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든 몸이 무너지랴

by 뷰리플기러기

2026 동계 올림픽을 시청하는 마음이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남자피겨 차준환 선수의 훤히 빛날 경기를 시청하기 위해 티비를 돌리다 새로운 얼굴의 선수들을 만나게 된다. 스노보드 최가온 선수가 1,2차 시도에 넘어지고 세 번째 도전에서 900도를 돌며 하늘로 날아오를 땐 내가 함께 날아오르는 느낌이다. 몸으로 시속 145km를 뽑아낸 스켈레톤 홍수정 선수는 케대헌 마스코트 호랑이 헬멧을 쓰고 올림픽에 데뷔했다. 은메달도 아쉬울 쇼트트랙 경기에 처음 발을 들인 임종언 선수는 다섯 번째 자리에서도 자신의 경기스타일로 과감히 치고나가 해맑은 동메달을 걸었다. 얼굴만으로도 할 일을 다 해 낸 차준환 선수의 경기는 완벽함속의 아쉬움이어서 더 마음이 오래갔다.


4년에 한번씩 등장하는 그들의 모습은 4년 동안에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다.


3년 체대 입시를 준비하던 아들의 행보가 일단락되었다. 원하는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실패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다. 우연한 기회에 운동의 매력에 빠 (공부보다 수월할까 싶어 선택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고2때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입시 체육 학원을 다니며 꾸준히 운동을 이어왔다. 재작년과 작년, 두 번의 입시도전을 했었다. 실력보다 좀 올려다보며 도전했다고, 아이에게 여섯 번의 시련을 준 입시 결과가 무정하게 느껴진다.


작년 12월, 아이 덕분에 한국체육대학교를 가 보게 되었다. 시험 당일 학교 안에서 스쳐지나간 사람들을 보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운동선수의 상징, 검정 롱패딩-등 뒤에 KNSU가 큼지막하게 적혀있는 - 을 툭 걸쳐 입은 학생들이 옆을 지나갈 때 나도 모르게 스윽 한번 더 돌아보게 되었다. 올림픽 메달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선수들일까, 그 조력자들일까. 아들딸 같은 그들에게서 왠지 모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아이는 그날 실기시험에서 실수를 했다. 3년 동안 몸을 다지고, 힘들게 운동하는 모습을 봐왔다. 운동을 끝내고 귀가해서 몸 괜찮으냐고 물어볼 때마다 늘 덤덤히 괜찮다고 말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괜찮아?’라고 물어볼 때 마다 아이는 ‘괜찮지, 하루에 10시간도 운동했는데 뭐’ 한다. 아들에게 힘듦의 기준은 하루 10시간 고 강도의 운동이었다. 나는 상상할 수 없다. 15개 한 세트 근력운동을 하면서 마지막 한두 개는 스스로와 타협하며 이쯤이면 되었다 포기하는 나로서는 참 대견하고, 아들이어도 존경스럽다. 그날의 실수가 참 안타깝지만, 안타까움을 겉으로 표현할 수 는 없었다. 누구보다 가장 아쉬울 사람을 앞에 두고.


하지만 결과가 극명한 것이 또 운동인지라, 명확한 등수가 매겨진다. 이번 올림픽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포디움에 서지 못한 아쉬움을 품은 선수들을 생각해본다. 그 노력은 4년뿐이 아닌데,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물론 다음 기회가 있겠지만, 몸을 무기로 써야하는 그들에게 다음 기회는 같은 기회가 아니다.


지금 아이의 진로를 결정할 수는 없다. 계속 몸을 쓰는 운동을 할지, 다른 길을 가게 될지 모른다. 다른 무엇을 하건, 축적된 노력의 시간들이 아이의 근육 하나하나에 나이테처럼 새겨졌으리라 믿는다. 굳은살이 되어 더 단단해지고 있으리라 믿는다.


공든 몸이… 쉽게 무너지랴.


밀라노와 코르티나의 현장 중계를 보니 제 작년 돌로미티의 시원시원한 산맥을 보며 마셨던 가벼운 공기들이 몸안에서 다시 순환되는 것 같다. 지금의 공기 역시 선수들 몸에 남아들어 이 번의 값진 경험과 함께 축적되길 바란다. 올해는 아들와 함께 그곳으로 여행을 가 볼까. 이런 설레임으로 아쉬움을 대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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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7. 코르티나담페초,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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