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하이트 - 불안 세대
인스타그램, 틱톡, 페이스북, X 같은 거. 우리는 이걸 SNS라고 부른다. 나는 SNS 효용이 10이라고 하면 해악은 90이라고 본다. 자극적인 문장, 사진, 동영상이 난무한다. 자기 자랑, 타인 혐오가 가득하다. 참 쓰레기같다. 보고나면 어지럽다.
중독적이기까지 하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서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의 중독성을 인정하면서 중독된 여성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사용자들이 중독되게끔 플랫폼이 의도적으로 설계됐다고 봤다.
당연하다. 우리의 시간이 기업의 돈이다. 우리가 머무르는 만큼 기업이 광고비를 벌어들인다. 그래서 그들은 끝없는 알림, 추천 알고리즘, 무한 스크롤링 등 중독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한다.
그런데, 애들까지 꼭 이걸 해야하나? 더 나아가, 애들은 왜 굳이 스마트폰을 써야할까? 우리는 미성년자의 담배, 술 구매-소비를 금지한다. 몸에 해롭고 중독적이기 때문이다. SNS나 스마트폰도 비슷해보인다. 정신-신체에 해롭다. 아주 중독적이다. 성인들도 스마트폰을 못 놓는데, 전두엽이 덜 발달한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친구들과 놀거나, 공부하거나, 아니면 잠이라도 잘 자야할 애들이 폰만 보는 모습은 견디기 어렵다.
다행히 나만 이런 생각한 건 아니었다. 미국의 명문대학교인 뉴욕대학교(NYU) 경영학과 교수인 조너선 하이트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예일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를 취득한 스타 심리학자인 그는 <불안 세대>라는 책에서 스마트폰이 아이들을 망가뜨린다고 주장한다.
그는 1996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불안 세대'라고 명명한다. 이 아이들은 (1) 부모 세대의 과도한 통제와 (2) 원칙없는 스마트폰 사용 때문에 정신건강의 위기에 직면했다.
대강 논리는 이렇다.
* 박스 안은 인용구
먼저, 이들이 불안세대라고 불리는 이유를 살펴보자. 아래 그림은 미국 10대의 불안(좌), 우울(우) 비율이다. 스마트폰과 SNS가 확산된 2010년대 이후 10대의 불안함과 우울함이 빠르게 증가했다.
2020년 즈음, 전체 미국 18~25세 중 15% 이상이 불안하다고 응답했고 10대 여자아이 10명 중 3명, 남자아이 10명 중 1명 가량이 우울하다고 답했다. 표를 보면 알겠지만, 과거의 10대와는 그 레벨이 다르다.
이들은 왜 불안해졌을가?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아동이 불안 세대가 된 주요 원인이 이 두 가지 추세 -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 세대 아이들은 기본 능력을 발달시키고 타고난 두려움을 극복하고 부모에게 덜 의지할 준비를 하기위해 꼭 필요한 종류의 신체적 경험과 사회적 경험에 노출될 기회를 잃었다.
우선 현실 세계의 과잉 보호라는 개념을 확인한다.
저자는 요즘 부모들이 더 많이 개입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나서서 위험을 차단하고, 모험을 제한하고, 방향을 정해주는 등 개입이 과하다는 의미다.
생각해보자. 옛날에는 10살만 돼도 혼자 학교갔다. 모르는 애들과 저녁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았다. 난 1990년대생인데, 나도 그랬다. 이제는 아니다.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온다. 운동은 학원에서 한다. 그리고 학원을 더 어릴 때부터 가게 됐다.
저자는 아이들이 자율성을 상실하고 잘 못 놀면, 뇌가 방어 모드로 전환된다고 진단한다. 이는 아이의 자기 통제 능력, 좌절감에 대한 내성, 스스로의 감정 관리, 호기심을 추구하는 능력을 제한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성인기의 불안 장애, 낮은 자기 효능감, 독립된 개인으로의 성장을 방해하는 원인이 된다는 거다.
여기에 문제가 하나 더 추가됐다. 스마트폰과 SNS다. 인류가 전통적으로 유지해왔던 '놀이 기반 아동기'는 잠식됐다.
놀이 기반 아동기는 아이가 자유 시간 중 상당 부분을 현실 세계에서 친구들과 함께 노는 데 쓰는 시기를 말한다.
아이들이 상처를 참고, 감정을 조절하고, 다른 아이의 감정을 읽고, 차례를 지키고, 갈등을 해결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법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활동은 감독을 받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가 주도하는 놀이이다.
이제 애들은 폰만 본다. SNS 하거나 게임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건 문제다.
우선, 아이들은 사람 사귀는 법을 못 배운다. 사람과의 대화와 상호작용이 줄어들어 인간관계 기술 습득이 어려워졌다. 둘째, 밤 늦게 까지 폰을 하느라 잠도 잘 안 잔다. 뇌 발달과 학업에 필수적인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 셋째, 끝임없는 알림과 멀티 태스킹으로 인해 집중력, 자기 통제 능력이 방해받는다. 마지막, 스마트폰에 중독된다. 일상에서 생활고 즐기고 배우는 대신 의미없이 '폰질'만 한다.
저자는 강조한다. 애들이 놀아야 할 때 잘 못 놀면, 삶을 영위할 기술을 못 배운다. 사람과 교류하고 좌절을 극복하며 갈등을 조절하고 위험을 관리하면서 끈기있게 도전하는 능력같은 거 말이다. 이게 없으면 어른이 됐을 때 불안해진다. 불안이 쌓이면 우울해진다.
이렇게 되면 안 된다는 거다.
