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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Oct 13. 2024

마음의 구멍을 채우는 방법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영화]


- 제목 :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荻上直子)

- 개봉일 : 2012년 12월 13일



영화는 즐기는 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천만 관객을 찍은 영화도 텔레비전에서 나오면 간간이 시청했을 뿐이다. 하지만 간혹 마음에 드는 영화를 발견하면 심심할 때마다 그 영화를 돌려보곤 한다. 이 영화도 그런 작품이다. 잔잔하고 따뜻하고 일상적인 이야기. 세상에 존재하는 안온한 마음들을 모아서 만든 것 같은 작품.


불쑥 외로움이 솟아나거나 세상이 너무 냉정하다고 느껴질 때는 이 영화를 보면 좋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깃든 작품에는 보이지 않는 온기가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 영화에는 털에서 윤기가 흐르고 귀엽고 느긋한 고양이들이 많이 출연한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 많은 고양이는 다 어디에서 데려왔을까, 영화를 모두 촬영한 후에 버리거나 방치하지는 않았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고양이들의 행방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두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잘 지냈을 것이라고 믿는다.



줄거리


주인공 '사요코'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 대신 고양이에게 인기가 많았다. 부모님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2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열 마리도 족히 넘을 듯한 고양이들과 산다. 사요코는 고양이 렌털샵을 운영하는데, 말은 렌털샵이라고는 하지만 함께 사는 고양이 중 몇 마리를 리어카에 넣고 천변을 걸으며 "외로운 사람에게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라며 확성기에 대고 외치는 것뿐이다. 그러다가 고양이를 빌리고 싶다는 사람이 오면 직접 집에 찾아가 심사를 거친 후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영화 속에서 고양이를 빌려가는 사람은 세 명이다. 첫 번째는 남편이 먼저 떠난 후 함께 살던 고양이 '모모코'마저 세상을 떠나자 사무치는 외로움에 고양이를 빌리러 온 '요시오카 스미코'. 나이가 많이 든 요시오카는 새로운 고양이를 키울 수도 없어서 모모코를 그리워하던 중에 사요코의 목소리를 듣고 고양이를 빌리고 싶다며 다가왔다. 요시오카는 떠난 모모코와 가장 비슷하게 생긴 열네 살짜리 고양이를 선택하며 "할머니들끼리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고양이를 보며 모모코가 돌아온 것 같다고 말하는 요시오카의 얼굴에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가득 차 있다. 요시오카는 사요코에게 아들이 어릴 때 좋아했었다는 음식을 대접하는데, 어떤 음식인지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생김새를 보면 망고 푸딩 같은 느낌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많이 만들다 보니 이제는 자신이 더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요시오카. 하지만 함께 살던 남편과 고양이는 곁을 떠났고, 출가한 아들도 혼자 사는 어머니의 생활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게 온화하고 나긋나긋한 성격에 외로운 일상을 이어가던 요시오카는 영화 속 첫 번째 합격자가 된다.


얼마 후 요시오카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은 사요코는 요시오카의 집에 찾아간다. 그곳에는 요시오카의 아들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이렇게 위치가 좋은데 그것밖에 안 나오냐"며 누군가와 통화하거나 ― 정황상 어머니의 집을 매물로 내놓을 생각이었던 듯하다. ― 냉장고를 가득 채운 망고 푸딩 ― 으로 추정되는 음식 ― 을 보면서 "이걸 다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투덜거리는 등, 그다지 슬퍼하는 모습도 아니고 친절하지도 않다.


다만 사요코가 집에 있던 고양이를 데려간 후 어두운 집안에서 홀로 어머니가 남기고 간 푸딩을 먹는 모습을 보아,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없지는 않고 그동안 어머니께 무심했었던 시간을 후회하긴 하는 모양이다. 그의 마음에도 외로운 구멍이 뚫려 있을까.



두 번째는 '요시다 고로'라고 하는 남성이다. 외관을 보면 삼십 대 후반에서 사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데, 아내와 사랑스러운 딸이 있지만 일 때문에 거의 육 년 동안 떨어져서 지냈다고 한다. 얼마 전 집으로 가서 딸에게 앞으로 다시 셋이서 살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가 된 딸은 기뻐하지 않았고, 되레 "아빠한테서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요시다는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딸이 어느덧 성장해 자신을 거부한 일에 충격을 받았고, 딸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며 외로움과 거리감을 느낀다. 그러자 사요코는 외로울 때는 고양이가 최고라면서 그를 합격시켜 준다. 요시다에게 빌려준 고양이는 냄새를 좋아하는 어린 고양이. '마미코'라는 이름을 얻는 고양이는 얼마 뒤 요시다의 반려 고양이가 된다. 각별한 정이 생겨서 도저히 헤어질 수 없다는 간곡한 부탁을 받은 사요코가 마미코를 요시다에게 입양 보냈는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정말 귀여운 고양이다.



