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의 시작

by 소융이

8년이 지났으면 아직도 기억에서 가물가물해 질듯도 한데, 나는 아직도 그 날짜를 기억한다. 2012년8월20일. 미국 오하이오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대학도 졸업했고 사회생활도 했지만,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갈망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나는대로, 마음먹은대로, 닥치는 대로 준비했다.


미국 사회복지 대학원에 지원하기 위해 직장생활을 하면서 토플 준비를 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저녁 8-9시 사이, 조금 쉬었다 10시부터 12시까지 영어공부를 했고, 다시 아침 6- 8시 영어 공부, 그 후 씻으면서 먹으면서 출근 준비를 했다. 항상 긴장 상태에서 지친 내 몸을 버티기 위해 직장에서 진한 커피를 하루에 2잔이상 마셔댔고, 지하철만 타면 나는 서든 앉든 꾸벅꾸벅 졸아댔다. 어쨌든 3달 후 쯤 입학에 필요한 토플 점수를 받아냈고, 이후에는 각 학교 모집 요강을 정리했고,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를 썼다.


그리고 다시 8년만에 10개월된 갓난 아이를 안고 한국으로 ‘잠깐’ 돌아왔다. 시간을 거슬러 내가 했던 선택들을 다시금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선뜻 미국행을 선택하지 못할것이다. 8년전 내가 했던 선택들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무식하고 용감했기 때문이니까. 내가 미국에서 어떤 종류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겪을지 그 무엇도 몰랐으니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어려움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미 마음은 먹었는데 안좋은것을 생각하면 무엇하랴 하는 마음 따위로, 그냥 나에게 닥친것부터 해결하며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좋은것만 보려 애썼던것 같다. 그 후 나는 작은 마음가짐 하나를 배웠다. 하고싶은 마음이 있으면 안좋은것이 100가지라도, 어떻게든 그것을 해보려고 할 것이고, 하기 싫은게 있으면 좋은것이 100가지라도 어떻게든 핑계를 대며 그것을 피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가까운 사람들, 특히 남편이 특별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게 있으면 나는 푸쉬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본인 스스로 저절로 깨우친다는 것을 아니까. 넘지 말아야 할 가이드라인 까지만 제시하며 그냥 본인의 세계를 존중해 주려고 노력한다. 결혼했어도 여전히 남편은 남편이고 나는 나인 부분이 있으니까. 고 피천득 선생님의 말처럼, 모든걸 버려도 내자신을 버릴 수 없는 부분이, 그 누구에게든 있으니까. (하지만 남편을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과정에서 속이 터질뻔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속은 썩어들어가지만, 뒤돌아서 한 숨 크게 쉬고 괜찮은 척 하는 연기도 늘어가는 것 같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