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시작되는 통증으로 아침에 눈뜨는 게 두려웠다. 오늘은 또 얼만큼 아플지 아이를 돌보면서 일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더 조심하고 살아야 할지 답답한 가슴에 돌덩이를 안고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통증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이게 과연 기쁜 일인지 더 슬퍼해야 하는 일인지 아리송해지기 시작했다.
언제쯤 이 통증이 없어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남편에게 물었다.
"이 통증이 언제 없어질까? 나아지기는 할까?"
"그냥 아픈데로 살아가는 사람 많아. 통증도 익숙해지는 거잖아. 극한의 통증을 느끼기 전까지만
활동하면 되고 그리고는 그냥 쉬는 거야. 당신은 항상 아플 때까지 끝까지 일 하려고 하잖아 이제 그러면 안 된다고 니 몸이 신호를 보내는 거라고"
"아...... 아프면 쉬면 되는 거라고?"
"아프면 쉬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고 뻔한 답변을 들었는데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프면 쉬면 되는구나 아프면 그걸 안 하면 되는구나.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의 어마어마한 통증이 지나가니 인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바보 같다고 생각했던 의사의 진료처럼 그냥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지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거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 허리를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생활 방식을 모두 바꾸기로 했다.
기어 다니는 둘째 아이가 온 집을 배와 무릎으로 쓸고 다니는 마당에 매일 청소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었는데 어느 날 너무 통증이 심해서 바닥을 치우지 않았다. 물론 둘째는 먼지와 함께 데굴데굴 굴러 다녔지만 저녁때 목욕을 시키면서 조금 더 잘 씻어주면 그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목욕을 시킬 때는 큰 욕조에 물을 받아서 뜨거운 물, 미지근한 물 번갈아 뿌려주며 화장실 바닥에서 거북이처럼 들러붙어 있었는데 이것 또한 못할 짓이었다. 허리를 가장 안전하게 굽히지 않을 장소를 찾다가 부엌 싱크대 개수대에서 씻기기로 했다. 친정엄마는 그렇게 해서 그게 아기가 잘 씻겨지냐고 염려하셨지만 한마디로 정리했다.
"엄마, 허리 꺾여서 내가 또 아픈 거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러네 그럼 위에서 씻겨 물을 여러 번 끼얹어 그래야 애도 시원하지"
딸이 아프니 둘째 손녀 씻기는 일을 많이 도와주셨지만 엄마도 허리가 안 좋으셨고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물론 너무 소중하게 금이야 옥이야 잘 키우고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살아야지 아이를 잘 볼 수 있으니 내가 살고자 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아이는 돌 무렵 혼자서고 앉을 수 있을 때까지 부엌 개수대를 수영장 삼아 잘 놀고 개수대 목욕을 졸업했다.
바닥에 떨어진 장난감을 줍거나 물건을 들어 올릴 때도 최대한 허리를 굽히지 않으려고 물건 집게를 구매하여 집어 올렸다. 급할 때는 발가락으로 장난감을 집어서 주기도 했다. 사랑으로 키워야 하는 아이에게 발가락으로 장난감을 준다니 이 무슨 이상한 그림인가 싶었지만. '뭐 어떠한가!' 내가 건강하고 잘 키우고 있으면 그만이지 라면서 혼자 합리화하고 괜찮다 괜찮다를 되새기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내 발가락은 손가락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적재적소에 물건을 배치하고 필요한 물건을 단숨에 집어 올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오죽하면 첫째 아이가 떨어진 물건을 발가락으로 줍는 내 모습을 보고는 학습지 선생님께 자랑삼아 이야기 하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요. 손가락보다 발가락으로 더 물건을 잘 집어요 엄마 해 봐 해 봐!"
"아하하하 어머님 허리 아프셔서 그러셨나 봐요."
"아 네 선생님 제가 허리가 많이 아파서...... 얼른 들어가서 수업해"
"엄마 해 봐 해 봐! 엄마 짱 잘하잖아, 손수건 이거 발가락으로 집어줘!"
"얼른 들어가......(어금니 꽉 깨물고 이야기했다.)"
이 짧은 대화 사이에 둘째 아이는 어느새 와서 내 발에 붙어 있었다. 큰 아이와 학습지 선생님을 방으로 들어가시라고 한 뒤에 내 발목을 붙들고 있는 둘째 아이를 질질질 끌며 거실로 왔다. 순간 내 발목을 붙들고 현관 복도에서 거실까지 끌려오는 둘째가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터졌다. 둘째 아이도 재미있었던지 앞니 두 개 쏙 내밀면서 깔깔깔 웃고 있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 나 지금 웃고 있네?'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것처럼 한번 더 끌어 달라고 발목을 붙들고 손을 놓지 않았다. '에라이!' 모르겠다. 배가 시커멓게 되든지 말든지 온 집안을 질질질 끌고 다녔고 머리카락 뭉치가 포동 포동한 배에 한가득 모아졌다. 저녁을 먹고 얼굴이 꼬질꼬질해진 둘째 아이를 씻기면서 생각했다.
'내가 많이 나아졌구나......'
아직도 아이를 들어 올리거나 허리를 굽힐 때 가슴이 쿵 하고 떨어져 내리는 듯한 공포감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이를 보면서 웃기 시작했다. 큰 아이를 보면서도 잔소리를 하고 화도 내기 시작했다.
이 모든 변화를 보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돌아왔구나... 신아야...... 우리 이제 다시 잔소리 지옥문이 열린 건가?"
"왜 무서워? 내가 돌아와서 무서워?"
"아니, 이제 마음이 좀 놓여서 화내는 게 오히려 안 무서워 화 안 낼 때가 더 무서워"
아픈 몸으로 키워보니 알겠다. 발로 키워도 애들은 잘 자란다. 그리고 발로 키우다 보니 나도 많이 좋아졌다. 조금 있으면 아이 돌이다. 눈이 많이 오는 12월에 둘째 아이를 낳았는데 아픈 시간이 지나가고 눈물로 키우다 보니 벌써 1년이 지나갔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는 아이를 보면서 웃고 있으니 말이다.
돌 잔치 하는 그날 아이를 안고 걸어갈 수는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겼다.
음...... 구두는 아직 무리인 듯하여 편한 운동화 신고 원피스 입고 입장해야겠다.
돌잔치 때 입을 아이 원피스도 고르고 장소도 보고 있다.
분명하다 나 지금 많이 좋아지고 있다.
상단사진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