세 번째는 렌터카 지점에서 일하는 '요시카와 메구미'. 요시카와는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사요코의 꿈에서 고양이 렌털샵의 직원으로 등장하는데, 그곳은 교육이 잘 된 해외 품종 고양이를 A등급, 일본 토종 고양이를 B등급, 잡종 길고양이를 C등급으로 매겨 빌려주고 있었는데, C등급 고양이를 A등급 가격으로 빌려가겠다는 사요코의 말에 나온 고양이는 사요코와 함께 사는 고양이 '우타마루 사부'가 나오자 왜 여기에 있는 거냐며 절규하다가 잠에서 깨어난다.


무더위에 지친 사요코는 하와이로 떠나자는 목표를 세우고, 마침 렌터카를 빌리면 추첨으로 하와이 여행권을 증정한다는 문구를 보고 ― 정확히는 '하와이'라는 글자만 보고 홀린 듯이 ― 렌터카샵으로 들어간다. 그곳 역시 렌터카를 A등급, B등급, C등급으로 나누어 렌트하고 있었다. 사요코는 데자뷔를 느끼며 "왜 A등급은 비싸고 C등급은 싼 것이냐, 모두 훌륭한 애들이다!"라고 말하다가 "당신은 무슨 등급이죠? 저는 몇 등급으로 보여요?"라며 요시카와에게 역으로 질문한다. 대답을 망설이는 요시카와의 모습에서 외로움을 느낀 사요코는 즉석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요시카와는 12년 동안 렌터카 지점에서 일했다. 하지만 워낙 크기가 작고 손님도 적은 지점이라서 하루 대부분을 혼자서 보내고, 집에 가도 혼자였기에 종종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게다가 차에 등급을 매겨 빌려주는 렌터카샵에서 일하다 보니 '저 사람은 좋은 대학교를 졸업했으니까, 저 사람은 비싼 옷을 입었으니까 높은 등급'이라는 식으로 여러 가지에 등급을 매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요코는 쳇바퀴처럼 흘러가는 일상과 언제나 혼자인 생활에 지루함과 외로움을 느끼는 요시카와에게 고양이를 빌려주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얼마 뒤 요시카와로부터 연락을 받는데, 12년 동안 일하면서 처음으로 차를 빌린 요시카와가 추첨에서 하와이 여행권에 당첨되어 다녀오는 동안 고양이를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추첨에서 꽝을 뽑은 사요코는 조금 좌절했으나, 다시 고양이들과 즐겁게 살아간다.



네 번째는 고양이를 빌려간 손님이 아닌, 사요코의 중학교 동창생 '요시자와 시게루'가 등장한다. 사요코는 중학교 때 머리가 나빠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양호실에서 내내 잠만 자느라 친구가 없었고, 요시자와는 거짓말쟁이에 허풍쟁이였기에 친구가 없었다. 우연히 재회하자 사요코는 모른 척 그를 피하지만, 요시자와는 사요코의 집에 찾아와 고양이를 빌려달라고 말하고, 사요코는 거짓말쟁이에 변태인 너에게는 고양이를 빌려줄 수 없다며 거절한다. 그러자 요시자와는 "말이 좀 심한 거 아니야? 나도 외로울 땐 외로운데."라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요시자와는 어렸을 때부터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해왔다. 중학교 때는 사요코에게 "며칠 전에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백혈병이 의심된다"며 거짓말을 했고, 재회했을 때도 "20년 전에 실종된 삼촌을 찾으러 인도로 떠난다"는 거짓말을 했다. 물론 사요코는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챘고 요시자와 역시 들켰냐며 장난스럽게 웃을 뿐이었지만, 과연 그가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아마 자신도 외로울 땐 외롭다는 요시자와의 말은 사실이었으리라.


요시자와는 사요코에게 여름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의 맛을 알려주고, 자신이 가지고 놀던 요요를 마루에 둔 채로 홀연히 떠난다. 그날 밤에 집에 찾아온 경찰로부터 사요코는 요시자와가 상습 절도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요코와 함께 마셨던 맥주도 요시자와가 훔쳐왔던 것일까? 사요코는 중학생 시절에 요시자와가 가져온 아이스크림도 훔쳐왔던 것일까 생각하며 요시자와를 떠올린다. 이것이 결말 전에 나오는 마지막 에피소드.



