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지만 고양이 한 마리를 임시로 돌보게 되었다
열다섯 번째 일기
갑작스럽게도 고양이 한 마리를 임시로 돌보게 되었다. 입양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임시 보호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신도 감히 예측하지 못했을 이 당혹스러운 상황에는 애석하게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제외한 다른 생명체, 그것도 식물처럼 말도 없고 감각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는 생명체가 아니라 자기 의지로 움직이고, 눈을 마주치거나 목소리를 들으며 상호작용이 가능하고, 감정과 허기와 졸음을 느끼는 생명체와 함께 살게 되었다는 일에 존재하는 문제점 말이다.
첫 번째 문제점은 그동안 내가 단 한 번도 반려동물과 살았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키워본 적이 없음은 물론이고 반려동물을 향한 관심이나 큰 애정을 느낀 적도 전무하다. 작은 어항에 열대어 몇 마리 키워본 흔한 경험조차 없다. 한마디로 재미없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내가 갑자기 외로움 따위의 충동적인 이유로 반려동물을 집에 들인다면 정신 상태가 심각하게 무너진 상태일 게 분명하므로,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달려들어 나를 뜯어말려야 한다. 그러나 정신의 귀퉁이가 무너져 내린 나의 충동적인 행동을 말릴 정도로 사이가 친근하거나 나를 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또한 문제라면 문제다.
두 번째 문제점은 첫 번째 문제점에서 파생된다. 내가 고양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 고양이는 바람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평소처럼 퇴근해 집에 들어왔더니 거실 한가운데에 고양이가 있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언젠가 과도하게 축척된 우울감과 피로와 스트레스가 드디어 환각을 만들어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환각을 볼 정도로 우울하고 피곤하고 괴로운 사람은 아닌 모양인지 고양이는 실재했다. 그것도 마치 원래부터 자기 집이었던 것처럼,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도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여유롭게 하품까지 하더니 그대로 노곤하게 눈을 지그시 감았다. 고양이가 앉아 있던 자세가 흔히 '식빵'이라고 불린다는 사실도 나는 일주일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아무튼 나는 평온하고 조용한 나만의 보금자리에 난데없이 침투한 이 불청객을 쫓아내기 위해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잽싸게 잡아서 얼른 현관문 밖으로 내쫓으려고 했는데, 성큼성큼 다가오는 나의 저의를 읽기라도 했는지 내내 가만히 앉아 있던 고양이는 별안간 벌떡 일어나 순식간에 내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 도망쳤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방 겸 거실에 침대와 책상과 책장만으로 꽉 차는 방 하나가 딸린 집인지라 고양이를 잡아 내쫓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섣불리 여겨 서둘러 고양이를 따라갔는데, 고양이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내가 정말 헛것을 보았나 생각했다.
하지만 귀에 들리는 간드러진 고양이 울음소리는 분명히 실존하는 것이었다. 울음소리를 따라 천천히 몸을 수그렸다. 고양이는 침대 밑에 몸을 딱 붙이고 누워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팔도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좁은 틈새였다. 저만한 몸집을 가진 고양이가 이 좁은 틈새를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들어간 것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저 고양이가 절대 이 집에서 순순히 나갈 생각이 없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곳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안감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저 고양이를 잡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해서 얼렁뚱땅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면 어떡하나.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죽기 일보 직전인데, 난데없이 나타난 고양이 때문에 홀쭉한 지갑을 짜내어 밥까지 사 먹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세 번째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결국 나는 인터넷에 고양이 내쫓는 방법 대신 돌보는 방법을 검색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노트북을 켜서 이것을 검색할 때까지도 고양이는 침대 밑에서 나오지 않았다. 강아지와 더불어 사람들이 많이 키우는 동물 중 하나이니 별로 어렵지 않으리라 여겼으나 그 또한 섣부르고 멍청한 착각이었다. 고양이는 상상 이상으로 까다로웠다. 고양이 전용 모래로 화장실을 만들어야 하고, 손톱으로 벽지나 가구를 마구 긁는 습성이 있어 스크래처를 따로 마련해야 하며, 사시사철 털이 많이 빠지기에 매일 빗질을 하면서 털 관리까지 해 주어야 했다. 말 그대로 상전이었다.
사료는 물론 통조림도 건식이니 습식이니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자기 입에 맞지 않으면 입에도 대지 않는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어느 유명한 동물 사료 브랜드가 만든 고양이 전용 사료에서 사람으로 치면 발암물질에 해당하는 유해 성분이 대량으로 검출되어 단체 리콜과 판매 중단 사태가 일어났다는 기사가 뉴스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높은 곳에도 잘 올라가서 물건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으니 중요한 물건은 높은 곳에 올려두지 말아야 한다는 글도 보았다. 그럼 낮은 곳에 있으면 안 건드리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바로 밑에 글쓴이가 이어서 쓴 글이 보였다. 물론 낮은 곳에 두면 고양이가 손톱으로 긁거나 이빨로 물어뜯어서 엉망진창이 될 때가 많습니다. 중요한 물건은 그냥 금고에 넣어 보관하세요. 집에 고양이가 있는 이상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헛웃음이 나오는 글이었다.
