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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Jun 08. 2024

하루 기록_676

2024.06.06(목)


강화도에 온 이유는 짐을 정리하기 위함이었고, 짐을 정리하러 온 이유는 집을 전세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서였는데, 그는 계약을 취소한 채 홀연히 사라졌다. 어쨌든 쓸데없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짐들을 가지고 돌아오긴 했지만 아무래도 부모님의 걱정은 더욱 몸집을 불렸으리라. 한시름 덜어내나 싶었더니 원점으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달라진 건 없지만 나아질 뻔했다가 제자리로 돌아온 건 사실상 더욱 나빠진 것과 같다. 하지만 너무 초조할 필요는 없다. 운 좋게도 부모님의 자식들은 모두 경제 활동을 하는 성인이니까. 그래서 더 초조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모자>를 조금 읽다가 피곤해서 그대로 잠들었다. 선잠에 들었다가 깨어나니 바깥 마당에서 고기를 구울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는 빈둥거리다가 가족들의 부름을 받고 내려갔다. 산이 바로 뒤쪽에 있어서 벌레도 많았다. 모기와 파리가 끊이지 않고 날아들었다. 비빔면이 퉁퉁 불어 있었다. 야금야금 고기와 된장찌개와 비빔면을 먹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가족들과 있는 시간이 영 편하고 즐겁지만은 않다.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원래 다음 날이 출근하는 날이면 외출하기를 극도로 싫어했는데, 어차피 새벽 늦게 잠들어도 아침에 피곤한 건 비슷하고 그날 컨디션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음을 몇 번 경험한 후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평일에 약속을 잡고 싶은 건 아니다. 주말에는 느긋하게 내 방과 침대에서 쉬고 싶다. 아무렇게나 시간을 보내며 여백이 가득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요즘 외출할 일이 잦아서 이런 마음이 더 강하게 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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