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략할 게 따로 있지
↑속이 시원하게 바람이 거셌던 주말의 저수지. 여름옷차림에 아이스커피. 팔뚝만 한 물고기를 낚은 사람들.
슬금슬금 시설물의 그늘로 옮겨갔다.
하교하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얼굴이 빨갛게 익어있다. 저학년으로 보이는 두 여자아이가 내 앞을 지나가자 거리에는 다시 아무도 없다.
두시 삼십 분.
주말부터 초여름 같은 땡볕이 내리쬐는 우리 동네다.
약속 시간이 이십 분이나 지났다.
「재택근무 중이니까 시간 조정 편하신 대로 하셔도 돼요.」
두시 십 분까지로 약속을 정하며 조금 늦을 수도 있다기에 다른 사람과 거래하지 않고 기다릴 테니 천천히 오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맞다.
나는 알림 소리도 귀여운 당근 거래 중이었다.
혹시 '조정'이란 말을 써서 시간을 다시 정하자는 걸로 알아 들었을까.
채팅 창을 두어 번 다시 훑어봐도 그 문장 뒤엔 가볍게 '네~^^' 뿐이다.
그 시간쯤이면 아이들 하교시키고 학원 데려다주느라 바쁜 엄마들이 많기에 무작정 기다린 건데 그 정도면 충분했다고 생각한 나는 그제야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아...
거래 예정자는 우리 동네도 아닌 다른 지역 대형 할인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나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바로 차를 돌려서 출발했어야 했는데 그 사이에 마트가 끼어들어 홀랑 잊었다고 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 네?
그거 맞아요?
내가 알기론 미안해요, 가 정답 같은데.
정확히 일주일 전의 비슷한 황당함이 떠오르면서 진짜 이 동네 사람들 왜 이 모양이지, 소리가 나왔다.
(물론 홧김에 지른 일반화.)
지난주 화요일에도 나는 당근거래를 했다.
오늘 물건과 마찬가지로 그 물건도 판매글을 올리자마자 정확히 1분도 되지 않아 두 사람이 연락해 왔다.
당장 입금하고 가지러 오겠다는 사람을 두고 나는 먼저 구매 의사를 밝힌 그 사람과의 다음 날 거래를 택했다.
몇 초 차이로 놓친 구매 희망자는 아쉬워하며 거래가 불발되면 꼭 연락 달라고 당부했다.
거래를 약속한 사람은 궁금한 것은 많은데 메시지는 답답하다고 전화 통화를 부탁하였고, 나는 몇 분의 통화로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마침 그가 사는 지역이 다음 날 내가 방문할 예정인 곳과 가까워 물건도 직접 가져다 주기로 했다.
다음 날 오전, 약속시간 3분 전에 거의 다 와 간다는 챗이 왔다.
나 때문에 건물 안까지 들어오는 수고를 하는 것 같아서, 혹시 특별한 볼 일이 없다면 내가 대로변에 나가 있을까 물었더니 그러면 좋다는 답이 왔다. 이어서 계좌를 물었다.
채팅창에 계좌를 적어주고 대로변으로 나가 정차해 있을 차를 찾았다.
인사를 하고 물건을 건네고, 궁금한 것에 답을 해주고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러고 보니 입금 알림이 늦었다.
데이터도 켜두었는데.
그의 차가 저만치 있는 교차로에 정차했을 때 명랑하게 "당근!" 알림이 울렸다.
하...
남편이 미팅 중이라 물건값을 당장 이체하지 못한다는 메시지였다.
미팅 끝나면 '남편'이 송금할 거라며, 볼 일 잘 보시고 들어가시라고.
남의 동네에 온 김에 새로운 환경에서 작업하려고 콕 찍어둔 곳을 기분 좋게 찾아가던 나는 단박에 기분이 상했다.
우리의 거래는 전 날 이른 오후부터 시작이었다.
그때까지 물건값을 이체든 현금이든 제대로 지불할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나는 불쾌했다. 오직 자신의 궁금증 해결밖에는 안중에 없었나.
중고 거래.
자신이 중고 구매를 필요로 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판매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건 아닌가.
누구도 가게에서 물건을 그런 식으로 구입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천 원짜리 껌이라도.
남의 남편 미팅 시간은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음을 알게 되었다.
황당하다 못해 얼이 빠진 채로 제법 오래 걷다가 결국엔 웃으며 수다거리로 넘겼다.
미안합니다.
이게 어려운가?
'기본'을 지키는 건 기본이고, 그러지 못했을 땐 변명이나 통보가 아닌 '사과'가 먼저다.
그게 뭐라고.
그들도 나와 똑같이 생각했을 걸 안다.
그게 뭐라고!
그런데 그 생각이 놓인 위치가 틀렸다.
봄이 되니 정리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거기에 점점 기본을 생략하는 인간들에 대한 상념이 더해졌다.
ps. 그래도 작업은 참 잘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