이 주장에 백번 동감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새로운 걸 알았다는 느낌보다, 막연히 생각했던 게 명확해진다고 느꼈다.
평소에 애들이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같은 거 하는게 옳지 않다고 느꼈다. 유투버가 장래희망이라고? 뭔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애들이 공부 안해서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문제라고 본다. 대신, 나는 애들이 스마트폰에서 쓰레기를 제한없이 만나는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멀쩡하고 건강한 가치관을 배워도 나이 먹으면서 망가질 확률이 높은게 사람이다. 내가 산 증인이다. 상식적인 걸 많이 배웠지만, 세상을 살고 나이를 먹으니 까먹는다. 남을 돕고, 정직하고, 착하게 사는거. 세월이 갈수록 잘 까먹고 행동도 어렵다. 그래서 어릴 때 최대한 배워야 한다.
지금은 어렵다. 애들은 24시간 스마트폰을 휴대하고 인터넷에 접속한다. 그곳에는 거지같은 가치관, 신념, 지식이 가득하다. 돈이 최고라는 배금주의, 개인의 노력과 역량만을 강조하는 능력주의, 다른 집단을 무조건 배척하는 배타주의, 극단화된 정치적 이념들로 차있다. 균형잡힌 시각은 흔치않다. 만드는 사람도 잘 없고, 재미없어서 잘 보지도 않는다.
차라리 술, 담배하고 친구들과 클럽이나 술집 가는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뇌가 오염되면 답이 없다. 요즘 애들은 인터넷에서 개근거지, LH거지, 흙수저를 배워고 현실에서 배설한다.
저자는 파격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적 맥락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는 고등학교 진학 전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고, 16살이 되기 전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 사용을 제한하며, 학교 내 휴대폰 사용을 못하게 하고 애들이 더 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고 제안한다.
이게 맞다고 본다. 이게 글로벌 트렌드가 될 거다. 이미 호주, 인도네시아는 아이들의 SNS 사용을 금지했다. 여러 나라에서 이런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를 제한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제한 못 한다. 엄청 자극적인 걸 제한하면, 덜 자극적인 게 유통될 거다. 여전히 해롭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정보 접근성이 아니다. 쓰레기같은 정보로의 접근을 차단하는 거다. 미국, 유럽의 사립학교는 교내 스마트폰, 태블릿 사용을 제한한다. 애들한테 태블릿, 컴퓨터 알려줄 시기는 지났다. 지금 애들한테는 '책과 텍스트'가 필요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가 아동에게 나쁘다고 생각하고, 놀이 기반 아동기로 돌아가는 것을 보길 바란다면, 그렇다고 말하라. 대다수 사람도 당신과 같은 의심을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우리나라도 애들의 SNS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사주고 애들을 못 놀게 하면 이상하게 보는 사회적 풍토가 형성되어야 한다.
옛날에는 애들이 담배도 피고 술도 마셨다. 돈 받고 일도 했다. 그러다가 지식과 과학의 발달로 유해성이 입증되자, 저런 걸 금지했다. SNS와 스마트폰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공부를 더 하라는게 아니다. 스마트폰 대신 자기들끼리 놀든가, 멍을 때리든가, 하다못해 잠이라도 더 자라는 거다.
특히 한국적 풍토에서 하나 더 꼬집을 게 있다. 우리 애들은 더 놀아야 한다. 아이를 낳고 보니 느낀다. 이거 멀쩡한 환경이 아니다.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킨다. OECD 국가 중 공부는 가장 많이 하고 삶의 만족도는 가장 낮다. 이게 맞나?
근본적 원인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일 거다. 애를 괴롭히고 싶어하는 부모는 없다. 그저 자녀들이 잘 먹고 잘 살길 바랄 뿐일 거다. 그런데 그 길이 너무 좁다. 좋은 학벌과 스펙을 쌓아서 전문직, 대기업, 공공 분야로 보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죽어라 학원 보낸다. 물론 회사가 너무 늦게 끝나서 '학원 뺑뺑이'시키는 수요도 있긴 할거다. 우리나라 사교육 업계는 사회구조적 불균형과 불평등, 학부모의 불안과시간 근로에 기생해서 먹고 산다.
근본적 원인을 해소하는 건 시간이 오래 걸려 보인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야 하나? 중고등학생들 공부시키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4세 고시, 7세 고시가 정상인가? 내 눈에는 아동 학대다. 전문가들도 아동 학대라고 한다. 노는게 과업인데, 노는거 말고 다른 걸 시키니까 그렇다.
부모들은 학대라고 생각 안 할 거다. 다 자식 잘 되라고 하는건데. 불안하니까 일찍부터 시키는 거다. 이럴 때는 모두가 안하면 모두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법적으로 막을 수도 있고, 캠페인을 벌일 수도 있다. 너무 어린 애를 '학습' 시키는 부모들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풍토가 형성되어야 한다. 대다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어릴 때 안 놀게하고 공부시키는 건 뇌를 망가뜨린다고 꾸준히 말한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스마트폰, SNS가 뭔가를 망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 책은 단순히 스마트폰과 SNS의 파급효과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나는 아주 일부분만 인용했다. 저자는 SNS가 남자-여자아이에게 미치는 해악의 차이, 아동에게 있어서 자유로운 놀이의 중요성, 아이가 잘 크려면 필요한 환경, 스마트폰이 야기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기업, 학교 차원의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제시한다.
아주 잘 봤다. 우리나라는 자원 하나 없이 사람으로 먹고 산다. 애들 한명 한명이 소중하다. 애들이 더 많이 놀고 의미있게 아동기 시절을 보내야 한다. 미성년자의 스마트폰, SNS 접근이 금지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