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이 제시하는 퀴어 미술의 동시대적 좌표.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이 제시하는 퀴어 미술의 동시대적 좌표. 패트릭 선의 시선을 통해 그 스펙트럼을 탐색한다.
⬆️싱글즈닷컴에서 기사 본문을 만나보세요⬆️
경복궁과 삼청동 사이, 아트선재센터 전관이 퀴어 미술의 스펙트럼으로 채워진다. 지하에서 3층, 복도와 로비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전시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은 74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몸과 기억, 정체성의 언어로 펼쳐 보이는 장면이다. 서울에서 이 정도 규모로 퀴어 미술의 흐름을 조망하는 전시는 사실상 전례가 드물다. 1998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가 열렸다. 그 역사적 맥락 위에 홍콩 선프라이드 파운데이션이 11년간 축적해온 컬렉션과 국내외 작가들의 작업이 새롭게 겹쳐진다. 존재는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증명해왔다. 예술로, 언어로, 몸으로. 그리고 지금, 여기 펼쳐진 이야기가 서울이라는 도시의 감각을 새롭게 규정한다.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전시는 아트선재센터에서 3월 20일부터 6월 28일까지 열린다.
패트릭 선 퀴어 아트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선프라이드 파운데이션 설립자. 400점 이상의 컬렉션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퀴어의 목소리를 잇고 있다.
11년 전, 아시아에서 퀴어 아트를 수집한다는 것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던 일이다. 그런데 패트릭 선이 앞장서 그 일을 시작했다. 2014년 선프라이드 파운데이션을 설립했고 400여 점의 작품과 200여 명의 작가를 모았다. 단지 수집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모든 작품이 반드시 관객과 만나야 한다고 믿었다. 타이완, 태국, 홍콩까지. 선프라이드 파운데이션이 닿는 곳마다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제 서울이다.
선프라이드 파운데이션은 어떻게 시작됐나?
2014년에 설립했다. 내 이름의 선(Sun)과 프라이드를 합쳤다. 프라이드는 게이 운동과 연결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퀴어 커뮤니티를 위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담고 있기도 하다. 설립 이유는 2가지다. 하나는 나의 개인적 영향력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컬렉팅은 항상 팀의 결정이다. 두 번째는 어느 날 내가 사라지더라도 이 일이 지속되길 바라서다. 재단이라는 형태 자체가 하룻밤 사이 사라질만한 일이 아니라는 메시지다.
11년 동안 컬렉션을 이어 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엔 재단을 과연 지속할 수 있겠느냐고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긴 시간을 이어왔다는 사실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선프라이드 파운데이션은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수집한다. 수장고에만 머무는 작품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현재 400점 이상의 작품, 200명 이상의 작가를 보유하고 있다. 퀴어 작가이거나, 퀴어 이슈를 다루는 비퀴어 작가이거나. 결국 모든 작품은 관객과 만나야 한다. 그게 우리가 컬렉션을 지속하는 이유다.
그 방대한 컬렉션을 가능하게 한 선택의 기준이 궁금하다.
첫 번째 질문은 늘 같다. “이 작품이 미래에 어떻게 전시될 수 있을까?” 또 다른 소장품들과 어떤 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도 함께 본다. 나란히 놓았을 때 서로의 의미를 강화하는 작품들이 있다. 지나치게 크지는 않은지, 실제로 운반할 수 있는지도 고려한다.
퀴어 아트를 둘러싼 오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사람이 퀴어 아트를 떠올리면 에로틱한 이미지를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홍콩 작가 쩡광치는 1960년대 골든게이트 브리지와 세계무역센터 앞에서 셀피를 찍었다. 그는 ‘셀피의 조상’으로도 불린다. 이 작업이 왜 퀴어 아트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쩡광치는 미국에서 중국인이라는 소수자였고, 동시에 게이였다. 소수자 안의 소수자였던 셈이다. 이 작업이 드러내는 것은 특정한 정체성이 아니라 ‘소수자성’이라는 감각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어떤 맥락에서는 소수자가 된다. 그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한국에는 아직 차별금지법이 없다. 그러나 작은 변화는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보험권이 인정됐고, 동성 커플에 대한 통계도 만들어졌다. 홍콩 역시 마찬가지다. 동성 커플의 세금 신고가 가능해졌고, 배우자로 인정받는 사례도 생겼다. 모두 작은 변화지만 중요한 발걸음이다. 변화는 언제나 한순간에 오지 않는다.
한국의 퀴어 아트신을 가까이에서 본 인상이 궁금하다.
퀴어 역사를 찾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라 들었다. 한국은 그 역사가 숨겨져 있거나 파편화됐다. 완성된 기록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시, 일기장 속에 흩어져 있다. 동시대 작가들은 그 파편을 수집하고 재구성하려 한다. 그렇지만 우리 퀴어 역사는 완전하거나 일관된 적이 없었다.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이 내가 계속 이 일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아트선재는 1998년 서울퀴어영화제를 개최했던 기관이다. 한국에서 퀴어 관련 행사가 열린 초기 사례 중 하나다. 이번 전시는 그 유산 위에서 시작됐다. 큐레이터는 복도, 정원, 옥상까지 미술관 전체를 퀴어한 방식으로 구성했다. 이번 전시의 의미를 세 층위로 나눌 수 있겠다. 첫째는 검증이다. 아트선재 같은 권위 있는 공간에서 전시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퀴어 아트가 한국 문화의 중요한 일부라는 인정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현지화다. 김선정 큐레이터 팀 덕분에 젊은 한국 퀴어 작가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세 번째는 세계화다. 이번에 처음으로 로버트 라우센버그, 마크 브래드 포드 같은 해외 작가가 포함됐고 서로 다른 정체성이 공존할 수 있는 장소에서 전시가 열린다는 점이 특히 의미 있다. 아트선재센터를 만났다는 사실이 무엇보 다 큰 행운처럼 느껴진다.
예술이 사회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가?
2017년 타이완에서 전시를 했다. 당시 동성결혼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고, 2년 뒤 합법화가 됐다. 태국에서도 전시를 열었고 이후 시민결합이 법적으로 인정됐다. 우리가 직접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흐름의 일부였다고 생각한다. 작가, 활동가, 영화 감독, 전시 기획자까지 분명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다.
*아래 콘텐츠 클릭하고 싱글즈 웹사이트 본문 확인!