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AI, 약점 많은 인간?

《AI 시대, 인간이라 죄송합니다》

by 제인Jane 진지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지난 3년 동안 밤새워가며 했던 업무들이 이제 무슨 소용인가 싶어요.

어제 Chat GPT한테 시장 조사랑 타겟팅 방향을 던져주고 기획서 초안을 잡아달라고 했거든요? 정확히 7초 걸리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3일 내내 머리 쥐어뜯으며 쓴 것보다 문장도 깔끔하고 논리적이었어요.

그 순간 모니터 화면을 보는데, 제 존재가 바닥으로 꺼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최근 커리어 전환을 고민하는 3년 차 서비스 기획자의 이야기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순한 직장인의 피로감이 아닌, 깊은 허탈감과 존재론적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자신이 조직에서 힘겹게 증명해 온 '1인분의 몫'이 단 몇 번의 프롬프트 입력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서늘한 자각. 요즘 채용 시장과 직장인들 사이에서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이 심리적 현상을, 나는 '인지적 위축(Cognitive Shrinkage)'이라고 진단한다.



우리가 이토록 빠르고 깊게 위축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산업화 시대 이후, 우리는 철저하게 '기계처럼 일하는 법'을 교육받아 왔다. 그래서 정해진 매뉴얼을 암기하고, 오차 없이 계산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정답을 산출해 내는 '효율성'이 곧 훌륭한 인재의 기준이었다.


반면 인간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피로감이나 감정의 기복, 실수는 조직 내에서 철저히 통제하고 숨겨야 할 '버그(Bug)' 취급을 받았다. 우리는 그 버그를 지우기 위해 스펙을 쌓고 자격증을 따며, 스스로를 기계의 훌륭한 마이너 카피로 만들어 온 것이다.


그런데 '진짜 완벽한 기계'가 등장해 버렸다. 지치지도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으며, 방대한 지식을 단 몇 초 만에 조합해 내는 압도적 완벽함이다. 그러다 보니 평생 기계의 효율성을 모방하며 살기를 강요받던 사람들은, 오리지널 기계의 등장에 자신의 직무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거대한 자아와 커리어의 지진, 이른바 '피플퀘이크(Peoplequake)'를 겪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독자들은 이런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감정적인 위로는 고맙지만, 냉정하게 따져서 AI가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객관적으로 일 처리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fact) 아닌가요? 결국 일의 세계에서는 인간이 뒤처지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렇다. 단순한 지식의 조합과 속도전에서는, 인간은 기계를 절대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그 기계의 '완벽함'과 '객관성'이 과연 진짜일까?


컴퓨터 과학자 아르빈드 나라야난(Arvind Narayanan)은 기술을 맹신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자동화 편향(Automation Bias)'이라는 개념으로 꼬집는다. 사람들은 기계나 알고리즘이 내린 결과물이 인간의 뇌를 거친 판단보다 훨씬 더 투명하고 공정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맹신한다. 화면에 출력된 결과물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문장이 유창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곧 '무결점의 정확성'이자 '절대적인 객관성'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즈니스와 HR(인사 관리)의 핵심 의사결정에 쓰이는 이른바 '예측형 AI(Predictive AI)'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AI는 신적인 통찰력이나 예측력을 가진 오라클(Oracle)이 아니다. 과거에 수많은 '약점 많은 인간'들이 저질러 온 차별과 편향, 그리고 오류가 뒤섞여 있는 과거의 데이터를 무비판적으로 삼키고 뭉쳐 뱉어내는 '통계적 편견 덩어리'에 불과하다.


실제 글로벌 IT 기업이 야심 차게 도입했던 AI 채용 시스템의 실패 사례를 보자.

이 AI는 지난 10년간의 합격자 이력서를 딥러닝하여 우수 인재를 선별하도록 설계되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이 AI는 '여성'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동아리나 여대 출신의 이력서에 가차 없이 감점을 주었다. 이는 과거 IT 업계 합격자의 압도적 다수가 남성이었다는 과거의 통계적 결과를 AI가 '남성일수록 우수한 인재'라는 절대적 인과관계로 잘못 학습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ㅡ물론 그 이후로 AI는 더 발전하기는 했다ㅡ.


기획서나 마케팅 카피를 써주는 생성형 AI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내놓는 매끄러운 기획안은 수천만 개의 기존 데이터 중 가장 '안전하고 평균적인' 조합일 뿐이다. 결코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변칙적인 혁신이나, 당신의 브랜드만이 가진 고유한 맥락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과거의 평균값'을 가장 그럴싸하게 포장해 내는 기계의 유창함에 속아, 스스로를 대체 가능한 잉여 존재로 깎아내리고 있다. 기계가 내놓은 몇 초짜리 답은, 어디까지나 '최근까지의 데이터'를 긁어모은 1차 초안이다. 결국 그 그럴싸한 결과물 안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편견을 필터링해 내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의 몫이다.


"이 데이터가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가?", "이 매끄러운 기획서가 우리 비즈니스의 진짜 목적과 타깃 고객의 숨은 결핍을 해결해 주는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궤도를 수정하는 책임은 오직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호흡하는 우리에게 있다.


그러니 완벽함을 연기하는 기계 앞에서 "인간이라 죄송하다"라고 위축될 시간은 없다. 기계의 치명적인 한계를 인지하는 순간, 우리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인간적인 특성들은 조직과 커리어를 구원할 가장 날카로운 무기로 역전된다.


의심하고 검열하는 능력, 정답이 없는 곳에서 치열하게 방황하며 원석을 발견해 내는 비효율성, 그리고 텍스트 이면의 복잡한 욕망을 읽어내는 통찰력. AI는 빠르게 답을 찍어낼 수는 있지만, 그 답이 우리가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인지 묻는 것은 기계에게는 없는 욕망과 결핍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독보적인 영역이다.


결국 질문하는 인간이 굳건히 서야, 답을 뱉어내는 기계도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