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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 Nov 27. 2024

[소설] 19화 내가 모르는 너

“어떻게 된 거야.”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울컥한 여주는 몸을 굽히며 주강에게 손을 뻗었다.


“일어나, 가자. 병원 가자.”


“안 돼요.” 


여주의 손길을 피하며 주강이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위태로운 시선이 어딘가를 향하자 여주도 그 시선을 따라갔다.


“필요 없어, 다 버릴 거야. 필요 없어.”


흐느낌이 섞인 낮은 중얼거림. 쓰러진 의자, 화장대에서 밀려나 굴러다니는 화장품 병들. 문 건너 방안은 엉망이었다. 몸을 일으킨 주강이 방으로 가자 여주도 따라갔다.


커다란 침대에서 작은 몸을 웅크린 여자가 소름 끼치도록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눈에 주강의 엄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주강은 안타까운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다 몸을 숙이고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하나씩 주웠다.


“너도 날 떠날 거지? 주강아, 너도 날 버릴 거야!”


낮게 중얼거리던 여자가 갑자기 그를 향해 울부짖었다.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창백한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빛, 텅 빈 눈동자, 뼈마디가 도드라져 보이는 야윈 몸. 가느다란 팔을 부들부들 떨던 여자의 눈이 주강을 향하자 물기가 차오른 듯 서글픈 빛을 띠었다.


“주강아, 가지 마. 응? 나 혼자 두고 가지 마.”


여자가 침대에서 떨어질 듯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주강이 놀라 가까이 다가가 여자를 붙잡았다. 여자가 울며 매달리고 주강은 익숙한 듯 품에 안고 달랬다. 어깨를 토닥이며 어린아이를 다루듯 소년이 여인을 어르고 있었다.


“엄마, 괜찮아. 나는 떠나지 않아요.”


지친 목소리, 울먹임을 잔뜩 머금은 목소리가 방안에 애처롭게 울렸다. 


“아니, 너도 떠날 거야. 네 아빠처럼, 그럴 거지? 엄마를 버릴 거지? 너도 똑같아!”


여자의 눈이 갑자기 희번덕거렸다. 몸부림이 점점 심해지며 주강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흔들고 뒤틀었다. 주강이 놔주지 않자 그를 깨물고 때리고 할퀴고 밀쳐댔다. 여주는 갑작스러운 여자의 난폭한 행동에 막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주강이 몸으로 막고 있어 다가갈 수 없었다.


“으윽!”


“주강아!”


그녀의 팔이 주강의 옆구리를 치자 그가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나 엄마를 붙든 손은 놓지 않았다. 점점 몸부림은 커지고 격해졌다. 


“그만해요! 당신 자식이잖아요! 다친 거 안 보여요?”


여주가 두 사람을 떼어놓기 위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여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주강만 붙들었다. 여주가 억지로 그녀를 잡아당기며 주강의 품에서 떼어 침대 끝으로 여자를 밀어냈다. 밀쳐진 여자가 몸을 떨며 서럽게 울었다.


“그러지 말아요!”


주강이 여주의 팔을 세게 붙들었다.


“아얏.”


여주가 아파하자 깜짝 놀란 주강은 손을 급히 뗐다.


“미안해요. 엄마가 아파서 그래요.”


그의 원망의 눈길은 여주가 아닌 자기 손을 향했다.


“난 괜찮아.”


여주는 괜찮다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주강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때 여자가 손에 집히는 대로 물건을 던졌다.


“주강아!”


파앗, 날아오는 향수병이 주강의 바로 옆, 벽에 부딪히며 산산조각이 났다. 여주가 주강의 팔을 당기지 않았다면 얼굴에 맞았을지도 몰랐다.


“괘, 괜찮아요?”


놀란 건 주강도 마찬가지였다. 유리 파편을 맞은 여주의 팔에서 피가 흘렀다. 놀란 주강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여주의 팔을 만지지도 못하고 당황했다.


“나가자.”


유리 파편에 찔린 팔보다 쏟아진 향에서 내뿜어지는 강렬한 냄새가 두통과 메스꺼움을 유발했다. 여주는 이 어지러운 공간에서 주강을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여보! 주강아!”


아래층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렸다. 중년 남자와 경찰 2명이 방안으로 달려왔다.


‘주강이 아버지?’


12년 만에 본 중년 남자를 여주는 단번에 기억했다.


“주강아, 괜찮니?”


남자는 가장 먼저 아들을 걱정했다. 주강의 눈길은 그저 엄마만을 향했다.


