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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 Jan 06. 2024

"할머니, 엄마가 많이 울어요."

상태가 많이 호전되지 않는 나를 보며 남편은 많이 불안해하고 있었고, 아들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성연아, 아빠가 중요한 이야기 할 건데. 엄마가 지금 많이 아파서 성연이를 잘 못 알아보거나 

성연이가 한 일을 기억을 못 하거나, 이상한 이야기 하거나, 많이 울면 할머니나 아빠한테 꼭 전화해야 해 

알았지? 할 수 있지?"

"알았어 나 핸드폰 있으니깐 꼭 할게 걱정하지마 아빠.

그리고 엄마 나랑 있으면 내가 진짜 많이 도와주니깐 걱정하지 마"


남편 퇴근이 늦은 날이면 하루종일 쌓인 피로에 저녁때가 되면 허리 통증은 더 심해졌다. 큰 아이는 방에서 책을 보고 있었고, 둘째 아이는 모빌을 보면서 놀고 있었다. 잠깐 침대에 몸을 뉘었는데 눈물이 폭풍같이 흘러내렸다. 눈을 뜨면 시작되는 이 지긋지긋한 통증이 언제 사라질지도 알 수 없었고, 아프다고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나 자신도 싫었다. 


한품에 들어올 만큼 작고 예쁜 둘째 아이를 마음껏 안아주지 못하는 것도, 하교하고 온 큰 아이를 살갑게 맞아주지 못하는 것도 모두 단 한스러웠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친정엄마였다. 


"신아야 왜 그래, 오늘 허리가 많아 아파? 오늘 못 갔는데 갈걸 그랬나 보다. 

성연이가 전화가 왔어."

"어? 성연이가 엄마한테 전화했어? 왜? 뭐라고 했는데?"



"할머니 저 성연인데요. 오늘 안 오세요?"

"어 성연아 할머니가 일이 좀 있어서 못 갔는데 왜 그래? 엄마가 힘들어해?"

"...... 엄마가 많이 울어요. 오늘 안 오시는 거예요?"

"할머니가 엄마랑 통화해 볼게 걱정하지 말고 있어 봐 알았지?"

"네......"



울고 있는 모습을 본 큰 아이가 친정엄마께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전화해서 할머니 오늘 안 오시냐고 그러는 거야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많이 운다고, 할머니 안 오시냐고 계속 물어보길래 걱정돼서 전화했어."


내 아들을 잊고 있었다. 곰돌이 같이 동글동글 생긴 모습과는 다르게 이 녀석은 내 손톱색깔이 바뀐 것도 귀걸이 모양이 바뀐 것도 한눈에 알아본다. 목소리 톤만 바뀌어도 엄마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리는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외모와는 다르게 세심한 아이였다. 


할머니가 전화 온걸 눈치챘는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안방 문을 빼꼼히 열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많이 아픈 거 같은데 할머니도 안 오시고 아빠도 늦는 거 같아서 걱정돼서 전화해 봤어. 

있잖아...... 저번에 아빠가 엄마가 멍하게 있거나 많이 울면 할머니나 아빠한테 전화하라고 했어."

"엄마 괜찮아 피곤해서 잠깐 누웠던 거야 이리 와."


빨개진 두 눈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이 안겼다. 


"미안해, 엄마가 오늘 피곤해서 누워 있다가 잠깐 그런 거야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아니 나는 엄마가 많이 울어서 걱정돼서 그런 거야 으아앙"


내가 정신 나간 몇 달 동안 아들은 살얼음 같은 집안 분위기에 많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빠가 늦게 오는 날이면 둘째 아이 목욕도 도와주고 동생에게 동요도 불러주고 책도 읽어주며 엄마를 불안하지 않게 해 주려고 노력했던 아들이었다. 둘째 아이를 재우러 안방으로 들어갈 때면 늦게 오는 아빠를 기다리며 빈집에 혼자 있는 거 마냥 고요한 저녁시간을 혼자 견디고 있던 아이였다. 


힘들다면서도 동생에게 책 읽어주기를 좋아했다.    

허리 통증으로 집 앞에 마트 가는 것도 힘겨운 날이면 계란하나 두부하나 사 오겠냐는 심부름에도 싫다는 내색 한 번을 한 적이 없었다. 학원에 다녀온 직후에는 어깨에 메고 있던 학원가방을 휙 내 던지며 장바구니까지 챙겨서 심부름을 해오던 따뜻한 아들이었다. 


하루의 일과를 물어보며 평온한 저녁을 마무리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날의 있었던 일을 엄마와 두런두런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엄마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울기만 하고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아이를 챙기면서도 집안을 걸어 다니면서도 난 계속 울고 있었다.


아들은 이런 엄마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원 숙제와 학교 책가방을 혼자 챙기고 받아쓰기 노트를 꾹꾹 눌러쓰며 한번 봐줄 수 있냐고 조심스레 물어보곤 했었다. 


"엄마 나 수학 숙제 다 했어."

"어 잘했어, 나머지는 아빠랑 마무리하고 자. 엄마 잘게"

"어...... 알았어"


난 아이의 얼굴을 몇 개월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동안 아들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정신을 차려야 했다. 지켜야 할 아이들이 둘이나 있었다. 내 혼자 몸이면 이 세상 미련이 뭐 있겠냐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겠지만, 나보다 더 소중한 아이가 둘이나 있었다. 생각을 고쳐 먹어야 했다. 


그때부터였다. 하루씩만 잘 살아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주말을 맞이하고 다시 월요일을 맞이하면서 한주씩 버티고 한 달을 버티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큰 아이에게도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엄마가 힘들어할 때면 도와줄 수 있겠냐고 적극적으로 상황을 알렸다.


일단, 둘째 아이 돌잔치까지만 버티자. 그때까지만 버티자. 그럼 무슨 수라도 생기겠지. 


그렇게 조금씩 일상의 흐름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의 터널 같던 시간에 조금씩 빛이 들어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둘째 아이를 보며 웃기 시작했고, 큰 아이를 보면서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편은 그 잔소리가 그렇게 반가웠다고 한다. 


"있잖아 당신이 화를 안 내니깐 그게 더 무서웠어...... 감정에 희로애락이 없어 보여서 그게 더 불안했거든"

"하루씩만 버텨 보려고 하루씩만......"


내 목표는 큰 꿈이 아니었다. 둘째 아이 돌잔치를 해주고 싶었다. 힘든 고비를 다 견디고 온 아이인데 축복해주고 싶었다. 그때 걸어서 들어가면 그걸로 된 거다.


목표는 그거 하나였다. 






상단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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