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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293)

아이의 성장이 느껴질 때

by 시우

어느 날 밤 아이와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던 중 문득 오래간만에 물어봤다



“공주는 꿈이 뭐야? 직업 말고, 마음속에 있는 진짜 꿈.”



아이의 눈동자가 천장을 향한 채 한참을 맴돌았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잘 모르겠어요.”



순간 마음 한편이 조용히 울렸다 ‘꿈’이라는 단어가 낯설어지는 나이 세상이 주는 질문은 많아지고 좋아하는 것을 대답하는 일이 조심스러워지는 시간


내 아이는 또래 여자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다 인형보다는 조립하는 장난감을 좋아하고 책 읽기보다는 밖에서 공놀이하는 게 더 좋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하는 모습은, 내게도 가장 큰 기쁨이 된다.


매년 아이의 키를 잰다 하루하루는 비슷해 보여도 시간이 쌓이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있다 매일 보기에 잘 느끼지 못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깜짝 놀란다.



“벌써 이렇게 컸어?”



아이가 자라날수록 내 어깨는 조금씩 무겁게 내려앉는다 나는 혼자서 아빠이자 엄마의 역할을 함께 해내고 있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남긴 틈을 조금은 어설픈 손길로 메우며 살아간다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가끔은 두 역할 모두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아이는 "괜찮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말속에 숨어 있는 배려와 씩씩함을


나는 원래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한 번 생긴 부정적인 감정은 쉽게 되돌리지 못한다 그런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은 감정을 다루는 일이다


숙제를 안 한 아이에게 속상함을 느끼다가도 밥시간이 되면 따뜻한 밥을 차려줘야 하고 함께 놀 때는 진심으로 즐겁게 놀아줘야 한다 혼낼 땐 또 단호해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조심스럽게 혹은 과감하게 이 감정을 조율하며 살아간다 가끔은 아이게게 내가 조울증에 걸린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걱정된다 감정에 따라 말투가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니


사실 소리 한 번 지르면 5분 만에 해결되는 일이 있다 하지만 웬만하면 소리치지 않으려 한다 무언가를 강압적으로 시키는 건 스스로 해내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유를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때론 힘들지만 이 길이 맞다고 믿기에


아이는 자라고 있다 요즘엔 실수를 하면 먼저 다가와 이야기한다



“아빠, 이러이러해서 못했어요. 죄송해요.”



그 말에 마음이 풀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한다



“그래, 알겠어. 하지만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도록 하자.”



그럴 때면 아이가 나보다 훨씬 더 어른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내가 혼내고 야단쳐도 금세 눈물 닦고 “아빠!” 하며 안겨 오니까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하지만 공주 덕분에 조금씩 정말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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