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교통카드만 있으면 새로 기본요금 지불 없이 3회까지 환승이 가능하지만 1977년 서울 시내버스는 학생용 10원 회수권을 한 정거장을 가더라도 새로 내고 탔다. 학생은 회수권이고 어른들은 쇠로된 토큰을 사용했다.
중학교는 대방동 S 중학교를 졸업하고 흑석동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배정이 되었다. 집은 S중학교 교문 앞이라 중학 3년은 편하게 다녔는데, 고등학교는 대방동 집에서 대방역까지 걸어서 거기서 111 버스를 타고 흑석동에 내려 또 학교까지 걸었다. 걷지 않고 버스로만 통학하려면 강남중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노량진에 하차 노량진에서 111을 타면 하루에 4장의 회수권이 소요되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힘들었는데, 3월 지나고 4월이 되니 몸이 적응되었다. 항상 어는 정도 적응되었을 때 문제가 터지는 법이다. 식목일 전날 늦잠을 잤다. 부지런히 가방을 챙기고 마라톤 선수처럼 대방역까지 달렸다. 11만 보고 버스를 탔는데 111이 아니고 211을 탔다. 노량진을 지나 효사정 방향으로 갈 버스가 한강다리 위를 달렸다. 아! 큰일 났구나! 속으로 놀라 한강다리 건너고 첫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 탔을 때, 우리학교나 서문여고 학생이 많이 있어야 하는데 처음 보는 오산고등학교 학생이 많이 있어서 이상함을 느꼈으면 노량진이나 사육신 공원에서 하차해야하는데 멍청하게 한강다리를 버스로 건넜다.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검은 교복에 하얀 칼라가 눈부신 여학생이 다가왔다. 머리에 호빵 모자를 쓴 것을 보니 우리학교 윗동네 여학생이었다.
“저기 우리 택시 같이 타고 가요?”
“예......”
택시가 가다보면 내가 먼저 내리고 그녀가 더 멀리 가기에 그녀를 안쪽으로 앉으라고 하고 우측에 탔다. 그 당시 택시 기본요금이 600원 이었다. 택시는 시원하게 한강 다리 위를 달렸다. 지각은 생각하지 않고 좀 천천히 가기를 속으로 바라는데, 순식간에 한강을 건너 효사정 방향으로 달릴 때 미터기는 기본요금 600을 돌파하고 100 미터마다 구간요금이 찰칵찰칵 올라갔다.
속으로 1000원이 넘어가면 어떡하지 걱정과 이마와 등에 땀이 흘렀다. 그녀의 옆모습도 귀와 볼이 발갛고 이마에 담이 송골송골 맺혔다. 검은색 교복에 순백의 칼라 호떡모자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무릎 위에 가방 가방위에 가지런한 섬섬옥수 손가락이 춘향을 보지는 못했어도 춘향이가 다시 태어난다면 이 여학생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다면 기습 뽀뽀라도 할 심정이었다.
택시 기사기 백미러로 나와 여학생을 교대로 살폈다. 택시가 우리 학교 84번 종점에 도착했을 때는 850원이었다, 원칙으로 계산하면 150원을 거스름돈을 받고 출발시켜야 했으나 가방위에 슬며시 1,000원을 올려놓고 엄한 소리만 했다.
“기사님, 저는 여기서 내리고 84번 돌아가는 방향으로 덜아서 시내방향 아닌 연못시장을 따라 직진만 하시면 여학교가 나와요.”했다.
수위실을 지나고 현관을 통과 우리교질은 반 지하 복도라 계단을 두 칸씩 뛰어 교실에 도착했어도 지각이었다. 1교시 수학선생님이 물었다.
“왜 지각을 했어?”
늦잠을 잤어요. 한 마디만 할 걸 대방 역까지 뛰어와서 급한 마음에 11이 보요 탔는데 111이 아니고 211이라서 한강 건너에서 버스 같이 잘못 탄 여학생과 택시로 왔는데도 늦었습니다. 선생님은
“여학생 이름이 뭐야?”
“모릅니다.”
“전화번호는?”
“모릅니다.”
“여학생과 달리는 택시에서 대화는 했니?”
“아니요?”
“영구 넌 수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찬스에 강해야하는데 아깝다. 넌 그녀에게 큰 실수를 한 거야? 혹시라도 버스 타고 다니다가 그 여학생 만나면 211번 버스 잘못타서 택시 같이 타셨죠? 하면서 이야기해서 이름, 전화번호 곡 알아내고 알아냈으면 선생님께 보고 해 알았지?”
“예.”
“원래, 지각하면 손바닥 10 대인데 아까운 찬스 놓친 것이 불쌍해 그냥 보낸다. 들어가!” 하셨다.
그 후 3년 내내 버스만 타면 그 여학생 있나 보았으나 만날 수 없었다. 그녀와 썸싱은 없었지만 인생을 살아오면서 힘들거나 괴로울 때 특히 아내와 싸웠을 때 나는 혼자 노래방으로 피신한다. 노래방에서 나의 애창곡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5회 연속 열창을 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노랫말 중에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그 소녀는 하는 가사를 그 호빵 년은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으로 바꾸어 부른다.
사는 곳이 개봉동이라 한강 이남이 생활터전이지만 가끔 노량진에서 용산 방향으로 버스를 타고 지날 때는 문득 그 호빵모자 여학생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면 아무도 모르게 혼자 빙그레 웃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