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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판단이 빠른 사람.
다시 말하면 눈치?

매일글쓰기 2

by 신아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릴 적부터 어떤 상황을 넓게 보고 한걸음 뒤에서 판단하는 능력은 빨랐던 거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둘째라서 생긴 일종의 눈칫밥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세 살 터울의 언니와 엄마는 사춘기에 진입한 언니의 반항과 강경파인 엄마의 성향으로 여러 가지 대첩을 하는 날들이 많았고 난 그때마다 방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엄마 눈에 띄지 않아야 혼날일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얼른 숙제를 밀리지 않고 한 뒤에 후다닥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그래서 학창 시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할 일은 알아서 하게 되는 독립적인 성향으로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부분은 나름 긍정적인 뱡향으로 흘러갔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눈치가 빠른 성향은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굉장히 좋은 조건이었다. 대고객 업무를 주로 했던 업무 특성상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그때마다 내 앞으로 걸어오는 고객의 인상만 봐도 어떤 성향일지 파악이 되기까지 했다. 물론 겪어보니 좋은 분들도 있었고, 겪어보니 세상 악질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상당수는 내 예상이 적중했었다. 업무를 하면서 실보다는 득이 훨씬 많았었다.


눈치가 빠르면 다른 사람의 감정도 쉽게 알아챌 수가 있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했거나 언짢은 일이 있어 보인다면 바로 잡을 기회를 빨리 잡을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도 조금 문제가 생긴다. 상황이 돌아가는 분위기도 빨리 파악하고 눈치도 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무던히 넘어가는 성격의 소유자도 아닌데 눈에 다 보이니 여간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이 장점이라고 단점이라고도 할 수 없는 부분을 내 나름대로 잘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이면 모른 척 넘어가고 말을 아끼고,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상대방에게 조금은 더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아량이 생겼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상황을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파닥파닥 거렸던 성격이 나이가 들고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조금씩 둥글둥글해지는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이제는 나의 이런 성향을 잘 다듬어서 살아가려고 한다. 너무 날 선 세상에서는 좀 무던하게 눈치 없는 듯 그리고 너무 무심한 듯 넘어가는 상황 속에서 소외받거나 상처받는 이들에게 더없이 따뜻한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만하면 강점이라고 해두는 게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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