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등 떠밀려 사회로 나가다, 교직의 시작 (2)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첫 담임 2학년 9반 16명이 한 명 한 명 너무 예뻤고, 수업 들어가는 모든 반 아이들이 다 예뻤던 것이었다.
물론 한 남학생과 마찰을 빚긴 했지만. 특히 잊을 수 없는 것은 매일 나를 좋아해 주고 따라다녔던 한 남학생이다. 지금은 군대에서 간간이 소식을 전하지만 그땐 정말 매일 만났으니까, 그리고 그런 덕에 국어 성적도 엄청 많이 오르기도 했다.
그냥 내가 무언가 하지 않아도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아주고 날 좋아해 주고, 수업이 끝나면 손에 잔뜩 묻은 분필을 닦으라고 물티슈를 건네주는 따스함을 가진 아이였다. 겨울엔 미리 주머니에 핫팩을 넣어두었다가 건네주기도 하여 그 따스한 마음에 더 따스한 겨울을 보냈던 기억도 난다.
내가 힘들어 보일 땐 직접 시를 써서 주기도 하는 감성도 겸비한 훌륭한 아이였기도 하다. 이렇게 특별한 제자였기에 추천서를 특별히 담임 선생님이 아닌 내가 써주었는데, 이 짧은 글자 수에 이 아이를 담기 어려워서 진심을 정말 꾹꾹 압축해서 썼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생활 가운데 추천인과 지속적 교류를 통해 긍정적 변화를 보여줌. 특히 화가 나는 상황에서 곧바로 화를 내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차분히 대화로 풀어가는 법을 배움. ‘기분파’라는 첫인상을 이제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배려’가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타인을 섬세하게 배려할 줄 앎. 수업 후 분필이 손에 잔뜩 묻은 교사를 위해 물티슈를 먼저 건네고, 계단에 많은 학생이 있어 내려가기 어려울 때 앞장서서 길을 터주어 감동을 주는 학생임.‘
내겐 너무 위로가 되고 행복을 주는 아이였는데, 아무래도 남학생이었기에 쏟아지는 시선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아이의 담임 선생님한테 “쟤네 뭐야? 뭐 있는 거 아니야?”라고 무례한 말을 쏟아내는 동료 선생님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아이가 주는 위로가 있었기에 나도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고, 아마도 그 아이도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간을 나와의 교류를 통해 위로받았을 거라 확신한다. 편지를 안 써준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이 지면을 빌려 마음을 전해본다. 정말 많이 고마워 행이야.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많이.
첫해엔 아무래도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지, 어떠한 교사가 좋을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런데 사실 6년차 교사가 된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다. 아직 여러 경험을 하며 고민의 시간을 가질 뿐.
26살의 첫 담임은 아무래도 친한 언니와 같은 교사였던 것 같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해서 매일 밤 9시 넘어서까지 야근하기 일쑤였다. 개인적으로 공부도 중요하지만 인성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더 먼저 들여다보는 데 집중했다. (사실 이건 엄마의 영향이 크다.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탓.)
지금도 만나는 첫 제자들은 그때를 다행히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지만, 여전히 무조건 친구같은 선생님이 좋은 건지는 의문이 든다.
하루는 수련회를 가는데 학교에서 꼭 사복이 아닌 체육복을 입어야 한다고 했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굳이 수련회에서까지 그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반에 피해를 주지 않고 학교의 방침을 따르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체육복을 입도록 해야 했다. 그런데 나 스스로가 타당한 이유를 들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데 아이들을 설득해야 한다니. 참 난감했다. 결국 하루종일 고민하다가 택한 방법은 감정에 호소하고 ’당근‘으로 유인하는 방법이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거 그래도 남들은 다 하는데 나만 지키는 거 같고 억울하고 내 자신이 너무 고지식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렇게 사는 것이 때로는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피해가 오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거..!!
나는 사실 너희가 수련회에서 평소엔 교복 입으니까 그날만큼은 사복 입어도 된다고 백번 천번 생각하지만 알잖아. 나같은 우리 학교 막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이게 바뀔 게 아니란 것을ㅠㅠ
아무튼 나도 너희에게 이렇게 다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야ㅠㅠ 그래도 이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조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길 바라~ 내가 치킨 사줄게!! 너희만 믿는다!!‘
당시 반 단톡에 보냈던 내용이다. 다행히(?) 아이들이 전원 체육복을 입고 와줘서 교장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학교에서 일하는 연차가 높아질수록 학생들은 모두 정해진 규칙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정말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공식적인 루트로 주장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쌓여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런 비슷한 일이 있을 때 그냥 해야 하니까 하라고 말하는 일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성찰을 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