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는 이제 세돌이 지나 못하는 말도 없고 안아줄 필요도 없이 혼자서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는다. 이제 정말 조금씩 사람이 돼 가고 있다. 아이가 100일이 되기 전에 디스크가 터져서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지 어떻게 일상생활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내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제는 매일 아프지만 매일 울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할 일을 정리하고 내일의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으며 다음 달 계획까지 생각하고 있으니 정신적으로도 많이 회복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한참 아파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던 시절 사실을 속으로 아주 나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해주는 엄마라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무서운 생각에 돌잔치까지만 버티고 돌잔치는 해주고 그리고 그렇게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했던 내 불안정한 상태를 속으로 혼자 삭히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딸아이의 돌잔치까지는 해줘야지 하는 앞뒤가 안 맞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알면 아이가 얼마나 섭섭해할까 생각을 했었다. 엄마 뱃속에 찾아온 그 순간부터 축복받지 못했고 큰 이벤트를 겪으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눈에 보이는 건 울고 있는 엄마의 무기력한 모습이라니 둘째 아이에게 비친 내 모습이 너무 미안했다.
다행히 1년 동안 가족들과 주변의 좋은 인연의 사람들이 도와줘서 그 힘든 시기를 잘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시작한 글쓰기로 이렇게 글을 써가며 내 지난 상처와 힘든 시간들을 덤덤히 감내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근육도 생겼다.
살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용기 내보지 못했던 일들. 그게 바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용기였다는 것을 그 시간을 통해서 나는 깨닫고 있었다. 많이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래도 예전의 몸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이제는 인정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무리한 운동이나 일정을 하는 건 아직 마음에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큰아이와 함께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스케이트도 타고 스키를 못 타는 아빠를 대신해서 같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하얀 눈이 쌓인 슬로프를 내려오며 추억을 남기곤 했었는데 이 모든 소소한 추억이 이제는 다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돼버렸다. 내 허리의 컨디션은 이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허리와 내 몸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일이다. 허리 통증이 다른 날 보다 심할 때면 그날의 무리한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쉬고 내 몸을 먼저 챙기려고 한다. 그래야 더 크게 다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허리는 이제 거의 굽힐 수가 없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올려야 할 때도 허리를 굽히기보다는 다리는 개구리 같이 쩍 벌려서 꼿꼿한 자세로 들어 올린다. 허리가 아픈 걸 아는 친구들도 이 포즈를 보고는 빵빵 터진다. 친구들도 모두 내 허리의 상태를 알고 상황을 이해해 주는 친구들이다. 이렇게라도 물건을 들어 올리는 게 얼마나 호전된 나의 몸상태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기특하다고 칭찬도 해준다. 친구들이 깔깔거리고 웃고 있으면 내 몸짓하나에 큰 웃음 짓는다면 얼마든지 더 보여주마 하고 한번 더 해주는 마음의 여유까지도 생겼다.
주변의 친구들 가족들 모두 나의 몸상태를 알고 먼저 나서서 배려해 준다. 처음에는 이렇게 배려해 주는 사람들에게 부채감이 컸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어떻게 해서든 무리해서라도 혼자 해결하려 했지만 내 상태를 포기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한다. 시댁에 가서도 가족들 모두 큰 상을 펴고 바닥에 앉아서 함께 식사를 하시는데 나 혼자 식탁에서 편히 먹으라며 어머님은 항상 따로 상을 봐주신다. 시댁 식구들 모두 이제 안 아프지 않냐는 말대신 그래도 항상 조심하라며 항상 바닥에 앉지도 못하게 하시고 무거운 건 손에 대지도 못하게 하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렇게 배려해 주실 때마다 마음이 시큰시큰하다.
이 모든 변화를 받아들였더니 이제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언제라도 또 아플 수 있겠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조심하고 더 많이 아프기 전에 내 몸을 조심하고 아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이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아이를 키우다가 허리 아픈 이 평범한 아줌마의 일상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글을 읽어줄까 스스로 확신이 들지 않았었다. 그리고 아프고 힘겨웠던 일들을 다시 꺼내 글로 마주 하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시절의 고통이 다시금 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통증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마음으로 걱정해 주셨고 글을 읽으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공감해 주셨다는 댓글을 읽을 때면 글을 쓰면서 또 글을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로 하여금 내 마음이 치유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이 소재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는 몇 번이고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습니다. 이제 조금씩 상처가 아물고 있었는데 다시 글을 쓰면서 그때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잊고 싶었던 날들의 기억을 다시 꺼내서 글로 남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제 자신에게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지고 글을 읽고 공감하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용기 내서 글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따뜻한 댓글 남겨 주셨던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읽고 그냥 지나치시지 않고 하트 한번 꾹 눌러 주셨던 여러분들의 정성에 감사한 날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