“저리가! 싫어!”


경찰을 보자 여자는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경찰 두 명이 붙들었지만 여자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여보, 제발!”


한동안 세 사람이 여자를 붙들고 씨름을 한 후에야 조용해졌다. 몸부림을 치다 축 늘어진 여자가 침대에 몸을 파묻고 잠들었다. 남편은 허망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 경찰과 함께 방에서 빠져나왔다.


“부인을 위해서도 병원에 가셔야 합니다.”


경찰의 등장이 처음은 아니었는지 두 명 중 한 명이 주강의 아버지를 붙들고 진심으로 얘기했다.


“두 분은 치료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


다른 경찰 한 명이 주강과 여주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주강을 바라봤다. 주강은 아버지의 시선을 피하며 엄마가 누워있는 방문만 바라봤다.


“병원은 제가 데려갈게요.”


이웃집 누나라고 애써 둘러댄 여주에게 남자는 정중하게 사죄와 함께 감사 인사를 했다. 경찰은 병원까지 데려다주겠다며 함께 집을 나섰고 주강의 아버지는 아내의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주강은 엄마가 마음에 걸리는지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여주가 괜찮다며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나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주강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나쁜 기억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두 눈으로 확인한 그는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였고, 의부증인 아내를 진정시키는 지친 남편이었다.


경찰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한 여주는 제 팔보다 주강을 먼저 앞세웠다.


“옆구리 봐주세요. 계속 통증이 있어서요.”


여주는 자연스럽게 보호자 노릇을 했다. 엑스레이를 찍는 그를 보며 아픈 마음을 겨우 추슬렀다. 옷을 갈아입느라 상처 난 몸을 보일 때 그는 애써 웃었다.


“창피하다.”


그가 여주 앞에서 몇 번이나 웃었던가. 잘 웃지도 않는 녀석이 정작 울어야 할 때 웃고 있다. 들키기 싫은 것을 여주에게 들켰고, 감추고 싶은 것을 들춰냈다. 그런데도 녀석은 애써 웃고 있었고 여주의 팔을 치료할 때는 오히려 그녀보다 더 아픈 표정을 지었다.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는 길. 여주가 그의 어깨를 감싸듯 끌어안았다. 그녀보다 훌쩍 큰 그의 목에 손을 두르고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해된 상황에서, 그녀는 더 이상 새어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왜 항상 멍을 달고 살았는지. 온몸에 푸른 멍과 상처 자국이 어디서 생겼는지, 왜 그가 잠만 잤는지, 왜 아무런 말도 못 했는지. 아니, 어쩌면 주강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내 상처를 봐달라고, 나를 봐달라고 울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어떡해, 나 어떡해…”


가슴이 저릿했다. 그가 혼자 겪었을 아픔들. 홀로 견뎌내야 했을 시간. 혼자만 품고 있던 상처. 너무 늦게 알아버린 주강의 상처가 그녀를 아프게 했다.


‘선생님은 다 알고 있었던 거야.’


전보다 가까워 보였던 두 사람 사이. 유성이 내내 주강을 신경 썼다는 친구들의 말. 언제든 집에 오게 했던 것까지. 주강의 사정을 알게 모두 이해됐다.


“미안해, 주강아. 정말, 미안해.”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를 다독이고, 위로해야 하는데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굳은 듯 서 있던 주강은 그제야 여주에게 몸을 기댔다. 흐느끼는 여주의 몸을 두 팔로 끌어안고 그 역시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그에게서 흘렀다. 그녀의 어깨가 젖어 들고 그의 울음소리가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렇게 흐느낌이 뒤섞인 채 두 사람은 한참을 울었다.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눈물 자국 맺힌 눈으로 주강이 하는 말에 여주는 거절할 수 없었다.


“여기는.”


주강을 따라간 여주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다시 눈물이 나오려 했다. 12년 전 기억이 와르르 쏟아지듯이 말랐던 눈물샘이 다시 터지려 했다. 이곳은 주강의 아지트였다. 12년 전 그날도 주강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왔었다.     



  





“수학은 나도 어려웠는데 선생님이 알려주시니까 좋다.”


그와 함께하는 하굣길. 여주는 아침부터 뽀로통했던 주강의 얼굴을 흘끔거렸다. 남들이 보기엔 무심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이제 여주는 그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선생님이 공부 도와주시니까 어때?”


둘이 시작한 아침 공부에 유성이 함께 한지 며칠이 지났다. 그때부터 묘하게 그의 침묵이 길어졌다.