외로움의 구멍


이 영화의 핵심은 '구멍'이다. 첫 번째 손님인 요시오카, 두 번째 손님인 요시다, 세 번째 손님인 요시카와 모두 상실감 혹은 외로움으로 인해 마음의 구멍이 있다. 요시자와는 상습적인 거짓말과 도둑질로 살아오면서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 하나 없이 경찰로부터 쫓기고 있는 신세다. 주인공 사요코 역시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가슴에 구멍이 뚫렸고, 더 늦기 전에 결혼하자는 목표를 비장하게 붓글씨로 써서 벽에 붙여두기까지 했지만 다가오는 사람은 없다.


사요코는 마음의 구멍을 메우는 존재로 고양이를 선택했다. 물론 고양이들이 사요코를 선택한 것에 가까운 모양새이긴 하다. 고양이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가끔씩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엉뚱한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른하고 도도한 눈빛, 우아하고 느긋한 몸짓, 유연한 동작, 부드럽고 따뜻한 몸…. 나 역시 강아지보다는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편이라서 영화를 보며 많은 힐링을 받았다.


각 인물마다 마음의 구멍을 상징하는 구멍이 하나씩 나온다. 요시오카는 아들을 위해 만든 푸딩 가운데에 구멍을 내어 크림을 채우고, 요시다는 구멍이 난 양말을 새 양말로 바꾸어 신고, 요시카와는 도넛의 구멍을 한 번에 입에 넣기 위해 테두리를 먼저 베어 무는 식으로 도넛을 먹고, 요시자와는 개미구멍을 발로 짓이기다가 사요코에게 "그러면 개미들이 돌아갈 곳이 없다"는 핀잔을 듣는다. 마음에 난 구멍을 고양이로부터 채운 것처럼, 현실의 구멍 역시도 채워졌을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알게 된 순간부터는 그것을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많은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말이다. 이 영화 속에서 마음에 뚫린 구멍을 서서히 채우며 따뜻함을 느낀 사람들은, 그 온기와 상냥함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사무치게 외롭거나 그리운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사랑하는 존재들을 떠올리며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우리에게도 그런 힘을 준다. 외로운 순간에 끌어안을 수 있는 것, 마음의 구멍을 채워가며 살 수 있는 시간을 생각하게 만든다.


여담으로 사요코의 옆집에는 사요코에게 당신은 전생에 매미였다거나, 키가 170이 넘는 여자는 남자에게 인기가 없다거나, 키가 크면 가슴도 커야 하는데 당신은 가슴이 작아서 안되었다는 둥 ― 일본의 영화나 애니메이션 작품에서는 유독 여자의 가슴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의 개그 포인트인지는 모르겠다. 12년 전에 개봉된 작품이기도 하니 이해하고 넘어갔다. ― 잊을 만하면 나타나 참견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 사요코는 그를 할멈이라고 칭하지만 정작 배우는 '코바야시 카츠야'라는 남자 배우인 점이 재미있다. 그래도 나중에는 기운이 없는 사요코에게 "가끔은 참지 말고 울기도 하라"며 조언을 해 주기도 한다. 물론 사요코가 정말 울려고 하자 얼굴이 못생겼다면서 놀리긴 했지만, 알루미늄 포일에 싸인 무언가 ― 찐 고구마나 감자가 아닐까 싶다. ― 를 주면서 위로하는 걸 보면 확실히 심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거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작품성 있는 영화다. 일본은 속도와 박자가 느리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영화를 잘 만든다. 현실적으로 따지면 환경 변화에 민감하고 경계심이 많은 고양이를 타인에게 빌려준다는 이야기 자체가 다소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영화는 '그래서 영화니까'라고 생각하며 넘길 수 있기에 좋은 부분도 있다.


내 마음의 구멍도 분명 조금씩 채워지고 있을 것이다.



"새끼 고양이는 말이에요, 금방 자란답니다. 먹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고작 3개월 만에 입에 안 들어갈 정도로 크게 자라요. 분명 갓난아기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작았는데, 금세 눈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커버리지요. 천천히 자랐으면 하고 생각해도 기다려 주지 않고 말이에요."

- 딸이 어느새 어른이 된 것 같아 슬프다고 말하는 요시다에게 사요코가 한 말 -


"회사도 브랜드 고양이도 전부 다 멋있지만, 주인한테 얼마나 사랑받는지가 중요한 거지, 아무리 고가의 물건이라도 사랑받지 못하면 가치가 없어지거든요."

- 요시카와에게 고양이를 빌려 주며 사요코가 한 말 -


"'또 봐'라고 말하지만, 절대 다시 만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드는 사람이 가끔씩 있다."

- 요시자와가 사라진 이후 나오는 사요코의 독백 -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사요코의 독백을 말미로 장식한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로운 사람이 아주 많다. 구원받지 못한 슬픔이 아주 많다. 그래서 오늘도 외로운 사람에게 고양이를 빌려준다. 마음속 구멍을 채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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