이 고양이를 임시 보호한 지는 삼 주 정도 지났다. 그리고 나는 나의 월셋집에 무단침입한 고양이의 출처도 알게 되었다. 근처 해물찜 식당에서 생선 대가리를 얻어먹으며 사는 길고양이였다는 말을 옆집 할머니로부터 얼핏 들었다. 길고양이라면 길에서 험난하게 살았을 텐데 저토록 차분하고 느긋할 수가 있나. 자세히 보지는 못했으나 고양이는 지저분하지도 않고 비쩍 마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금방이라도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다가 온 고양이처럼 보였다. 어쨌든 추측한다면 고양이는 식당에서 배부르게 밥을 먹고 돌아다니다가 살짝 열린 집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서는, 그대로 이 집을 자신의 보금자리로 삼은 모양이었다. 고양이는 영역에 민감한 동물이라는 글도 보았는데 이 고양이는 낯선 장소에서도 일절 긴장감이나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하튼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한 고양이 중에서도 독특한 축에 속하는 듯했다.
길고양이가 집에 들어오더니 나가지를 않습니다. 저는 고양이를 키운 적이 없고 반려동물을 키울 형편도 되지 않습니다. 데려가서 돌보실 분을 구합니다. 고양이 카페에 회원가입까지 해가며 글을 올렸지만 신기하다거나 간택을 당한 것 같다는 댓글만 몇 개 달리고 이렇다 할 연락은 오지 않았다. 고양이가 제 발로 나가거나 누가 데려가기 전까지는 임시 보호자 입장이었으므로 고양이 관련 물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과 전용 모래, 소용량 사료와 몇 개의 통조림, 고양이 전용 빗과 손톱깎이, 골판지로 만든 스크래처와 혹시 몰라서 함께 선택한 낚싯대 장난감까지 한꺼번에 결제하고 나니 통장 잔고가 거의 바닥이었다.
고양이는 무심하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를 돌린다. 마치 원래 이 집은 자신의 것이었고, 나는 그 집을 청소하고 관리하며 자신의 먹이와 물을 챙겨주는 하인 정도로 여기는 느낌이다. 다행히 고양이가 부엌에서 접시나 그릇을 죄다 떨어뜨리는 사고를 친다거나 옷장에 들어가 털 난리를 만들어 놓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언제 갑자기 돌변해서 골치 아픈 말썽을 일으킬지는 모르는 일. 사흘 전에는 갑자기 거들떠보지도 않던 내 책상에 올라오더니 동그란 발을 뻗어 두루마리 휴지와 연필꽂이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도무지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생명체다. 하는 행동의 의도는 더욱 알 수 없다. 나를 골탕 먹이거나 내가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고양이는 우주에서 온 외계 생명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방송을 본 적이 있다.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은 일단 만수무강이라고 부른다. 동물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받기 위해 접수표를 쓰다가 마땅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즉석에서 지은 이름이다. 수의사가 고양이는 열 살에서 열한 살 정도로 보인다고 했는데 사람으로 치면 육십 세 정도라고 해서 몹시 놀라고 말았다. 연륜이 있는 고양이여서 저토록 차분한 것일까. 고양이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행동이 잽싸고 말썽을 좋아하는가? 나는 고양이가 아니기에 알 수 없다.
수의사는 만수무강이 순수 길고양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의 손에 보살핌을 받다가 유기되었을 확률이 높다고. 수의사 말에 따르면 만수무강은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이 모두 되어 있는 상태인데, 중성화 수술을 받은 길고양이는 귀 끝을 살짝 절개하여 ― 나는 이 말을 듣고 다시 놀랐다. ― 표시하지만 만수무강에게는 그런 표시도 없고 사람을 잘 따르는 모습을 보니 완전한 길고양이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경계심이 없는 걸 넘어서 사람에게 호감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밥이나 주고 화장실 치우는 하인처럼 굴었으면서 수의사 앞에서는 몸을 뒤집거나 손등을 핥는 등 갖은 애교를 부렸다. 고양이도 강약약강의 본능이 있나. 그렇다면 나는 만수무강 입장에서는 만만한 약이라는 것인가? 밥도 주고 화장실도 치워주고 집에서 안전하게 살도록 허락까지 해줬는데, 내가 어떻게 저렇게 제멋대로인 늙은 고양이보다 서열이 아래가 되어버렸는지는 모를 일이다. 사람도 아닌 고양이보다 낮은 존재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양이는 사람의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알아듣더라도 저 고양이는 모른 척 발로 귀나 긁으며 유유자적 햇볕을 찾아 늘어지게 낮잠을 잘 것이다. 아주 얄미운 동물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활발하고 귀여운 강아지였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만수무강은 길에서 살았던 것과 나이가 많은 것치고는 건강한 편이라고 한다.
만수무강. 고양이의 마음을 알 길은 없지만, 여하튼 오래 아프지 않고 산다면 고양이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건강한 채로 수명을 다하는 일이란 과연 있을 수 있는가. 동물병원에서 받은 진찰 기록과 나이를 써서 게시글을 수정했다. 그러자 나이 많은 동물은 사람들이 잘 안 데려간다는 댓글이 달렸다. 겉보기에는 나이가 많은지 적은 지도 잘 모르겠다. 나이 많은 동물은 금방 약해져서 나중에 병원비만 수백만 원 들어가는, 그러니까 머지않아 돈 새어 나가는 둑이 되어버리는 골칫덩어리나 다름없다고. 만수무강은 이미 보호자로부터 한 번 버림을 받았다. 최대한 좋은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 만수무강에게도 행복한 삶일 것이다. 인생이라고 쓰려다가 만수무강은 인간이 아니므로 삶이라는 단어로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