 나를 기다려준 것도 아이이다. 아이는 그렇게 스스로 생존방법을 터득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오늘 밤도 무사히 잘 버텨주길 한번 더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