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 않다.'
어김없이 아침은 찾아오고 난 한쪽다리의 마비 증세로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다리를 질질 끌며 완전히 틀어진 자세로 벽을 잡아야지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둘째 아이는 배가 고픈지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친정엄마께 와주셔야 한다고 전화를 했지만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았다. 급한 대로 아이의 수유를 위해 허리를 숙였다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말았다.
"으악! 억...... 으...... 꺄악"
"왜 그래 넘어졌어? 여기 잡아봐"
남편이 놀라 뛰어오며 부축을 해주고 다시 침대 몸을 뉘었다. 그리고 친정엄마를 모셔오겠다며 남편이 집을 나섰다. 지금 생각하니 왜 이렇게 무식하게 참고만 있었는지 빨리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고 적기 치료를 했다며 지옥 같은 통증으로 1년 넘게 고생할 일은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미련하게 며칠이라도 아이 모유를 더 먹이겠다고 버티다가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통증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신경외과를 찾아갔다. 스테로이드 성분의 주사를 맞으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에 단유를 결심했다. 극심한 통증이 몇 주째 계속 됐다는 이야기에 의사는 MRI촬영을 권했다.
촬영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한참 사진을 보더니 심각하게 말했다.
"3년 전에 터져서 흘러내렸던 4-5번 사이의 디스크가 다시 터졌어요. 훨씬 심하게 터졌고 많이 흘러내렸고
더 두껍게 터졌어요. 안 아프셨어요? 통증이 심하셨을 텐데 왜 지금 오신 거예요?"
차마 며칠이라도 수유를 더 하고 싶어서 미뤘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미련하기 짝이 없는 내가 이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심하게 다친 줄 몰랐어요. 많이 심각한가요?"
"이 상태로 처음에 오셨으면 응급으로 수술을 권했을 정도예요. 다리에 감각이상이나 마비 증상은 없으세요?"
"허리, 골반 통증이 심하고 걸으면 다리가 땅기는 느낌이 전체적으로 들어요. 다리를 잘라 버리고 싶을 정도예요. 하...... 어떡하면 좋죠."
"지금 무슨 치료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일단 주사 맞으시고 약 먹으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아기 절대로 안지 마세요."
태어난 지 100일도 안된 아이가 있는데 아기를 안지 말라고 한다. 아이를 안지 않고 키울 수 있다면 이 우울감과 답답함은 좀 나아질 수 있을까. 대답은 했지만 무슨 정신으로 의사와 진료를 보고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기나긴 통증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그리고 통증과 함께 불안한 증상이 수시로 찾아왔다. 불안감이 찾아오면 아이를 다시 안을 수 있을지, 아이를 안다가 떨어뜨리면 어떡하지 하는 끔찍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러다가 감각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지, 그리고 나는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끝이 없는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모든 일상은 기계적으로 흘러갔다. 최대한 허리도 굽히지 않고 무거운 물건도 들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통증은 나아질 기미가 안보였고 오른쪽 다리과 발가락까지 감각이 없어지고 있었다. 다시 병원에 가서 진료받았지만 수술받을 시기도 지났고, 지금 받는 다 해도 감각이상은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시작되는 통증은 몇 달째 똑같은 강도로 아니 점점 더 심해지며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끝도 없는 이 통증이 눈만 뜨면 찾아오니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 하나 줍는 일부터 아이를 들어 올리는 일까지 매번 움직일 때마다 통증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니 제정신이 아닌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친정엄마가 자주 와주시고 남편도 퇴근을 서두르며 육아를 돕고 있었지만 엄청난 강도의 통증보다 더 심각했던 건 내 마음 상태였다. 하루종일 멍한 상태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큰 아이한테는 화를 내지도, 잔소리를 하지도 않았다. 일정을 챙겨주고 식사를 챙겨주고 감정 없는 기계처럼 그렇게 집안에서 걸어 다니고 있었을 뿐이다.
둘째 아이를 안아 올려야 할 때면 심장이 두근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까지 하면서 나 자신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큰아이가 등교한 적막한 오전시간이면 난 미친 사람처럼 울고 있었다.
"오빠 있잖아, 나 이렇게 허리가 계속 아픈데. 나중에 지연이 신발은 신겨줄 수 있을까? 신발도 못 신겨주는 바보 같은 엄마가 될까 봐 무서워......"
아이를 챙기다가도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도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기만 해도 눈물이 흘렀다. 나는 아주 많이 아파하고 있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에 맛을 느끼지 못해 식욕은 점점 더 없어졌고, 잘 걷지도 못하는 몸에서는 근육이 빠져서 기력 없이 걸어 다니는 좀비 같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많이 아팠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던 남편이 사색이 돼서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 출근하다 말고 왜 다시 온 거야?"
이상했다. 출근했다가 다시 돌아올 정도로 급한 일이 있었던 걸까.
아이를 안고 분유를 먹이는 나를 보며 남편은 울고 있었다. 갑자기 이 사람 왜 그런 걸까.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다시 돌아온 걸까......
사진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