“응? 주강아, 응?”


원래 말도 없고 재미도 없는 녀석이지만 때때로 느슨함을 보이곤 했었는데. 그만큼 유성의 등장이 달갑지 않음을 말로 내뱉지 않을 뿐이지 온몸으로 내뿜고 있었다.


“별로.”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주강이 대답하는데 여주가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주강이 슬쩍 여주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멈춘 여주는 엄마의 모습에 눈을 깜빡거렸다. 모르는 차에서 내린 엄마는 중년의 남자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거리가 있어 대화는 들리지 않았지만 엄마는 다정하게 웃으며 중년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차주강.”


“응.”


“가.”


“응?”


“가라고!”


얼빠진 대답에 여주는 소리 질렀다.


“엄마!”


얼마 만에 보는 엄마의 웃는 얼굴일까. 그 미소가 낯설어 화가 났다.


“딸, 이제 와? 인사해. 엄마 친구.”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주가 휙 고개를 돌리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어휴, 계집애 쌀쌀맞긴. 미안해요.”


“괜찮아요, 따님이 엄마 닮아서 예쁘네요.”


두 사람의 대화를 애써 무시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십여 분이 지나서야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가 만나는 아저씨야?”


불쑥 튀어나온 말에 엄마가 얼굴을 찌푸렸다.


“뭐?”


“그 아저씨, 엄마가 만나는 아저씨냐고!”


“여주야, 그런 거 아니야.”


“지난번에도 저 아저씨 차 타고 나간 거 맞지? 밤에 나갔잖아.”


그녀의 쏘아 올리는 말투 때문에 엄마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엄마, 아빠는!”


“네가 오해하는 그런 거 아냐. 그리고 엄마, 아빠랑 헤어지기로 했어.”


쿵, 엄마의 말이 망치로 때리듯 머리를 울렸다. 짐작한 일이었지만 엄마의 입에서 듣는 말은 잔인했다.


“엄마, 그냥 평범하게 살면 안 돼?”


“평범하게?”


“내 친구들 엄마 아빠도 다 싸운다고 그랬어. 그러다 또 괜찮아진다고. 남들도 다 참고 사는데, 왜, 엄마는 그게 안 돼? 왜…….”


울먹임이 더해지는 목소리에 여주의 말끝이 흐려졌다.


“엄마 피곤해서 쉬어야겠다. 너도 내일 학교 갈 준비해야지.”


엄마는 딸의 눈물을 외면하곤 방으로 들어갔다. 별거의 이유도, 이혼의 이유도 말해주지 않는다. 여주가 알고 있는 것은 두 사람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엄마를 원망하다, 아빠를 원망하다 울다 잠이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니 아직 엄마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여주는 조용히 준비하고 조금 더 일찍 학교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른 시간,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터덜터덜 힘없이 땅만 보며 걸음을 내딛는 데 익숙한 발끝이 보여 우뚝 멈춰 섰다.


“차주강.”


아침마다 보는 교실이 아닌 학교 가는 길목에서 주강을 보자 여주는 동그란 눈을 깜박였다.


“자전거 탈 줄 알아?”


뜬금없는 질문에 주강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자전거에 올라탄 후 뒤에 타라는 몸짓을 했다.


‘자전거 한 대만 가져와 놓고 왜 탈 줄 아냐고 묻는 거야?’


주강의 귀에 들릴 리 없는 질문을 속으로 하며 여주는 두 뺨이 붉어진 채 뒤에 올라탔다.


“잡아.”


“가기나 해.”


여주의 손이 주강의 허리 근처에서 맴돌다 교복 끝자락만 움켜잡았다. 주강이 천천히 바퀴를 굴러 자전거를 출발시켰다. 자전거는 익숙한 거리를 지나 학교 가는 길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점점 속도를 높이던 자전거는 내리막길이 나오자 탄력을 받아 급속도로 내려갔다.


빠른 속도에 여주의 손이 주강의 허리를 콱 끌어안았다. 움찔, 주강의 어깨가 흔들렸지만 자전거는 멈추지 않고 강가를 시원하게 달렸다.


여주의 뺨과 콧등이 새벽바람에 붉어졌다. 반대로 가슴은 뻥 뚫리듯 시원해졌다. 강가를 달리던 주강은 작은 정자가 나타나자 자전거를 멈췄다.


“기다려.”


