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어느 작가의 안녕
5. 어느 작가의 안녕
* 중증 우울증 등의 마음병을 앓고 계신 분들께 유의하시기 바라는 마음으로 미리 알려드립니다. 이 글에는 우울증 투병 중에 갖고 있던 마음과 결국 세상을 등진 작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버거우실 수 있는 환우분들은 유의하시고 거리를 둔 상태로 읽으시 길 권장 드립니다.
우주가 점점 커진다고 할 때, 그래서 나는 더욱더 외로웠다. 나 같은 작은 점이 팽창하는 우주에 찍힌 점이, 더- 더 작아보일테니 어쩌면 끔찍하다는 마음이 더 알맞았다. 외롭다는 감정은 하루 중 때때로 가슴 속에서 찡-하고 큰 진동을 일으켰다. 누구든 필연적으로 외롭다지만, 다 각자의 외로움이 가장 절박할테니 그러니 나는 그런대로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부턴가 숨이 잘 안쉬어지는 날이 생겼었다. 내장이 모두 비틀어지는 듯이 속이 아프고 몸이 아프고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을 잃고 나면 나는 이걸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지쳐 포기했다. 새벽 내내 그렇게도 흐르는 눈물에 지쳐 쓰러져야, 모든 에너지를 눈물로 다 쏟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살아있는 것이 아닌, 죽은 것도 아닌, 어두운 방안에서의 생활은 죽음의 그림자가 몇 번이나 드리우고 나서야 끝이 났다. 그렇게 나는,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서 다른 날을 만들어냈다.
큰 숨을 몰아 들이쉬고 처음으로 병원에 전화를 걸었던 날, 그 오후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예약을 기다리던 며칠 간을, 그렇게 처음 도착한 병원에서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많은 검사지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죽음과 희망과 포기와 선택이 나를 지나갔다. 그렇게 나는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수의 ‘죽겠다’와 ‘살겠다’를 번갈아 결심하며 버텨냈다.
어느 날, 대형 서점 한 켠에서 책 하나를 들고 스르륵 넘겨 보며 ‘짙고, 깊은 수렁에 잠겨있었구나’ 하는 묘한 동질감과 나만 그렇지는 않구나 하고 위로를 받았다. 동시에 그런 마음들에 죄책감을 느꼈다. 오랜 시간 그 책이 내 책장 한 곳에서 나를 위로할 때, 그저 받기만 했다. 그녀의 고백으로 모두를 위로했을 때,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결국에는 우울과 슬픔에 휩싸여 이별할 것을 알았다면, 내가 받은 위로 중 일부를 돌려주려 노력했을 텐데…, 모든 후회는 뒤늦은 것 뿐이라 구질 하다.
올 해는 참 이상한 가을이 왔다. 아니, 가을이 오지 않은 것인가? 여름내 푸르던 나무들이 노랑이나 빨강으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초록하다. 이런 경험이 낯설고 불안한 나는 그저 나무를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나는 그녀에게 빚이 있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싶던 마른 손이 있다. 이 이상한 계절에, 그녀가 떠나고 나는 남아 미안해 한다.
걷고, 웃고, 말하기만 해도 대단하던 어린시절이 있었지만 성장 이후 누구도 그런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어쩌면 하루, 이틀 잘 버티다 보니 이제는 그건 당연한게 되어버린…, 이겨내는 중인 마음병 환자들에게 말 해주고 싶었다. 이제 어느 정도 잘 웃고, 일도 썩 잘 해결하게 되었는데 마치 다 나은 것 처럼 취급받는…, 그래서 ‘나는 이게 한계인걸까?’, ‘1인분을 충분히 해내는 날이 올까.’ 라고 쫓기는 마음에 초조한 사람에게 마음 속 깊이에 담긴 위로를 건네주고 싶다.
옆에서 흔들어도 당신의 속도가 있는 것이니까. 주눅들 것도, 주변의 실망에 죄스러울 것도 없다고. 지금까지 당신이 이 순간 이토록 버텨낸 것으로도 이미 충분히 해내고 있는 것이라고.
떡볶이를 사랑하는 그녀가 장기 기증으로 수 명을 살려낸 그녀가, 부디 영원한 안식을 찾을 수 있게, 노란 잎을 기다리며 마음 가득 기도해본다. 안녕.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