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해, 머릿속이 꽃밭이란 말이다.
1. 징징징
기사에서는 교사들이 수업 외 대부분의 시간을 '비교육적 업무'에 쏟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주장인지 생각해 보자.
성적입력, 생활기록부작성은 매일 하는 일이 아니다. 몇 달에 한번 하는 업무를 가지고 매일 하는 일인 양 징징대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게다가 학생을 '평가'하는 것은 '교육적 업무'임이 분명하고, 단순 '입력'은 고작 몇 십분 정도 걸리는 일일게다. 교사들은 이렇듯 별 거 아닌 일을 침소봉대하여 업무과중을 주장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한심하단 생각이다. '진짜 과중한 업무는 해 본 적이 없나?' 하는 생각.
연수이수는 확실한 '교육적 업무'이다. 교사의 업무는 학생 교육과 지도, 연구활동이기 때문이다. 뭔가 이것저것 나열하여 '교사가 비교육적 업무를 많이 맡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렇다고 연수를 집어넣은 건 너무 했다. 수업 외에는 모두 '본질적이지 않은 업무'로 보는 경향은 점점 강해지고 있는데, 교사의 본질에는 학생교육과 지도에 대한 업무와 연수를 포함한 연구활동이 당연히 포함된다. 수업만 하고 싶으면 수업시수에 따라 급여를 받는 시간강사를 하시라.
학부모상담은 너무나도 확실한 '교육적 업무'이다. 인성교육, 전인교육, 생활지도, 사회화 등을 공교육에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문과 행정문서의 작성은 일부 '비교육적 업무'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꺼내고, 입은 옷을 벗어 세탁 바구니에 넣고, 배달 주문을 하거나 치약 따위를 장바구니에 담는 것을 '살림'이라고 하여 거부하는 사람이 없듯이, 교사가 처리하는 공문과 행정문서의 대부분은 '교사가 해야 하는' 일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22년에 발표했다는 행정업무 시간도 살펴보자.
주당 7.23시간
국가공무원이 1주에 근무해야 하는 시간은 40시간이다. 교사는 급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0회 정도수업을 하고, 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14~17시간이다.
도대체 어떻게 계산을 해야 주 40시간 중에서 수업시간을 제외한 23시간 중 고작 7,8시간의 업무가 '수업 외 시간의 대부분'인가?
학생이 30점쯤 받으면
'대부분 다 맞았다'라며
칭찬하나 보지?
게다가 행정업무시간이라며 발표한 7.23시간이 교사 설문에서 나온 것인데, 그것은 개개인의 느낌이지 진짜 시간이 아니지 않은가.
"평소에 행정업무를 한 주에 몇 시간 하시나요?"와 같은 바보 같은 질문에 "어.. 한 8시간쯤 하지 않을까요?"와 같은 대답을 조사랍시고 해서는 업무과중의 근거로 삼는 것은 ㅎ황당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차라리 학생들에게
스스로의 성취도를 설문하여
내신에 반영하지 그러니.
업무과중의 근거를 들고자 한다면,
교사들의 초과근무실적을 조사해라.
교사가 기안하는 공문의 수를 조사하여 전체 생산 공문에 대한 비율을 봐라.
학부모 상담 건수를 조사 (요즘은 예약제라서 카운트라 가능하다)하고, 교사 1인당 상담실적을 계산해 봐라.
객관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자료는
하나도 내놓지 않고
교사들의 설문조사, 인식조사만으로
업무과중을 주장하는 의도는
좀 빤해 보이지 않는가?
그러면서 마지막 마무리는
교육의 본질이 점점 교실밖으로 밀려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교육의 본질 운운하면서 교사의 노동을 신성시하는 모습이 보이시는가? 교사의 노동은 신성한 것이어서 어떠한 비본질적 업무도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나 본데
이런 걸 두고
머릿속이 꽃밭이라고 한다.
주 40시간의 근로의무가 있는 국가공무원이면 20시간도 안 되는 수업을 하고 남는 20시간 남짓은 연구도 하고, 상담도 하고, 학생들도 돌아보고, 행정업무도 하고, 공문도 처리하는 게 당연하다.
일을 좀 하시라.
모든 직장인은 주 업무가 있고
부차적인 업무도 있고
잡일도 있다.
강력계 형사도 행정업무를 하고
요리사도 청소와 재료주문에 시간을 쓴다.
모든 사무직은 짐을 나르기도 하고
본인 업무가 아닌 '필요한 일'은 무엇이건 한다.
도대체 교사가 뭐라고
본질적인 업무라는 것 말고는
손도 대지 않으려 하는가.
교사를 신성시하지 마라.
현실과 인식의 괴리가 심해지면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2. 교사를 신성시하다 보면 이제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된다.
다음을 읽어보자.
교권의 경계가 무너지고?
교육부 오피셜, 교권이란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교사가 법에 정해진 내용을 가르치는 교육권'이다.
교권의 경계란 말이 이해 가시는지?
교권의 경계라는 말을 쓰는 걸 보니, 그들이 생각하는 교권은 어떤 '테두리'를 가진 것이고, 그것이 무너지는 것은 나쁜 일이니 마치 '성벽을 가진 성'처럼 기능하는 어떤 것이다.
교사의 권익
그것이다.
가르치는 일 외의 업무를 하게 되니 교사의 권익이 무너진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귀족이나 왕과 다름없는 인식이다.
이 기자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걸까.
또한, 교사의 자율성은 침해받는다?
이것은 '민원과 행정의 수동적 응답자가 되니 자율성이 침해받는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도대체 교사의 자율성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민원이 오면 '교사 맘대로' 거부하고, 행정업무를 '교사 맘대로' 거부하는 것이 교사의 자율성이라고 주장하는 걸까?
이 정도의 자율성은 발휘하는 직업은 역사적으로 하나밖에 없다.
왕
그것도 폭군.
3. 교사를 신성시하다 보면 교사를 섬기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현실적인 방안도 마련할 수 없다.
기사의 마무리가 대박인데, 이 정도면 교사라는 존재는 판타지 소설 속에 나오는 '세계수(이그드라실)' 정도의 지위를 가진 듯하다. 세계수의 마른 가지에 새 잎이 돋아나면 마침내 어둠이 걷히고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이 열리는 설정처럼.
한번 천천히. 천천히 읽어 보시라.
현실적으로 원하는 것은 단순한 업무조정이면서, 마무리에는 단순한 업무조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란다.
이게 무슨 소리야.
상상을 해보자면, 이 기자는 교사를 신성시하다 보니 '그래서 업무경감과 업무조정이 필요하다'는 식의 '일반적인 결론'을 내기 송구했던 것 같다.
앞에서는 7.23시간이니 51%가 어쩌니 하면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수치를 들먹이다가도 마지막 결론에서는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란다.
교사의 시간을 지켜서 학생의 시간을 지키자는 주장인데, 이것은 정말로 교사가 신급이거나 최소 세계수, 수호천사 급이어야 망상으로나마 할 수 있는 주장이다.
게다가 학생까지 끌어들여, 마치 교사가 학생을 위해 '희생하며 떠받치는 대지'라던가 학생을 짊어지고 한발 한발 나아가는 서사를 이끌어내고 싶었나 본데, 여기에 빠져들면 교사에게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즉,
교사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마라
정도가 본 기사의 결론인 것으로 풀이된다.
여러분은 교사관련한 기사를 보실 때 각별히 주의하시길. 현실인식이 엉망이면 우리는 공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