햇살에 강물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유난히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평소에 오지 못한 것이 조금 후회가 되었다. 교실 창밖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강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곧 저 멀리 주강이 비닐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슈퍼에 다녀왔는지 봉지에는 빵과 우유가 2개씩 들어 있었다.


“이거 사러 간 거였어?”


“아침밥.”


배가 고팠는지 주강은 우걱우걱 빵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빵을 입에 욱여넣고 우유를 원샷 했다.

여주도 손으로 빵을 뜯어 먹었다. 목이 막히지만 우유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자 주강이 우유의 입구를 벌려 내밀었다.


“나 우유 못 마셔. 우유 먹으면 배 아프거든.”


“아, 다시 사 올게.”


말릴 틈도 없이 긴 다리로 껑충거리며 주강이 뛰어갔다. 100m 달리기 시합이라도 한 사람처럼 헉헉거리며 다녀온 주강은 오렌지 주스를 내밀었다. 여주가 풋,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넌 말보다 행동이 먼저구나.”


빵과 주스로 배를 채우는 사이 텅 빈 공원은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교복을 입은 두 사람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처음 하는 무단결석. 지금이라도 출발하면 지각이지만 별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학교를 입에 올리진 않았다.


“더 달릴까?”


“응!”


처음은 어렵지만 모든 두 번째는 그보다 더 쉬운 법이었다. 여주는 자전거에 타 주강의 허리를 두 손으로 꽉 붙들었다. 움찔, 움찔. 주강의 어깨가 전보다 더 심하게 떨렸지만 여주는 눈치채지 못했다.


자전거는 기세 좋게 달렸다. 바람을 타고 강가를 따라 두 사람의 마음을 안고 달렸다. 자전거가 익숙해진 여주는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시원한 바람이 그녀에게 쏟아지자 두 팔로 가득 끌어안았다. 주강이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며 조심하라고 했지만 한껏 들떠 그의 당부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어어, 엇!”


여주의 환호 속에서 주강이 소리를 질렀다. 옆길에서 리어카가 불쑥 튀어나왔다. 채 자전거를 꺾기도 전에 쾅 소리를 내며 커다란 충격이 느껴졌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리어카와 자전거가 함께 나뒹굴어졌다. 자전거는 거꾸로 박힌 채 헛바퀴가 돌았다. 리어카 주인과 함께 두 사람도 바닥에 엎어져 신음을 내뱉었다.


“여주야 괜찮아?”


주강이 먼저 일어나 여주에게 다가갔다. 무릎과 손등이 긁혀 피가 났다.


“내, 내 리어카! 이것을 어째! 다 망가져 버렸네. 너희들, 어쩔 거야!”


리어카 주인의 고함이 두 사람을 가르고 들어왔다. 상처를 볼 상황이 아니었다. 리어카 주인이 방방 뜨기 시작하자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리어카 한쪽이 다 부서지고 쏟아진 물건들이 엉망이 되었다.


“어린 것들이 아침부터 학교는 안 가고! 너희들 어느 학교야? 아니다, 경찰서 가자.”


리어카 주인이 화를 내자 두 사람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 어떡해?”


“뛸 수 있어?”


“응?”


주강이 그녀의 손을 꽉 잡아 일으키고는 뒤를 한번 보고는 작게 속삭였다.


“뛰어!”


그의 꽉 잡은 손에 이끌려 여주는 얼떨결에 뛰기 시작했다. 부서진 리어카를 보며 구시렁거리던 주인은 뒤늦게 도망가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쫓아왔지만 금세 기력이 떨어져 소리만 쳤다. 그 소리도 어느 순간 희미해졌다.


얼마나 뛰었는지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여주는 몸을 숙인 채 숨을 몰아쉬었다. 주강도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불안한 마음에 여주가 뒤를 흘끔거렸다. 다행히 리어카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괜찮아. 못 쫓아 올 거야.”


“도망치면 어떡해!”


안심하면서 말하는 주강의 모습에 기가 막히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모범생에 가까운 그녀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사고를 친 적이 없었다. 땡땡이에 이어 도망이라니. 엄청난 잘못을 했는데도 이상하게 웃음이 터졌다.


“다시, 돌아갈까?”


주강이 눈치를 보자 여주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까지 공범 만들어놓고 돌아가자고?”


샐쭉한 표정으로 답하자 주강이 굽혔던 몸을 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한껏 진지해진 표정으로 그녀의 양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았다.


“왜, 왜 그래?”


그가 곧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단정한 입매를 움직였다.


“우리 오늘 사고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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