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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범 Feb 07. 2024

성장 없는 성장을 말하다 - 영화 <검은 소년>

최근 성장물이라는 장르 구분의 의미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성장물은 더 이상 큰 가능성을 지녔지만 아직 결핍이 많은 인물이 모험과 역경을 거쳐 완성되어 가는 구조를 취하지 않는다. 그러한 종류의 성장을 부정하는 서사도, 성장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성장 그 자체로 여기는 서사도 등장하니 말이다. 청춘이라 불리우는 나이대의 주인공이 성장을 포기하는 경우도, 가능성을 차단한 채 환갑을 훌쩍 넘은 주인공이 뜻밖의 성장을 이루기도 한다. 때문에 성장물은 그 자체로 다양한 의미의 성장을 받아들이자는 메시지로 묶이게 된다.


올해 첫 KAFA 신작, 영화 <검은 소년>은 이러한 맥락에서 분명 또 다른 성장의 문법을 제시한다. 고등학생 '훈'을 주인공으로 인상적인 견해를 그려낸 이 영화는 우리 모두가 겪어 봤을 성장의 아릿한 통증을 떠올리게 한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 한국. 영화는 해당 사태를 전하는 뉴스가 흘러나오는 한 가정집에서 시작된다. 수많은 가정이 무너지고, 누군가는 기회를 찾아 뜻밖의 성공을 이루던 혼란과 역경의 시기에 고등학생 '훈'이 놓여 있다. 집과 학교, 그 어느 쪽에서도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는 훈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집을 나간 엄마와 그 가해자 아버지 사이에서, 학교에서는 저를 괴롭히는 동급생으로 인해, 문학 동아리에서는 자신의 감정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한다. 


훈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 ―혼란, 분노, 불안, 설렘, 우울 등―은 단순히 다른 감정으로 치환되지 못한다. 계속해서 쌓이고 뒤섞여 무엇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괴상한 덩어리가 되어 훈을 괴롭힌다. 점점 자신이 알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훈은 기본적으로 다정한 아이이다. 엄마를 폭력으로부터 지키고자 하고, 우정을 소중히 할 줄 안다. 그러나 세상은 자꾸만 훈의 다정함을 배반하는 사건들을 안겨준다.


그들을 직면한 훈은 다양한 방식으로 발버둥을 쳐본다. 먼저, 다정함을 버리는 것. 자신을 괴롭히는 동급생에게는 칼로 위협할 만큼 가차없는 모습을 보인다. 때로는 다정함을 더 단단히 한다. 없는 돈을 털어 산 고기를 엄마에게 건네고, 친구를 찾아가 어두운 얼굴을 싹 지운 채 친밀한 대화를 건네보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 하나 정답은 아니다. 훈이 끝내 안착하게 된 것은 글쓰기였다. 이제 파고들 곳은 내면뿐이었던 훈에게 친구를 따라 들어간 문학동아리는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이 불가해한 상황들에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언어로 써내리고, 감정을 은유라는 포장지로 한 겹 덧싸는 방식으로 훈은 자신과 세상을 마주해간다. 


그러나 이 역시 명징한 숨구멍이 되어주지 못 한다. 글을 쓰던 훈은 결국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까지 지니게 되는데, 작가는 독자와 글로써 소통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훈에게 작은 절망을 안겨준다. 


버거운 사건들을 겪고 쓴 훈의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글은 문학동아리에서 그리 환영 받지 못 한다. 때로는 글쓰기란 내면의 표현을 넘어 내면을 외면화함으로써 보편화의 과정에 진입해야만 수용될 수 있다. 그걸 배워가는 과정은 가혹하기만 하다. 훈에게 주어진 삶은 글쓰기를 세상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정착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엔딩 씬을 주목할 필요는 있다. 그 모든 끔찍한 상황을 통과하는 훈에게 아지트가 되어준 것은 낡은 책이 가득 쌓인 서점이다. 그 속에 앉아 지긋이 눈을 감는 훈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그가 끈질기게 이 글쓰기라는 방식을 붙들어 보지 않을까 하고. 성장이란 시련을 힘차게 맞서는 힘을 얻는 게 아니다. 그것을 마주하고 도피할 아지트를 자꾸만 늘려가는 것이다. 이곳저곳에 참호를 파 놓고 때로는 웅크릴 줄 아는 것이다.


<검은 소년>은 선택을 말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어린 날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시련 -이조차 지나고 난 후에야 붙일 수 있는 표현이겠지만-은 수많은 선택 사이에 압사당할 위기를 느끼며 거세진다. 훈의 상태가 꼭 그러하다. 찢어진 엄마 아빠는 양쪽에서 선택을 강요하고, 친구와 선생님도 마찬가지이다. 그 끝에서 훈은 "왜 아무도 내가 원하는 걸 묻지 않느냐"고 외치고 만다.


흔히 청소년기를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라 일컫는다. 이는 스스로를 끝없이 추궁하며 질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직접 선택한 결과에 만족, 혹은 불복하며 뒤척거리는 것이 성장통이다. 그러나 이는 오로지 혼자의 의지로만 달성되지 않는다. "너는 너로서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끝없이 전달해 끊임없이 꽉 찬 존재를 두드려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존경할만한 어른, 영화나 책, 친구 그 무엇이든 말이다. 

그러나 훈에게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혼자 힘으로 선택지를 세우고 고를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듯싶다. 때문에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한 여유와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훈에게 글쓰기가 그 역할을 해준다면, 좋은 책에 담긴 좋은 지혜들이 그에게 희미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길 바라며 극장을 나섰다.


2월 7일 극장을 찾아오는 영화 <검은소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성인이 된 관객이라면 청소년기의 통증을 재체험 하며 자신만의 '성장'을 정의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맺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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