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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재의 가치 Oct 13. 2024

1부. ‘나’는 누구였을까

3장. 코로나가 가져온 것들 (1)

 이제야 겨우 담임이 뭔지, 교사가 뭔지, 조금씩 깨달을 무렵, 코로나19라는 게 터졌다. 2020년 1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고 해외여행을 취소하기 시작했다. 1월 말에 다낭 여행을 친구와 가기 위해 여름방학 때부터 예매를 해두고 그 날만을 기다렸던 터라, 여행을 취소하기 망설여졌다. 동시에 코로나19가 얼마나 심각한 유행병인지에 대한 기사들을 볼 때마다 내적고민에 빠졌더랬다. 그래도 기다렸던 만큼 가보기로 결정하고 우리는 마스크를 쓴 채로 다낭으로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과도한 것 같긴 하지만 손소독제도 야무지게 챙기고 기내에서도 마스크를 썼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다낭에서 중국 단체 관광객 무리가 보일 때마다 마스크를 쓰며 그들을 경계했다는 것이다.


 신종플루나 메르스 같이 반짝 유행하는 병이겠거니 했는데, 2월에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초유의 개학 연기 사태가 발생했다.


 처음 맞이하는 사태에 교육청은 영 대책이 없었다. 그저 각 학교에, 각 교사에 책임을 미루었을 뿐이었다. 학교엔 등교할 수 없으면서 학습 결손은 없게 대책을 한 달만에 만들라니, 이 무슨..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학교에서 아마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온라인 수업 TF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 당시 유행하는(?) 수업 형태는 EBS 온라인클래스에 수업영상을 올리거나 EBS 수업을 링크 형태로 제공하거나, 줌으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는 형태였다. 대부분의 학교에선 영상을 녹화하는 형태로 제공했던 것 같은데, 우리는 ‘온라인 학교’를 만들기로 했다. 즉, 원래 수업시간표대로 각 선생님이 실시간 수업을 하는 것이다.


 참 많은 반대에 부딪혔고(당연히), 모든 선생님들의 개인 주소를 설정하고 각 반 시간표에 맞게 다시 학생들에게 안내하고, 가이드북을 교사용/학생용으로 나누어 제작하고. 참 많은 품이 들었더랬다. 그렇지만 관내에서 유일하게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로 홍보할 수 있었고, 학교장 명의의 표창장도 받을 수 있었다.


 2020년에는 1학년 담임을 맡았었는데, 그렇게 입학식도 못하고 6월에서야 아이들을 처음으로 교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1년 동안 학교에 등교한 일수는 단 63일. 수업일수가 일 년에 190일인 것을 고려하면 1/3도 학교에 등교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들은 학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자퇴하기도 했고, 만날 수 없으니 온라인 상에서 싸우곤 했다.


 그리고 2020년에 처음으로, 불과 2년차임에도 처음으로 교사를 평생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여느 때처럼 줌으로 아침조례를 하던 참이었다. 화질이 그리 좋지 않아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데도 얼굴에 멍이 든 게 보이는 한 아이가 있었다. 교사는 아동학대 의무신고자이기에, 아이에게 바로 연락을 취해 물어보았다. 듣자하니 부모님께 새벽에 계속 맞았단다. 학교장 보고까지 전부 다 했지만, 문제는 아이가 학교에 등교할 수 없고 집에 계속 있어야 한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아이 어머니는 아이의 카톡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기에, 나와 편히 연락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참 무력감을 느꼈던 시기였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좀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등교 기간이 아니어서 줌 수업을 들어야 하는 아이에게 학교로 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아이가 페이스북 메신저 가계정을 만들어서 그 계정으로 나와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와는 소통하고, 혹시 경찰을 불러야 하는 상황이 올지 몰라 아이의 집 주소를 핸드폰 메모에 적어두고 집 주변의 파출소 위치까지 알아보았었다. 그리고 한동안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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